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떠난 제자들을 가르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요한6,61) 하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떠나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마음이 떠나니까 보고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도 믿지 못하고 투덜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볼 수 있는 눈이 없기에 그들은 예수님의 참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들어도 들을 수 없는 귀를 가졌기에,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귀에 거슬렸던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요한6,61)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숨은 생각까지도 보시는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생명의 양식이심을 고백하기를 거부하고,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되셨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요한6,62)
믿지 못하는 이들이 부활과 승천을 체험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할까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이들이 살아계신 예수님을 체험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못 믿겠소.”라고 말할까요? 그래서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반문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어야 합니다. 믿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요구하시면서 육적인 생각이 아니라 영적인 생각을 요구하십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요한6,62)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분을 받아들이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이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는 사람들이고, 이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기도하는 이들입니다. 영적으로 참되게 기도하기에 눈앞에 펼쳐진 하느님의 구원을 볼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고 믿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지혜와 자신의 지식만을 가지고 판단하고 이해하려 한다면 결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없기에 생명으로부터는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로 내어주실 당신의 몸과 피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는데, 듣는 청중들은 그것을 육적인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는 것으로만 생각을 합니다. 사람을 잡아먹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의 양식으로 주시는 성체(살과 피)는 나의 살과 피와 전혀 다릅니다. 성분은 같지만 서로 다른 흑연과 다이아몬드처럼 그렇게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열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믿으면 됩니다. 믿으면 이해할 수 있고,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요한6,64)
영적인 삶과 육적인 삶은 다릅니다. 삶이 다르기에 표현되는 것도 다릅니다. 행동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삶의 발자국들은 믿음의 발자국과도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내딛고 있는 곳에 자신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 행동은 믿음을 드러내고 있을까요? 아니면 불신을 드러내고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적인 것에 의해 판단하거나 생각하지 말고, 하느님 나라를 생각하며 영적인 것에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불신의 마음이 믿음의 마음으로 바뀌고,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마음들이 주님을 향해 하나로 합쳐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요한6,65)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무리 아버지가 엄하시다 하더라도 자녀가 무엇인가를 한다고 할 때 끝까지 말리시지는 않습니다. 나중에는 잘 해보라고 격려를 해주십니다. 부르심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어떤 자격이 있어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한다고 할 때(사제나 수도자, 평신도, 기타 성소) 그분께서는 말리지 않으십니다. “그래? 그럼 한번 열심히 해봐!”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마음이 있다면 그분께서는 이끌어 주십니다. 아버지의 허락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믿음의 생활을 하고 싶어 할 때 하느님께서는 힘을 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내가 온전히 나를 맡기고 믿음의 은혜를 찾으려 한다면 아버지께서는 나를 이끌어 주십니다. 아버지의 허락은 나의 마음을 전제로 합니다. 억지로 끌고 가시지는 않으시는 분, 그분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 하느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끝까지 존중해 주시는 분, 그분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마음만 있다면 예수님께로 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만 있다면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없기 때문에 하느님의 이끄심에 온전히 맡기지 못하는 것이며, 마음이 없기 때문에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영적으로 참되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던 그 자체가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셨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떠나면서 예수님을 탓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자신의 무딘 마음과 어리석은 머리를 탓해야 합니다. 신앙인들이 성당을 떠날 때는 하느님 때문에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때문에 떠납니다. 알아주지 않아서 떠나고, 상처받았다고 떠나고, 다른 일이 바쁘다고 떠나고…, 결국 하느님 때문에 성당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때문에 성당을 떠나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