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박해

신유박해

1795년 을미년에 윤유일 등이 순교하고, 충청도 일대에 박해를 가하기는 했으나 정조의 치세 때에는 큰 박해는 없었다. 그 시대의 박해는 주로 항상 노론벽파가 남인시파를 꺼리고 질투하여 함정에 빠뜨리려는 당쟁의 소산이었다.

순조 시대에는 정순왕후 김씨가 섭정이 되었는데, 대비는 노론벽파에 속한 여인이었다. 순조 원년 111일 대왕대비가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를 선포하고, 전국에 오가작통법을 세워 빠짐없이 고발케 하여 근절을 기하라고 하였다. 이것이 신유박해이다. 그 결과 남인의 거두인 이가환과 권철신은 옥사 당하고, 정약종과 홍낙민 등은 순교하였으며, 이승훈이 처형되고, 정약전, 정약용 형제는 유배됨으로써 남인 세력은 거의 몰락하였다.

그런데 오랫동안 잠적했던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312일 자현(自現)하여 박해는 재연되고 그에게 은신처를 제공해온 독실한 여회장 강완숙과 궁녀 등이 순교하고 주신부는 군문효수되었다. 929()에는 황사영이 체포되어 대역부도죄로 순교하였다. 그런데 그가 작성한 이른바 황사영 백서가 탄로되어 큰 파란을 일으키고 천주교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일변시켰다. 위정자들은 그것을 마치 천주교회의 가르침인 양 단정하고, 외세를 불러들이는 매국도당으로 몰아 박해를 합리화시키는 구실로 삼게 된 것이다.

 

정순왕후.

15세의 꽃다운 나이에 왕비에 책봉되어 66세의 늙은 왕과 가례를 올렸던 그녀. 그러나 왕위를 이을 자식 하나 낳지 못하였던 그녀. 그녀에게 있어서 궁궐의 생활은 마치 하늘을 자유롭게 날라 다니던 새가 새장 안에 갇혀 자유를 잃은 그런 생활이었다. 그리고 눈의 가시처럼 보였던 사도세자. 그래서 사도세자를 모함하여 제거했지만 그 뒤 왕위에 오른 이는 다름 아닌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눈물로 애원하던 정조를 외면한 그녀는 왕과의 관계에서 언제나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지난 20여년 간을 가슴 조이며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도세자의 죽음과 정조의 왕위계승을 방해했던 대가를 처절하게 치뤄야만 했다. 정조의 등극 후 정조의 신임을 받은 홍국영에 의해 그녀의 인척들이 죽음을 당하게 되었고, 오라비 김귀주도 흑산도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이렇게 그녀의 가문은 권력에서 멀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랬으니 정순왕후는 정조가 미울 수밖에 없었고, 왕과의 관계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조가 승하한 후 11살의 어린 나이의 순조가 즉위하였다. 그녀는 순조의 즉위 후 교지를 내렸다. “선왕이 급작스럽게 승하하심에 어린 세자가 보위에 올랐으니, 왕실의 법도에 따라 왕이 국사를 돌볼 수 있을 때까지 수렴청정을 하겠노라. 경들은 어린 왕을 모시는데 있어서 선왕의 예에 떨어짐없도록 하라. 또한 영안부원군 김조순에게는 총융청의 전권을 주노니 영안부원군 김조순은 도성의 경비는 물론 도성 외곽과 경기 일대의 경비를 강화하여 왕의 경호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라

이제 세상을 호령하는 정순왕후는 우선 친정 6촌오빠인 김관주를 이조참판직에 앉히고 벽파들을 대거 등용하였다. 그러나 아직 반대파들을 향해 칼을 뽑을 수는 없었다. 왕이 죽었을 경우 보통 국장기간이 6개월이었고, 이때는 백성들 또한 상복을 입고 왕의 죽음을 대도하는 기간이였기에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감행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6개월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굳건히 할 방안을 세웠다. 대 살육의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순조 즉위년 1218, 국장의 기간이 끝나면서 정순왕후는 사도세자에 대한 처분에 있어서 벽파의 의리가 정당했음을 강경하게 천명하였다.

정순왕후는 조정대신들 앞에서 힘주어 말했다. “사도세자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너무나도 포악했기에 이 나라 종묘사직을 짊어지고 나갈 수 없었소이다. 그래서 상왕은 종묘사직을 위하여 부득이 사도세자를 폐할 수밖에 없었고, 벽파 또한 가슴은 아프지만 임금의 뜻에 순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오. 그러나 시파는 조정의 안녕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사도세자를 옹호하였소이다. 이는 소인배무리나 하는 짓으로써 어찌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들이 나라의 일을 생각해야지 사사로이 개인의 이익을 챙길 수 있단 말이오. 사사로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던 무리는 엄벌에 처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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