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직제도(假聖職制度)
모방(模倣)성직제도라고도 하는데 교계제도를 잘못 이해한 조선 신자들이 스스로 성직자를 임명한 것을 말합니다. 권일신, 이승훈 등은 오히려 좀 더 조직적인 방법으로 선교하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성직자를 뽑아 보다 효율적인 선교에 나섰습니다. 그리하여 이승훈, 권일신, 이존창, 유항검(아우구스티노), 최창현 등 10명을 신부로 임명하고 성사를 집전할 수 있는 권한도 주었습니다. 고해성사의 경우 처음에는 남자들에게 국한되었으나 여성 신자들의 간청에 의해 확대되었습니다. 잘못된 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해 교세는 빠르게 확대되었습니다.
신부로 임명된 유항검은 교리서를 숙독하던 중 자신들의 행동이 독성죄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문의하기 위해 1789년 윤유일(바오로)을 중국으로 파견하였습니다. 그는 성사집행의 중지, 신자들을 격려하는 내용이 들어 있는 구베아 주교의 사목서한을 받아가지고 돌아왔습니다. 한국교회는 주교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들이 만들었던 가성직제도를 철폐합니다. 그리고 이듬해 한국 교회는 성사를 간절히 원하는 신자들에게 성직자를 파견해달라고 청하는 편지를 보냈으며, 이때 윤유일은 성직자 파견 약속과 함께 미사 도구, 포도주 제조법 등을 배워가지고 돌아왔습니다. 한국교회는 그렇게 교회에 순명하면서 자연스럽게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