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

예수님께서는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사람은 값진 진주를 찾아다니고 있는 상인입니다. 여기서 진주라는 단어는 값비싼 가치만이 아니라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게 합니다. 조개 안에서 태어난 진주는 영롱한 빛을 발하며 보는 사람들을 감동시킵니다.

하느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며,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완전하며, 최고의 가치를 가진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역경 속에서 아름다움을 꽃피운 신앙은 영롱한 빛을 발하며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립니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마태13,46)

진주 상인은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습니다. 그런데 그의 행동이 어리석어 보입니다. 진주 하나에 모든 것을 바꿔 버리다니…,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진주는 바로 하느님 나라요, 나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를 만났고, 예수님께서 참된 목자이심을 알았으니,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제자들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나 또한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것임을 알고, 가장 값진 진주임을 알고, 모든 것을 뒤로하고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내가 찾는 진주(예수님)를 발견했으면 모든 것을 버리고 그것(하느님 나라)을 차지해야 합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차지할 것은 차지하는 현명한 신앙인, 슬기로운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기쁨을 아는 사람들이 바로 값진 진주를 발견한 상인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무엇이 이익이고, 무엇이 손해인줄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로 나아가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 가치를 모르는 이들은 늘 다른 것과 비교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가치를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이익일까요?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이익일까요?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 이익일까요?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것이 이익일까요? 아니면 주일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이익일까요?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이익일까요? 아니면 부모를 외면하는 것이 이익일까요? 계명을 지키는 것이 이익일까요? 아니면 나 스스로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는 것이 이익일까요?

 

어떤 것은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이 훨씬 더 이익인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이라는 시간 안에서 보면 그것이 정말 큰 손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는 상인처럼 그렇게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며 주변을 돌아보는 사람이 되어 봅시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투자할 것은 과감하게 투자하는 내가 되어 봅시다. 예수님을 알고 있다면 예수님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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