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함께 걸으시는 예수님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함께 걸으시는 예수님

어떤 깊이 있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할 때는 나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좀 더 나이가 많은 이에게 귀를 기울이고, 좀 더 지혜로운 이에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비슷비슷한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비슷비슷한 결론밖에는 내지 못합니다.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내가 결정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결정하실 수 있도록 나를 내어 맡겨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게 됩니다.

 

1. 슬픔에 잠겨 주님을 못 알아보는 제자들

두 제자가 길을 가다가 한 나그네를 만나게 됩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걸으십니다.(루카24,15) 둘이나 셋이 모인 곳에 나 또한 함께 하시겠다는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을 지키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알아 뵙지 못합니다. 그들은 스승님의 죽음으로 크게 상심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것들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에 관해서만 관심이 있었기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옆에서 동행하셨지만 예수님께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고, 누구신지도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을 건네십니다.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루카24,17)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대화에 끼어드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멈추어 섰습니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그들 가슴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이렇게 반문합니다. 클레오파스는 마리아의 남편(요한 19,25)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루카24,18) 예루살렘에 있었던 사람이었다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체포, 수난,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 모두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라는 말을 통해서 클레오파스가 얼마나 큰 상심에 잠겨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무슨 일이냐?”(루카24,19) 라고 반문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듣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입을 통해서 자신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클레오파스는 예수님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루카24,19)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루카24,20)라는 말을 통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앞에서 그들의 마음이 닫혀 버렸음을 고백합니다. 자신들의 판단이 자신들의 믿음을 없애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생각하고 희망을 걸고 있었는데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엠마오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

제자들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앞에서 자신들의 믿음과 희망을 접어버린 이유는 예수님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루카24,21)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강력한 힘을 가지고, 군중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며, 이스라엘 땅 안에서 로마군대를 몰아내고, 그들에게 자유를 주실 분으로 기대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을 세상적인 메시아로 생각하는 것을 걱정하셨고,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도록 많은 교육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보고 싶은 대로 보려고 합니다. 제자들은 그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제자들에게는 희망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벌써 사흘째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놀라운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루카24,22-24)

사실 제자들은 지금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를 자기도 모르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에 무덤이 비어 있던 것이고, 천사들의 발현까지 체험했고, 천사들이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다고 말해주었다면 믿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토마스 사도가 다른 동료 사도들의 말을 믿지 못했던 것처럼, 여인들의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천사의 발현이나, 예수님의 부활 소식 등은 그녀들이 헛것을 본 것이나, 상상속의 것을 이야기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죽음은 그들에게 충격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뵙지 못했기에 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지금 엠마오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3.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주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한탄을 하십니다. ,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루카24,25) 아마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가슴이 뜨끔 했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그들 마음이 열렸는지도 모릅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영광에만 관심이 있었지, 그 참뜻과 가르침을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자신들이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을 받아들였으니, 그들은 소경이었던 것입니다. 귀머거리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아가 받아야 할 수난은 하느님의 섭리적인 계획에 따른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지금 그 계획이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실현되었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루카24,26)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루카24,27)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메시아의 수난과 처절한 죽음은 이미 예언자들이 기록하였고, 그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루어졌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가끔은 상황이 되어야 만이 알아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다가 그 상황이 되어야 만이 알아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관심이 있을 때와 관심이 없을 때의 보는 것과 듣는 것의 결과가 너무도 다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내 곁에서 나와 함께 걷고 계십니다. 내가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성경에 대해서, 신앙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예수님께서는 늘 내 옆에 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옆에 있는 형제자매가 예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정신을 가지고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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