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작통법

오가작통법

사도세자의 죽음을 자기들 좋을 대로 해석한 정순왕후와 노론 벽파의 세력들은 이제 그것을 바탕으로 정조 때 중용 되었던 남인들과 정조의 친인척들을 단계적으로 제거하기 시작하였다. 정조는 남인들을 중용 하면서 천주교에 대해서는 무작정 탄압하기보다는 그들의 마음을 돌려놓으려 하였다. 그러나 정조가 죽고 순조가 등극하자 천주교는 교화의 대상이 아니라 국법으로 엄히 처단하는 상황으로 급변하게 되었다.

 

1801110일 대왕대비 정순왕후는 천주교를 사학으로 규정하고 사학 금지령을 내렸다. “선왕께서는 이 땅에서 천주교를 몰아내야 한다고 상소를 올릴 때마다 정학(正學)이 밝아지면 사학(邪學)은 저절로 종식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천주를 믿는 사람들이 오히려 옛날보다 더 많아지고 있으니 선왕의 말은 틀렸느니라.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는 것은 인륜이 있기 때문이며, 나라가 나라 꼴이 되는 것은 나라에 올바른 가르침이 있어 백성들을 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주교라는 것은 어버이도 없고 임금도 없어서 인륜을 무너뜨리고, 저 어리석은 백성들은 그것에 미혹되어 점점 더 물들고 어그러져서 마치 어린 아기가 우물에 빠져 들어가는 것 같으니, 이 어찌 측은하게 여겨 상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감사와 수령은 천주를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깨닫게 할 것이며, 천주교를 믿지 않는 자들로 하여금 그릇된 길로 들어서지 아니하여 선왕(정조)께서 자리 잡고 기르셨던 훌륭한 공덕을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리고 이와 같이 엄금한 후에도 뉘우쳐 회두하지 않는 무리가 있다면 마땅히 역적(逆賊)을 다스리는 법률로 다스릴 것이다. 각 읍()의 수령들은 각기 그 지역에서 오가작통법을 시행하여 천주교를 믿는 무리가 있다면 관가에 고발하여 징계토록 하여라.”

 

오가작통법. 이는 본래 다섯 가구를 한 통으로 묶어서 서로 강도, 절도 같은 범법 행위가 일어났는지를 감시하고 규제하는 치안 유지법이었다. 그런데 이 방법을 천주교도 색출에 동원하여 다섯 집끼리 서로 천주교도가 있는지 감시하고 고발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 중에 한 집에서라도 천주교 신자가 나오면 다섯 집이 모두 화를 입게 되는 악명 높은 오가작통법을 써서 권력을 잡은 이들은 전국을 피바다로 몰아넣었다. 이렇게 해서 죽은 사람이 전국적으로 수만 명이 넘었는데 이 중에는 진짜 천주교 신자도 있었지만 애매하게 연루돼 죽은 이도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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