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탈리다 쿰

탈리다 쿰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예수님만 믿고, 예수님과 함께 집으로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을 때는 아이가 죽어 있는 상태였기에 무척 소란스러웠습니다. 울며 탄식하는 이, 장례식을 준비하는 이, 손님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마르5,39)

예수님은 죽음을 잠이라고 표현을 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이가 잠들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모르니 감히 예수님께 모욕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셨습니다. 불신을 가진 이들이 믿음을 가진 공동체와 어울리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들과 함께 있는 한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예수님께 온전한 믿음을 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불신자들과 함께 있으면 온전한 믿음을 고백하기 힘듭니다. 그들의 유혹에 넘어가 나 또한 불신자의 길을 걷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눈앞에는 죽어 있는 아이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살아 있는 아이에게 말씀하시듯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탈리타 쿰.”(마르5,41)

이 말씀은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마르5,41)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죽었던 소녀는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니기 시작합니다. 이 모습은 한 처음 세상을 창조하실 때의 하느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생겨라!”하시니 생겼습니다. 말씀 한마디로 세상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예수님 안에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죽었던 딸아이가 다시 살아나 걸어 다니니 부모는 얼마나 놀랐을까요? 그 모습을 본 제자들은 또 얼마나 놀랐을까요? 그 소녀가 다시 살아나서 돌아다닐 때 동네 사람들은 얼마나 놀랐을까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시는 분.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으신 분.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생명을 주시는 분도 하느님이시고 생명을 거두시는 분도 하느님이시니 그분 앞에 어려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려운 것은 우리가 어려운 것이지 하느님께서 어려우신 것은 아닙니다. 나의 어려움을 하느님께 맞추려고 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었던 소녀가 살아난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거듭 분부하십니다. 그리고 소녀에게 먹을 주라고 이르십니다. 그저 잠들었다가 깨어났다고 말하기를 바라십니다. 그 이유는 군중들이 기적 등에 마음을 뺏겨 당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마음으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기를 원하십니다. 죽은 아이를 살려 내신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들은 끊임없이 그분의 능력을 또 시험해보고, 요구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나해 11-20주일, 연중시기(나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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