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마태16,24-28)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가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내 십자가는 무엇이고, 내가 짊어지고 가고 있는지, 버리려고 하고 있는 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①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르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16,24)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자기를 버린다는 것은 자신을 안다는 것, 그리고 자신에 대하여 더 이상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삶을 포기한다기보다는 더 나은 가치를 위해 자신의 욕심을 접어 둔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버린다는 것은 선택에 대한 확신에서 나오는 포기입니다. 보다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보다 작은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필리 2,6-8)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예수님처럼 해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짊어져야 합니다. 참된 가치를 주님께 두고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목숨까지 내어놓는 상황을 맞이한다 할지라도 주님을 선택해야 합니다.
운전을 하려면 운전면허가 있어야 합니다. 공연을 가기 위해서는 티켓이 있어야 합니다. 수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수영복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버릴 것은 확실하게 버리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다시 움켜잡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말씀을 따를 수가 있습니다. 버릴 것은 버려야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을 담을 수 있습니다. 버린 만큼 채울 공간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기로 했다면 그 길과 반대되는 것들은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길 안에서 주어지는 것들은 모두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순교나 박해까지도 감수해야 하고, 자신의 이익마저도 끊어버리겠다는 단호한 의지와 결심이 필요합니다.
② 자기 목숨을 구하는 사람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확실한 보증을 해 주십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16,25)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생명관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잃는다면(영원한 생명) 그것을 무엇으로 다시 살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 말씀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 주시고, 제자들에게 따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욕심 부리는 사람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런데 그 욕심 때문에 잘 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욕심 때문에 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가 부려야 할 욕심이 있습니다. 그 욕심은 바로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려는 마음입니다. 그 욕심은 한껏 부려도 됩니다. 하지만 그 욕심을 위해서 다른 것들은 버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 욕심 때문에 미사에 참례하고, 그 욕심 때문에 성경 강좌에 나오고, 그 욕심 때문에 성지를 순례하고, 그 욕심 때문에 환자를 방문하고 냉담자를 방문 하는 것입니다. 이 욕심을 부리기 위해서는 버릴 것이 많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누구나 다 자신의 생명을 구하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생명에서 멀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순교자들의 모습을 기억해 봅시다. 순교자들은 세상에서 자신들의 목숨을 잃었지만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박해자들은 세상에서 그들의 목숨을 얻었겠지만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생명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인지, 생명을 잃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 욕심을 한껏 부려보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③ 자기 목숨과 바꿀 수 있는 것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원칙 하나를 말씀해 주십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마태16,26-27)
정말 중요한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버릴 것은 버려야 하고, 움켜잡을 것은 움켜잡아야 하며, 지킬 것은 지켜야 합니다.
이 세상 것들 중에서 내 목숨과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썩어 없어질 것들에 투자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에 투자를 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 섰을 때 “넌 안 되겠다.”라는 말씀을 들으면 얼마나 절망스럽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부터 조금씩 노력해 봅시다.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④ 하느님 나라를 보는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마태16,28)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십니다. 다시 오시는 이유는 심판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릅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십니다.(마태24,36) 그런데 아직도 안 오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만일 내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고 한다면 그래서 마지막으로 소원 하나씩 들어주신다고 한다면 어떤 소원을 말씀드릴까요? 아마도 “저기요. 예수님! 아직 준비가 좀 덜 되었거든요. 그러니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주어진 시간은 우리에게 기회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만일 내일 나에게 죽음이 닥친다면 나는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아쉬운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고, 내가 움켜잡고 있는 모든 것들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종교는 건강종교 입니다. 그래서 다이어트에 목숨을 걸고 살을 빼기 위해 별의 별 것을 다하고, 건강을 위해 안하는 것 빼고는 다 합니다. 굉장한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썩어 없어질 그 육신을 위해서는 그렇게도 많은 것을 투자하는데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는 왜 그리도 인색한지…,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심판 때 판결이 내려집니다. 그런데 그때 “넌 안 돼!”라는 말씀을 들으면 얼마나 절망스러울까요? 오늘부터 조금씩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가능성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