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
아담과 하와는 카인과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기가 되고 카인은 땅을 부치는 농부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 카인은 땅의 소출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아벨은 양 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습니다. (창세4,3-4)
그런데 하느님께서 즐겁게 받으시지 않는 재물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재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정성이 담기지 않은 재물입니다. 카인의 재물은 정성이 담기지 않았고, 아벨의 제물은 정성이 담겼습니다. 레위기 1장 12절에 보면 “맏배.”, “기름기”는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인데, 아벨은 양떼 가운데서 맏배의 기름기를 드렸습니다(4절). 즉 아벨은 하느님께 가장 좋은 것만을 정성껏 바쳤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느님께서 카인의 제물을 굽어보시지 않자 카인은 몹시 화를 내며 얼굴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카인에게 “너는 어찌하여 화를 내고, 어찌하여 얼굴을 떨어뜨리느냐?7 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창세4,6-7)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카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악한생각(아벨을 죽이려는 나쁜 마음)을 억누르도록 카인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죄악은 나를 집어삼키기도 하고, 내게서 쫓겨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카인은 죄악을 붙잡았고, 그 죄악은 카인을 집어삼켜 카인을 동생인 죽이는 살인자로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제물보다는 아벨의 제물을 더 기쁘게 받으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고 카인은 이제 아벨이 자신의 동생이 아니라 질투와 원망의 대상, 사라져야 할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카인은 아우 아벨에게 “들에 나가자.” 하고 동생을 들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 카인이 자기 아우 아벨에게 덤벼들어 그를 죽였습니다. (창세4,8) 질투와 분노에 눈이 멀어서 카인은 아벨이 자신의 동생임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죽여 버리고 맙니다.
카인은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형제지간의 사랑이지 질투나 미움이 아닙니다. 이기심과 교만이 내 마음에 가득 차면 나는 그렇게 관계를 파괴하고 결국 죄를 짓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벨의 정성스러운 마음을 예쁘게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카인은 마음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카인은 마음을 바꾸지 않고 아벨에게 미움을 드러냈습니다. 내가 잘 못 되었으면, 내 행동을 고치면 됩니다. 하지만 내 행동을 고치려 하지 않고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헐뜯거나 몰아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2, 제 3의 카인이 되어 죄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도 제2, 제3의 카인은 등장합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 카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창세4,9) 하지만 카인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주님께 대답을 합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지은 죄를 자신만 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에 마치 로봇처럼 간섭하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기회를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선을 행하고, 사람을 살리며,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카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하느님께서 모르시겠지.”하고 생각하면서 거짓말을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의 잘못에 구차한 변명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카인은 무례하게도 거짓말로 잡아떼었습니다. 내가 악행을 저지르면 자녀는 그 악행을 배워 더 악한 행동을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녀가 그대로 배웁니다. 그래서 “내 모습은 자녀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그 순간부터 벌은 당연히 따라옵니다. “들어 보아라.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라는 말씀처럼 나에게 피해를 입은 이들은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며 매달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느님께서는 공정한 심판을 해 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남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만들면 내 눈에서는 피눈물이 난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또한 내가 땅에 거름을 주지 않고, 죽음을 준다면 땅은 결코 생명을 주지 않게 됩니다. 내가 준 것을 내가 거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카인은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형벌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 “그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나 큽니다. 당신께서 오늘 저를 이 땅에서 쫓아내시니, 저는 당신 앞에서 몸을 숨겨야 하고,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되어, 만나는 자마다 저를 죽이려 할 것입니다.”(창세4,13-15) 하며 주님께 애원을 합니다. 카인은 자신의 잘못을 그제야 깨달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형벌이 어떤 것인지를 알았으며,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시어 카인에게 생존의 보증으로 표를 해 주십니다. 죄를 지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청할 때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느님” 그분이 바로 내가 믿고 있는 하느님이십니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세상에 파고드는 죄악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흠숭하지 못하고, 형제를 사랑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죄만 짓습니다. 나약한 의지는 욕망의 노예가 되고, 남보다 나아지고자 하는 욕망과 나보다 나은 사람에 대한 질투는 결국 나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습니다. 그러므로 제2의 카인, 제 3의 카인이 되지 않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하며, 내 형제들을 더욱 사랑하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사랑을 채워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