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예수님을 보지 않고 두려움을 바라본 베드로 사도

예수님을 보지 않고 두려움을 바라본 베드로 사도

그런데 베드로사도가 갑자기 두려움에 빠져 버리게 됩니다. 믿음이 사라지자 그는 물 속으로 빠져 들고 맙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거센 바람을 보면서 공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마태14,30)

예수님을 바라보면 믿음이 생기고, 두려움을 바라보면 불신이 생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떻게 물 위를 걸으실 수 있으셨을까요? 몸을 가볍게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걸어가시고자 하셨고, 물이 알아서 예수님을 받쳐 드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가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과 함께 그 힘이 공명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결되니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은 예수님과 연결된 공명을 깨뜨리게 되고, 물 속으로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공명할 때,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처럼 할 수 있게 됩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인은 공명합니다.” 하지만 다른 마음을 품을 때는 그 공명을 깨지고,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인들과 공명하려고 노력할 때, 나 또한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손을 붙잡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마태14,31)

 

누가 있어 바다 한 가운데서 오롯한 믿음으로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의심을 안 품으려고 해도 자연스럽게 의심이 날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의심만 품지 않는다면 주님과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주님과 공명하며 주님과 하나가 되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 순간도 의심 없이 오롯이 주님께 믿음을 둔 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평상시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게 물 위를 걷는 중에 별의 별 생각 다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대한 굳은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내 안에 조금이라도 불신이 남아있지 않도록 몰아내고 믿음으로 채워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맡겨 드립시다. 다른 생각을 하지 맙시다. 나머지는 주님께서 알아서 해 주실 것입니다. 의심이 일어날 때 주님! 제가 제 의지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의심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의심을 몰아내주소서.”라고 기도합시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마태14,33)

 

제자들의 기쁨과 두려움은 얼마나 컸을까요? 이렇듯 크신 하느님의 아드님과 함께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헛된 것에 마음을 두지 맙시다. 그 헛된 것에 마음을 둘 때, 주님을 잊게 됩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오면,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안 되면 포기하고, 주님을 원망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주님께 온전히 맡겨 드립시다. 그렇게 해서 네 믿음이 참으로 장하다.”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가해 11-20주일, 연중시기(가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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