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예언자
예수님께서는 고향 나자렛에 기쁜 소식을 전하셨지만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인성을 문제삼으며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마르6,4)
고향 사람들은 예언자의 어린 시절을 지켜보았고, 친척과 집안사람들도 지켜보았으나, 그들 눈에 보여 지는 것과 그들이 보고자 하는 것만 바라보기에 하느님께서 예언자에게 부여하신 참된 모습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나자렛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참된 모습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버리면 되는데, 그 생각을 버리지 못하니 결국 못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촌 형제들도 예수님의 진면목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것을 보고 “공적으로 드러내서 활동하시기를 권고”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모님과 요셉 성인 외에는 그 누구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그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었고, 그렇게 판단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셨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고향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으셨고, 모든 이가 구원받게 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습니다.(마르6,5) 그들이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주님께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구세주이심을 드러낼 아무런 표징도 일으키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들이 마음을 바꾸어 믿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기적은 내가 원하는 만큼 일어납니다. 믿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믿는 대로” 해 주십니다. 억지로는 주시지 않습니다. 나자렛에서 기적을 일으키실 수 없었던 이유는 기적을 청하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적을 청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몇몇 병자 외에는 아무도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아픈 상황입니다. 나자렛 사람들이 자신들의 교만을 조금이라도 버렸다면 예수님을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교만했습니다. 예수님을 동네의 한 청년으로 보았고, 예수님보다 자신들이 못하지 않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상황을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혹시 나도 그렇게 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나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마음이 전혀 없고, 다른 사람들도 못 들어가게 방해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