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어라.

깨어 있어라.

예수님께서는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르코 13,35) 이 비유에서 주인이 바로 그리스도이시고, 종들은 바로 우리 신앙인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각자 일이 있는데 어떻게 깨어 있으라는 말일까요? 들에 나가서 일을 하고, 집안일을 하고, 피로에 지쳐서 저녁에는 자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문지기만 깨어 있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주인은 전부 깨어 있을 것을 말씀하시는데 어떤 의미일까요? 이제 예수님께서는 왜 깨어 있어야할까요?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지만 하루하루 미루며, “그래 내일부터, 아니 모레부터 신앙생활 열심히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주님께서 오늘 오신다면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회개하지 못하고 갑자기 죽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마르코 13,36)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주님께 등을 돌리고 죄로 기울어진 삶을 살다가 주님을 맞이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잠을 잔다는 것은 주어진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이 잠을 잔다는 것은 결국 신앙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주님 앞에 서게 되면 결코 은총을 받지 못합니다. 신앙인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더디 오시겠지라고 게으름을 피우거나,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거나, 신앙을 외면한다면 주님께서 오셨을 때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깨어 있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예수님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의 삶의 핵심가치는 주님을 만나기 위한 삶이고,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한 삶입니다.

일을 할 때나 길을 갈 때나, 집에서 쉴 때나 친구를 만날 때도 신앙인은 신앙인으로 일을 하고 신앙인으로 쉬고, 신앙인으로 친구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깨어있는 것입니다.

저녁기도를 바치고 잠을 자는 신앙인들도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하며 일하고, 기도하며 음식을 먹는 신앙인들도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깨어 있는 삶은 회개의 삶을 말합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대림시기를 보내며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잘못을 뉘우칩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깨어있는 삶입니다.

말씀 안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삶입니다. 매일의 삶을 말씀 안에서 살아가니 주님의 가르침이 삶의 지침이 되고,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니 주님의 말씀이 내 가슴에 울리게 되고, 주님의 말씀 안에서 참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고,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삶이 깨어 있는 삶입니다.

내가 사랑해야 하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변함없는 사랑을 고백하며, 탄식 속에서도 그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 깨어 있는 삶입니다.

자주 미사에 참례하여 성체를 받아 모시고 주님과 일치의 삶을 이루는 것이 깨어 있는 삶입니다. 주님 안에서 깨어 있지 못하면 깨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대림시기를 잘 보내며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대림시기에는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 위로해 주고, 작은 것들을 나눕니다.

 

깨어 있는 삶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입니다. 우리 모두 깨어 있을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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