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22,40)
예수님께서는 유다교의 율법 규정을 십계명으로 환원하셨고, 십계명은 다시 이렇게 사랑의 이중계명(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환원하셨습니다. 율법의 핵심은 결국 사랑의 이중계명, 곧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22,40)
참으로 명쾌한 가르치심입니다. 유다의 랍비들은 율법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계명을 명백한 말로 간추리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힐렐르(기원전 20년)는 “네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마라. 이것이 율법의 전부이며 다른 계명은 그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랍비들이 말하는 248가지의 계명과 365조목의 금령들을 지킬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두 가지 계명만 지키면 되는 것입니다. 이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은 모든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참된 뜻을 이루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기쁜 소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모든 이들을 편히 쉬게 해 주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계명을 통하여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셔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셨고, 당신의 몸을 바쳐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 또한 하느님을 사랑하고 내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형제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느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이웃과 형제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보며, 사랑의 계명을 더욱 충실히 지키기 위해 마음을 활짝 열어 봅시다. 그리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해 봅시다.



십계명
일.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이.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삼.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사. 부모에게 효도하여라.
오. 사람을 죽이지 마라.
육. 간음하지 마라.
칠. 도둑질을 하지 마라.
팔.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구.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십.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십계명은 하느님과 그의 백성 간에 맺은 계약의 핵심이요 선물입니다. 인간편의 계약 당사자는 단체로서의 하느님 백성이므로 각 개인은 하느님 백성의 구성원이 됨으로써 계약에 참여하게 되고 계약의 내용인 구원을 얻게 됩니다. 각 개인의 권리와 윤리적 의무의 근거는 구원의 공동체에 귀속함에 있습니다. 십계명의 첫 세 개 계명(탈출기 전승에 따른 경우 첫 4계명)은 하느님과 인간의 수직관계를 규율합니다. 이를 상삼계(上三誡)라고도 부릅니다. 제1계명은 하느님을 흠숭하는 것이며 우상숭배 금지는 한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는데 마땅히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히 하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킴은 하느님의 흠숭을 구체화시킨 것입니다. 나머지 일곱 계명(제4~제10계명)은 계약의 백성 상호간의 수평관계를 규율하는 내용으로서 하칠계(下七誡)라 부릅니다. 효도, 생명 존중, 부부의 신의, 재산권 보호, 진실한 증언, 탐욕으로부터의 자유 등입니다. 십계명의 법규들은 자연법을 그 원리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양심에 어긋난 것은 모두 죄입니다.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온 세상의 창조자이신 하느님을 섬기지 않으면 그것도 신앙인이 할 행동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하느님과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를 규정하고, 올바른 삶을 살도록 가르칩니다. 계명을 지키는 살믈 살아갑시다. 하느님을 공경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갑시다. 계명을 지킴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