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무덤으로 달려가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

무덤으로 달려가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

마리아 막달레나의 빈 무덤에 대한 소식은 베드로와 요한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죽음에 앞서 세 번이나 제자들에게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예고하셨습니다.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당신 구원 사업을 완수하시는 것이 예수님께서 지니신 메시아의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루카9,22)며 당신이 지니신 메시아의 사명을 예고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앞에서 뿔뿔이 흩어진 것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부활보다는 수난과 죽음이라는 말이 더 와 닿았을 것이고,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는 부활은 생각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무덤을 지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깜짝 놀라서 즉시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그들도 무척 궁금했을 것입니다. 무덤으로 달려가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다고 하셨는데 정말로 부활하셨을까? 그런데 우리 눈 앞에서 그렇게 처절하게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부활하실 수가 있단 말인가? 베드로와 요한은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무덤으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두 사도가 곧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베드로보다 젊었던 요한이 먼저 무덤에 이르렀습니다. 요한 사도는 막달라 마리아의 증언이 사실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예수님을 쌌던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요한20,5) 아마도 베드로 사도를 향한 겸손의 표현(장유유서) 때문인 듯 합니다. 요한은 베드로 사도의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수위권을 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습니다. 수의가 그곳에 놓여 있다는 것은 막달라 마리아의 가정(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 갔다는)과 모순됩니다. 만일 예수님의 시신이 도적을 맞았다면 수의와 수건도 다 가져 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빈 무덤을 보고서야 그들은 예수님의 수난예고를 회상하고 부활을 믿었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를 으뜸으로 세우시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믿지 못했었습니다. 이제 그 증거를 보고 베드로 사도는 부활을 믿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서 아마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한20,9)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야 비로소 아하! 그랬었구나!”라고 무릎을 치게 될 것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누가 말해 준다 해도 못 알아들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일이 이렇게 하면 생기니 조심해야 한다고 말해도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수가 종종 있습니다.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하는 생각이 결국 그런 실수를 하게 만듭니다.

 

또한 성경 말씀을 깨달아야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받아들일 수가 있겠지요. 부지런히 성경말씀을 공부하고,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실천하고, 그 말씀으로 기도하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옮겨질 차례입니다. 그런데 믿음이라는 것이 한 순간에 생겨나지는 않습니다. 서서히 생겨나고, 그리고 그 믿음으로 변화되어 예수님처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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