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시다(마태16,21-23)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했기에, 이제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 예고를 하십니다. 수난의 장소는 예루살렘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언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는 것은 부당하기 때문입니다(참조: 루카13,33). 백성의 지도자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들이 원하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기에 하느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나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는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펄쩍 뛰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마태16,22)
베드로 사도는 “예! 그렇습니까? 그럼 그래야지요.”라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했습니다. 인간적인 감정으로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인간적인 사랑으로 베드로 사도는 눈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고백은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가 드러나는 것이며, 그런 일이 있다면 자신이 막겠다는 것입니다.
내 뜻과 하느님 뜻을 구분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내 뜻을 하느님께 이루어주시길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내 뜻을 이루는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내 뜻이 이루어져서는 안 되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요셉 성인이 성모님을 받아들일 때도 그랬습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16,23)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인간적인 사랑을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베드로 사도는 당황했을 것입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사탄이라고 말씀을 하시니.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베드로 사도의 인간적인 사랑이 예수님께는 유혹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유혹을 피하는 방법은 단호함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게세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베드로 사도의 이 말이 얼마나 큰 유혹이 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서서 베드로 사도에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과 인간의 일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예수님께 꾸지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것은 베드로 사도의 사랑 안에서 나온 고백이었기에 마음이 더더욱 아팠을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사랑했기에 자신을 비우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온전히 따르기 위해서는 내 것을 버려야 함을 꼭 명심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