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받아들이지 못하는 제자들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생명의 빵”에 관하여 하신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투덜거렸습니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요한6,60)
이 투덜거림을 통해서 제자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다음의 세 가지 틀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으니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첫째, 그들은 예수님을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되신 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둘째,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오해까지 하고 있습니다.
셋째, 그들은 예수님을 모세보다 못하신 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예수님을 대하며, 자신들의 수준으로 예수님을 대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오늘의 나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나는 성체 성사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얼마나 확신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요, 하느님이심을 확고하게 믿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확신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확신하는 척, 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믿는 척 하고 있는 모습이 내 모습일 수 있습니다.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해서 그 말씀을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다 해서 하느님을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 당당하게 말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말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음도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아버지가 자녀가 신앙에서 발걸음을 돌리는 것을 보고 “그래!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겠지!”라고 생각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녀가 신앙을 완전히 거부하자 아버지는 탄식했습니다. “아! 너무 늦었구나. 좀 더 일찍 신앙을 권면해서 바른 길로 잡아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믿고 있는 신앙을 자녀들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예수님께 마음을 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내 머리로 이해하려고 할 때, 나는 어느 순간 예수님보다 윗자리를 차지하고 예수님을 내려다보려고 할 것입니다. 성체성사의 신비에 대해서 이해하려고 하면 믿을 수가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보고 맛보고 만져 봐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알 수 없지만 믿음만으로도 든든한 것입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마음을 열면 믿을 수 있습니다. 믿으면 보이게 되고, 믿으면 이해하게 됩니다. 세 가지 틀을 내려놓고 예수님께로 나아갑시다.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