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예수님께서는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를 통해서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악의를 품고 있는 유다인들을 향하여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이 비유에서 어떤 밭 임자는 바로 하느님이시고, “포도밭은 세상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인간들에게 맡기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유의지라는 크나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제 알아서 하기를 바라십니다. 물론 책임은 내가져야 합니다.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주인은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습니다. 포도 철은 바로 결실을 맺는 시기이고, 주인께 감사를 드려야 하는 시기입니다. 주인은 당연히 받을 권한이 있고, 소작인들은 당연히 소작료를 바칠 의무가 있습니다. 종들은 몇 세기를 지나는 동안에 차례차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진 예언자들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도조는 무엇이겠습니까? 이 세상에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었으니 억만금을 바치라는 말씀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적어도 포도원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감사하고, 그것을 혼자만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바쳐야 할 도조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소작인들은 도조를 낼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주인이 보낸 종들을 매질하고, 더 나아가 죽이기까지 합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세상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도조로는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게 했는데 사람들이 그 도조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을 보내어 도조(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찬미와 감사)를 드리게 했는데 오히려 종(예언자들)들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예수님(아들)까지 보내신 것입니다.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마태21,37)

그런데 이 주인에게는 자기 아들의 목숨보다도 밭의 도조가 더 중요했을까요? 아들보다도 밭에다 더 애정을 쏟았던 것일까요?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바라본다면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주인)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아들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종들의 운명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아들까지도 보냈습니다. 그러자 소작인들은 주인의 아들을 보자 자신들의 본심을 드러냅니다.

“‘저자가 상속자다. ,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마태21,38-39)

빛을 싫어하는 어둠에 속한 사람들은 자꾸만 어둠 속으로만 들어가려 하고, 빛을 꺼 버리려고 합니다. 그렇게 유다인들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박해하고,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습니다.

포도밭 주인은 마지막까지 기회를 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기회를 주십니다. 이제 내가 응답할 차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하고 응답하고 구원의 길을 걷던지,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막고 막가는 삶을 살아갈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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