어느 아이의 봉헌금

어느 아이의 봉헌금

한 아이가 한 주 동안 준비한 봉헌금을 잊고 성당에 왔습니다. 미사 때 봉헌하려고 했는데 봉헌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빠에게 아빠! 봉헌금을 놓고 왔어요.”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아빠는 만 원 짜리 한 장을 건네주었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봉헌을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점심을 먹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만원은 저한테는 너무 많은 봉헌금이 아닐까요?” 그러자 옆에 계시던 엄마가 네가 벌지 못하는 상태에서 만원은 많을 수도 있지. 하지만 네가 받고 있는 은총에 비하면 그 만원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겠니?”

 

그러자 옆에 계시던 할머니가 소리를 쳤습니다.

 

애 교육 잘 시킨다. 봉헌금은 천원이면 되지. 다들 천 원 하더라.”

“……,”

 

점심식사를 마친 후 친구들한테 놀러가는 어머니에게 아들은 이천 원이 든 봉투를 드리며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머니! 이것 친구들과 맛있는 것 사 드세요.”

 

할머니는 봉투를 받아들고 나가다가 다시 들어와서 2천원을 던지며 말했습니다.

너 나 늙었다고 놀리는 거냐! 이천 원이 뭐야~ 차라리 주지 말던지.”

어머니! 봉헌금은 천원이면 된다면서요. 하느님께도 천원 드리지만 어머니께는 그보다 더 많은 이천 원을 드렸는데요. 충분하지 않으세요?”

“……,”

 

누군가가 나에게 하느님과 재물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까요? 매 순간 이런 유혹은 밀려옵니다. 모든 것에 나는 가치를 부여합니다. 재물에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에는 내가 얼마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을까요? 내가 신앙에 얼마나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재물을 움켜잡을 것인지, 신앙을 움켜잡을지가 결정될 것입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음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신앙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면, 신앙은 그저 선택사항이고 자유라고 생각한다면 목숨을 걸 정도의 가치는 아니겠지요. 그런데 왜 그리도 많은 순교성인들은 신앙에 가치를 부여하고 목숨까지도 바쳤을까요? 그분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을까요? 아니면 슬기로우신 분들이었을까요?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슬기롭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손은 재물을 움켜쥐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요?

하느님과 재물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아마 저는 둘 다 선택하겠다고 할 것 같습니다. 두 주인 뿐이겠습니까? , 넷은 물론 열 주인도 섬기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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