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만난 치유 받은 소경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요한9,35) 예수님께서는 치유받은 소경에게 물으십니다. 그는 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이 죄인이라 하더라도 그가 체험한 예수님은 죄인이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치유해주신 “사람의 아들”이심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생님,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제가 그분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요한9,36)라고 청합니다. 그는 눈앞에 계신 예수님을 아직 알아 뵙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요한9,37) 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소경이었던 그에게 충만한 믿음을 갖도록 분명하게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소경이었던 그는 “사람의 아들로 자신을 계시하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믿게 됩니다. “주님, 저는 믿습니다.”(요한9,38) 육신의 눈을 뜬 그는 믿음의 눈까지 뜨게 됩니다. 이제 그는 예수님께 경배합니다. 경배한다는 것은 꿇어 엎드린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만 드릴 경배자세를 예수님 앞에서 취함으로써 예수님을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되신 분, 곧 구세주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매일 우리는 주님께 기도합니다. 주님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주님의 일을 볼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소경이었던 그는 기도의 응답을 얻었고, 예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이제는 내가 할 차례입니다. 주님이심을 알아 뵙고 있기에 주님께 입으로만 “믿습니다.”라고 고백하지 않고, 주님 앞에 꿇어 경배하며, 온 마음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저의 주님이심을 굳게 믿습니다.”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하지만 입으로 만의 고백이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왜 세상에 오셨는지를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9,39) 이 말씀처럼 예수님의 자비로 소경은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본다고 자처하는 이들(유다인들의 지도자들)은 눈이 멀어 예수님을 알아 뵙지 못하였습니다. 태생소경은 예수님으로 인해 육신의 눈 뿐 아니라 신앙의 눈까지 뜨게 되었으나 외적으로 볼 수 있는 자들(유다인들의 지도자들)은 영적이고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소경이 된 것입니다.
“참으로 본다는 것”은 하느님 빛의 영역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영역은 믿음을 통해서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빛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결국 보지 못하게 되고 하느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빛이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심판자이신 예수님을 알아 뵙지 못하는 이들, 즉 “빛을 거부하고 어둠의 자녀가 되는 이들”은 결국 눈먼 자가 되어 멸망으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눈먼 자에 대해서 말씀하시자 몇몇 바리사이가 예수님께,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요한9,40)하고 질문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소경인지를 모르고 있기에 이렇게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치유행위를 보고도 믿지 못하고 있으니 소경이 틀림없습니다. 소경이었으나 이제는 볼 수 있는 그를 보고도 믿지 않았으니 눈 뜬 장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눈은 있으되 보지 못하는 소경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씀은 아니겠지요?”라고 말하는 이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요한9,41)고 말씀을 하십니다.
바리사이들이 “본다.”고 하는 것과 예수님께서 “본다.”고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본다고 자처하면서 하느님의 일을 하시는 예수님을,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니, 그들은 보지 못하는 것이고, 그들의 죄는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생각과 고집에 사로잡혀 있는 한 그들의 죄는 그대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코 하느님의 일을 볼 수 없고,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할 수가 없습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신앙인이면서도 계산하고, 내 것 만을 챙긴다면 나는 아직 소경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좀 더 정확한 계산을 해야 합니다. 좀 더 잘 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참된 것을 볼 수 있고, 빛 안에서 빛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