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하느님은 한 분이십니다. 하느님 외에는 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약한 인간은 큰 산이나 바다, 바위나 나무에도 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들을 섬겼습니다. 하느님 외의 모든 것들은 헛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들은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하느님께로부터 돌아서는 어리석은 이들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주 너의 하느님인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조상들의 죄악을 삼 대 사 대 자손들에게까지 갚는다.”(탈출20,4-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셨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현대의 우상은 재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6,24)
재물은 신의 형상을 띠고 있지 않지만 그 어떤 우상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하고, 하느님을 잊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 재물은 힘이 있어서 사람을 죽이게까지 하고, 사람을 파멸의 길로 인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멸하기 전까지는 그것이 참된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재물을 섬길 때, 주님께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이후에는 주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 주님의 모상을 만들어 주님께 경배를 드리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모상이 주님 자체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상들을 만들었다고 해서 우상숭배에 빠지거나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성상들이 신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성상들을 숭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은 그 성상들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지, 성상만을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개신교에서는 이 계명을 지킨다며 십자가에 고상을 붙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상 없는 십자가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십자가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에 달리셨기에 그 십자가는 구원의 도구가 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고상 없는 십자가를 걸어 놓는 것이 오히려 우상숭배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계명을 지키는 이에게 아낌없이 복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푼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5,19) 그러므로 하느님을 섬기며,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며 계명을 충실히 지키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