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은 구원을 끌어당기는 보화

자선은 구원을 끌어당기는 보화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심판(마태25,31-46)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고,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누군가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은 선행을 쌓는 것이며, 내 죄의 보속을 하는 것이며,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입니다.

 

또한 자선을 베푸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내 옆에 있는 이들이 굶주림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때, 그 모습을 외면하는 것은 죄를 끌어당기는 일입니다. 이것은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루카16,19-31)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가난한 라자로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습니다.

 

이 부자는 넉넉한 사람입니다. 넉넉한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라자로가 바라는 것은 풍요로운 것이 아니라 그저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입니다. 당시 고기를 손으로 집어 먹으면 손에 묻은 기름을 빵으로 닦아 냈습니다. 가난한 라자로가 원한 것은 화려한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얻어먹으려 했습니다.

 

만일 부자가 라자로를 집에 불러들여 한 끼라도 식사를 대접해 주었다면 주님께서는 그 부자에게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주님께서는 분명 이렇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25,34-36)

 

그러나 부자는 이 복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외면하였습니다. 가난한 라자로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던 부자는 지옥에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청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루카16,24) 나도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닫히는 순간, 나는 이런 운명을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라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마태25,45)

 

그러므로 자선은 하느님 자녀들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사순시기, 사순시기(주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