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는 이들에게 내려진 축복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는 이들에게 내려진 축복

예수님께서는 구원받을 사람들을 향하여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이라고 부르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얼마나 깊은 일치를 이루고 계신가를 보여주고 계시는 말씀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고,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예수님과 함께 계십니다. 아버지의 뜻이 바로 아들 예수님의 뜻입니다.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마태25,34)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는 말씀은 성실하게 살아간 이들에게 주어지는 상급입니다. 탈렌트의 비유에서 다섯 탈렌트와 두 탈렌트를 받은 종이 성실히 노력하여 두 배로 늘렸을 때 하신 주인의 말씀,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이 나라는 하느님께서 세상 창조 때부터 준비해 주신 나라로서 하느님 나라를 위해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나라입니다. 바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나를 위해서 준비해 두신 하늘나라입니다.

 

1. 하느님 나라를 차지한 이들의 삶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마음이 되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을 도와 준 사람들입니다. 굶주린 사람들과 목마른 사람들, 그리고 나그네들. 헐벗은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 죄 없이 감옥에 갇힌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사랑하셨고, 이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을 받을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 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25,35-36)

 

예수님께서는 의로운 이들에게 또 말씀하십니다.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예수님께서는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어 도움을 청하셨습니다. 그리고 의로운 이들은 도움을 청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필요하신 것을 드리는 사람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들은 조건 없이 예수님께 모든 것을 드린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굶주리고 목마른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 삶

둘째, 나그네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이는 삶

셋째, 헐벗은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 미는 삶

넷째, 병자들을 방문하여 돌보아주고, 위로해주며, 기도해 주는 삶

다섯째,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감옥에 있는 이들을 찾아가 돌보고 위로해주고, 혹시 억울한 이들이 있다면 진실을 밝혀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삶.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는 삶,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보살피는 삶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내가 그것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지 않고, 당연하게 하는 삶이 더더욱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의인들은 주님의 칭찬과 축복에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마태25,37-38)

 

의인들은 그저 자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자랑도 교만도 없는 것입니다. 의인들은 내가 오늘 이런 선한 일을 했구나!”라고 떠벌리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의로운 이들은 당연하게 자비를 베풀고,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에 이르는 길임을 주님께서는 최후의 심판을 통해서 나에게 알려 주십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의로움을 행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한 의로운 행동들을 내가 기억하고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의로운 행동이 아닐 수도 있음도 생각해야 합니다.

 

2. 의로움의 기준: 가장 작은이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

예수님께는 의로운 이의 기준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25,40)

예수님께서는 이웃에게 베푼 사랑의 실천을 당신에게 해 준 것과 꼭 같이 여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예수님께 해 드린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하느님 사랑의 척도는 이웃사랑입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물론 없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려는 사람은 먼저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가해 31-34주일, 연중시기(가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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