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는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셨습니다(마르1,21). 유다인들은 안식일마다 회당에 가서 신앙고백, 기도, 모세 오경과 예언서 봉독, 설교 순으로 진행되는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서나 예언서의 말씀을 봉독하시고, 그것을 참석한 사람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습니다. 그들이 놀란 이유는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마르1,22).

 

알고 가르치는 사람과 모르고 가르치는 것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형식적인 것들을 가르치는 이들과 깊이 있는 것을 가르치는 이들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율법 학자들은 모르고 가르치고 있었고, 그 말씀을 실천하지 않았고, 또 실천한다 하더라도 형식적으로 실천하였기에 권위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너무도 잘 알고 계셨기에 쉽게 가르치셨습니다. 또 그 말씀에는 힘이 있고, 또 치유능력이나 기적 등을 통해 당신의 말씀이 옳음을 뒷받침하셨습니다. 그리고 율법학자들은 다른 이들의 권위를 빌려서 가르쳤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권위로 가르치셨습니다. 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하여라.”고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들이 초심자들 또는 비신자들에게 가톨릭 교리에 대해서 가르칠 때의 모습을 생각해 봅시다. 자신이 본 것을 가르치는 것과, 보지 않고 전해들을 것을 가르치는 것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가르치는 것과 자신이 모르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통해서 가르치는 것과,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서 가르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알고 있는 것, 살아가고 있는 것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공동체에 별명이 메기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비자였습니다. 그가 메기가 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예비자 교리를 받으면서 이런 저런 것들이 궁금해서 신앙인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신앙인들이 그를 슬금슬금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비자가 물어보는 것에 대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고기들이 메기를 피하는 것처럼,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처럼, 그 공동체에서 그 예비자(메기) 때문에 덩달아서 교리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알아야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지 나 자신이 깊이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정확하게, 시원하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런 말하기를 회피하거나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도 신앙에 있어서는 족집게 강사처럼 그렇게 시원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경 말씀을 자주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당연히 교리를 공부해야 하고, 영적으로 참되게 기도해야 합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나해 1-10주일, 연중시기(나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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