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의 유혹
사순시기를 시작하며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유혹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나는 늘 유혹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달콤한 사탄의 유혹을 선택할 것인지, 하느님을 선택할 것인지. 하지만 그 달콤한 유혹도 선택 후 막상 지나가 보면 절망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유혹으로부터, 그리고 나 자신의 나약한 의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고, 육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고,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육신을 길들여야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단식입니다. 하지만 그 단식으로 인하여 육신의 힘이 빠져 나갈 때는 또 유혹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악마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신 뒤라 시장하신 예수님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마태4,3)라고 유혹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돌을 빵으로 만들어서 드실 계획이 있으셨다면 차라리 단식을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또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악마는 아직 예수님에 대해서 온전히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지? 그리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지? 또 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는가?”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악마는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돌을 빵으로 만드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니 굳이 증거를 보일 필요는 없습니다. 증거를 보이는 그 자체가 하느님 아버지와의 일치와 신뢰를 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악마는 한 가지의 유혹을 통해서 두 가지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아버지의 아들인데,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한다 해서 내가 증거를 보여 주어야 할까요? 유전자 검사를 해야만 되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를 믿지 못하는 것이 됩니다.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증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증명 그 자체가 죄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전 생애를 아버지의 섭리와 뜻에 맡겨야 함을 확신하셨고 갈망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굶주림에 대해서도 아버지의 사랑에 맡겨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4,4)라고 단호하게 대답하십니다. 이것은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신뢰의 표현입니다. 사십 일을 단식하셨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뢰와 사랑 안에 머물고 계셨던 것입니다. 40일간의 굶주림도 결코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사랑과 신뢰를 깨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살고 있을까요?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고 있을까요? 아니면 내 육신을 채워주는 빵에만 관심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이런 유혹을 당했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신앙이 밥 먹여 주냐?”하고 하느님을 등지지는 않았을까요?
또한 이 사순시기에는 내가 가진 빵을 움켜잡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내어 줄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나눌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단식과 금육은 절약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어 주기 위해서 하는 것임을 꼭 기억하는 은총의 사순시기를 보내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