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영광스러운 곳에 머물기를 청하는 베드로 사도

영광스러운 곳에 머물기를 청하는 베드로 사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예언자들을 대표합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남으로써 율법과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 있음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 앞에 있다는 것은 율법과 예언서가 예수님을 통해서 완성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고, 옛 예언을 실현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루어야 할 예언은 메시아가 십자가 위에서 세상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나눈 대화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수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시는 이유는 예언된 모든 것들은 이루어져야 하며,“수난과 죽음앞에서도 굳은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수난과 죽음을 당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놀라운 광경에 너무 매료되어 함께 머물기를 청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동료들과 함께 이 기쁨 속에서 머물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마르9,5)

베드로 사도는 큰 기쁨 속에 있었기에 자신들의 처지는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함께 머물기를 청했던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3년간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고생했던 모든 보상을 한 순간에 받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한 자신들이 기다리던 영광의 순간이 시작되어 자신들에게도 영광이 주어지리라고 기대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머물 때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과 함께 편안함 속에 머물고자 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걸으시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었고, 고통의 길이었습니다. 그 고통은 세상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한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이 기쁨으로 힘을 얻어 다시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기쁨을 가지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뜻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청원을 바라보면서 내가 주님께 드리는 청원을 생각해 봅시다. 내가 원하는 것과 내 만족을 위해 주님께 청하기보다는 주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청해야 합니다.

가끔은 신앙인들도 맛을 찾아서 헤매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디 가니까 좋더라 하면 우르르 몰려가고, 저기 가니까 기도가 효험이 있더라 하면 그쪽으로 몰립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기도가 주는 맛에만 중점을 두면 안 됩니다. 그 맛을 통해서 그분께서 나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신 이유는 그 기쁨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난과 죽음 앞에서 힘을 내라고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기도할 때 어떤 맛이 아니라 그분의 뜻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도록 손과 발이 즉시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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