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제사와 신해박해

조상제사와 신해박해
윤지충·권상연의 유교의례 거부

17915, 윤지충은 어머니 권씨의 상을 당하였다. 천주교 신도인 어머니는 평소에 자기가 죽거든 장례식에 미신적이거나 또는 천주님의 법에 어긋나는 것은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간곡히 일렀었습니다. 윤지충과 그의 어머니는 천주교에 완전히 개종하였기 때문에 천주교회의 명령에 따르는 것을 당연한 도리로 여겼습니다. 그는 외종형인 권상연과 상의한 후 어머니의 유언과 교회의 지시에 따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는 정성을 다하여 정중하게 상례(喪禮)를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유교의 제사 의식에서 봉행하였던, 음식 차리거나 신주를 모시는 의식은 하지 않았습니다. 마침 윤지충의 집에 전염병이 발생하여 멀리 사는 친척과 친지들에게는 연락하지 못하고, 동네 사람들만 참석하여 장례를 치렀는데 신주를 모시지 않고 제사마저 지내지 않은 것이 와전되어, 조문(弔問)도 받지 않고 어머니의 시체를 버렸다는 엉뚱한 풍문으로 비약되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체포되었고, 1791117(양력 122) 전라도 관찰사는 윤지충과 권상연에게 마지막으로 심문을 하며 배교를 강요하였습니다. 그러나 윤지충에게는 통할 리가 만무하였습니다. 그는 살아서건 죽어서건 가장 높으신 아버지를 배반하면 아무데도 갈 곳이 없다.”고 관찰사의 말문을 막았습니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참수에 처해졌고, 그 머리를 5일 동안 높이 매달아놓아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강상(綱常)의 중요함과 사학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도록 하였습니다. 그곳이 바로 전주의 전동성당자리입니다.

윤지충·권상연의 순교
윤지충과 권상연이 형장으로 갈 때 외교인과 천주교인들이 뒤따랐습니다. 권상연은 모진 태형으로 몸이 허물어져 초죽음 상태로 예수 마리아만 부르며 걸어갔습니다. 윤지충은 권상연보다 몸이 튼튼하여 마치 잔치에 나가는 사람처럼 즐거운 표정으로 죽음을 향하여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의젓한 모습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설교를 장엄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도들만 아니라 외교인들까지 모두 감탄하였습니다.

사형장에 도착하자, 영장(營將)은 두 사람에게 임금에게 복종하고 조상의 신주에 상례적인 공경을 드리겠으며, 서양 종교를 버리겠는가.”하고 물었습니다. 두 사람은 한마디로 거절하였습니다. 영장은 관례대로 윤지충에게 명패에 적힌 왕의 판결문을 읽도록 하였습니다. 윤지충은 사형선고문을 받아 큰소리로 당당하게 읽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머리를 자르는 목침 위에 머리를 고이고는 예수 마리아를 여러 번 부르며, 침착한 태도로 망나니에게 준비가 다 되었으니 치라는 신호를 하였습니다. 권상연도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윤지충처럼 목이 잘렸습니다.

 

17911113(양력 128) 오후 3,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시각과 같았습니다. 윤지충(바오로)의 나이는 33세였고, 권상연(야고보)41세였습니다. 친척과 친지들은 장례를 치르려고 형장에 왔다가 모두 놀라운 일을 목격하였습니다. 처형된 지 아흐레가 되었는데도 시체가 상하기는커녕 바로 그날 참수를 당한 듯 선혈이 붉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를 고여 놓고 자른 목침과 결안을 써놓았던 명패가 방금 전에 흐른 듯 선혈에 촉촉이 젖어있었던 것입니다. 12월이면 춥기도 하지만, 그 해는 어찌나 추웠던지 방안에 있는 물그릇마저 얼었기 때문에 놀라움이 더욱 컸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그들의 열정은 얼어붙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놀라운 상황을 목격한 외교인들은 경탄하며, 재판관들의 불공정함에 항의하고 두 순교자의 무죄를 주장하였습니다. 이들 중 어떤 사람들은 이 기적에 감동하여 입교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교우들도 놀라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우러러보며 하느님을 찬미하였습니다.

형장에 모인 교우들 중 어떤 이는 의원이 포기한 다 죽게 된 환자였는데, 순교자들의 피가 묻은 명패를 담갔던 물을 마시고 병이 그 자리에서 나았습니다. 또 거의 죽게 된 사람이 순교자들의 피에 적신 수건을 만지고 즉시 나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두 순교자를 통하여 만인에게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순교야말로 하느님을 증거하는 최고의 표양이었습니다. 순교자에게 나타내 보이신 기적은 교우들의 믿음을 굳세게 해주었고, 또한 많은 외교인들을 신앙으로 인도하였습니다. 항상 언제 어디서나 이 말은 진리였습니다. 순교자의 피는 신앙의 씨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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