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의 과정
공식적인 체포령이 내려지기 전 1838년 말부터 이미 박해는 시작되었다. 1839년 4월 우의정 이지연은 천주교를 무부무군(無父無君), 금수지교(禽獸之敎)로 규정하고 천주교 박멸정책을 건의하였다. 수렴청정을 하는 헌종의 대왕대비는 이를 받아들여 천주교를 전멸시키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고 인류가 전멸할 것이라며 엄명을 내렸다.
이후 포도청에 갇혀 있던 교우 9명이 5월 24일에 서소문 밖에서 참수를 당하였고, 정해박해(1827) 때 잡혀 13년간 옥고를 치른 교우들도 같은 날 처형하였다. 밀고자에 의해 선교사 3명이 조선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배교자의 밀고로 정하상, 유진길, 조신철, 현석문 등이 체포되었고, 선교사들에 대한 수배령이 내려졌다.
박해는 4월 말부터 기세가 누그러져 약 1개월 동안은 평온을 되찾았다. 그 때 박해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형판(刑判) 조병현이 참판과 더불어 사임하고, 홍명주(洪命周)와 임성고(任聖皐)가 각각 판서와 참판에 임명되었다. 박해자의 손길이 뜸해지자, 박해에 대비하여 교우들에게 성사를 집전하러 급히 서울로 돌아왔었던 앵베르(Imbert, 世世亨) 주교도 4월 22일(음) 수원(水原)으로 피신하였다. 주교가 피신한지 한 달이 지나서 조정의 세도는 조병구(趙秉龜)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그는 헌종의 외삼촌으로 금위대장(禁衛大將)의 지위에 앉아 국사에 전념하였다. 그런데 그는 천주교를 적대시하던 인물이라서 등장과 함께 교우들을 색출하기 위해 새로운 법령을 선포하게 되었다. 5월 25일(음)에는 대왕대비의 이름으로 새로운 칙령(勅令)이 반포되었는데, 내용은 교우색출에 더욱 착념(着念)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색은 별 진전이 없었다.
그런데 황산 김유근의 사망과 천주교인 김순성(金淳性)의 배신행위로 정찰(偵察)은 뜻밖의 큰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김순성은, 김여상으로 알려진 인물인데, 교우의 가면을 쓰고 들어와서 교회의 사정을 상세하게 관(官)에 제공했던 것이다. 그의 제보로 6월 7일에는 유진길이 잡혔고, 전후하여 정하상(丁夏祥), 조신철(趙信喆) 등 조선교회 재건운동의 요인들이 잇달아 잡히게 되었다. 수원의 양감(陽甘)이란 동리에 숨어 있던 앵베르 주교는 김순성과 포졸들이 행방을 알고 추적하는 중에 7월 3일(음) 포졸 앞에 자현(自現)하였다. 앵베르 주교의 체포는 조정을 매우 놀라게 하였는데, 조정은 체포되지 않은 나(羅)와 정(鄭) 두 신부를 잡도록 지시하고 7월 13일(음)에는 이들을 잡기 위해 충청도에 오가작통법을 엄격히 적용하라고 훈령을 내렸다.
앵베르 주교는 교우들의 재난을 그치게 하기 위하여 두 신부에게 쪽지를 보내어 자현을 권고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두 신부는 충청도 홍주(洪州)에서 자현하여 서울로 압송되었다. 모방(Maubant, 羅) 신부와 샤스탕(Chastan, 鄭) 신부가 압송되어 오자, 포청은 8월 5일(음)과 7일(음)에 3명의 선교사를 신문하였다. 이들은 천주교를 전하러 이 땅에 자원하여 왔으며, 교우들은 고발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들은 곧 의금부로 이송되어 유진길, 정하상, 조신철 등과 같이 추국(推鞫)을 받게 되었다.
첫 번째 신문에서, 신부들은 국적과 입국 목적을 명백히 한 다음, 입국시 의주(義州)로부터 조신철과 정하상의 인도를 받았고, 서울에서는 정하상의 집에 거처했다는 사실만을 자백하고, 그 밖의 물음에 일절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판관은 바른 대로 말하면 본국에 가게 될 것이라고 고발을 유도했지만, 이들은 계명대로 남을 해하지 않겠다고 답하였다. 이에 더욱 형신(刑訊)이 가해졌으나, 대왕대비는 이들이 주뢰(周牢)와 주장(周杖)으로 죽을 염려가 있고 진상을 밝힐 단서도 없으니 신유년의 주문모(周文謨)의 예에 의하여 효수경중(梟首警衆)[죄인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달아 뭇사람을 경계함]하라 하였다. 이에 3명의 프랑스인 선교사는 중죄인처럼 극형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조선 정부는 11월 23일에 척사윤음을 한문과 한글로 작성하여 반포하여 박해를 일단 마무리하였다. 여론이 학살을 중지하자는 쪽으로 기울었고, 대부분의 주동자들이 처형되었으므로 더 이상 박해를 확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