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베엘제불
1. 말씀읽기: 마르코3,22-30
예수님과 베엘제불 (마태 12,22-32 ; 루카 11,14-23 ; 루카 12,10)
2. 말씀연구
치유를 해 줘도 뭐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사하다고 예의를 표하기는커녕 오히려 모함을 합니다. 예전에 성당 앞에 술 취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성당 앞에서 넘어져서 그대로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를 않아서 성당 앞에 사시는 형제님을 불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경찰이 와서 그 사람을 데려갔는데 그 사람이 일어나면서 하는 말이 “당신 내가 한 번 봐 준거야!”라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배은망덕하고 웃긴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더 큰 모욕감과 황당한 경험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갚아 드려서는 안 되는 것인데…,
22 한편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그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그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들린 사람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서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예수님을 모함하였습니다. 베엘제불은 에크론의 신 바알즈붑이었습니다(2열왕기 1,2-16). 에크론의 우상 이름이 어떻게 마귀의 두목과 같은 뜻을 가진 말이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비방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마르코 복음에서는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이었고, 마태오 복음에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느 편이든 그들은 그 학식 때문에 민중의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비방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중상모략은 백성들이 예수님께로 향하지 않고, 자신들을 향하도록 만들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23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셔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셔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그들의 본심을 꿰뚫어 보고 계신 것입니다.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의 치유의 힘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사탄에게서 왔다고 몰아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못한다고 모든 것을 나쁘게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허탈하실까요?
24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
사탄은 인간의 영혼과 육신을 망쳐 버립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사탄이 들렸다면 결국 사탄을 방해하는 것인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다. 그래서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해 주시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25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
집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런 집안을 콩가루 집안이라고 합니다. 그런 집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26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서면 버티어 내지 못하고 끝장이 난다.
예수님께서는 예를 들어가며 설명을 해 주십니다. 만일 자기가 사탄의 힘으로 사탄을 쫓아낸다면 사탄은 제 자신에게 칼을 휘두르고 있는 셈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복종한다는 것은 마귀의 뜻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통하여 많은 구마활동을 하셨는데 그 때마다 마귀들은 수치스럽게 물러갔습니다. 만일 마귀가 예수님의 힘을 돕고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그들 나라를 망치는 것이므로, 자기 자신의 나라의 멸망을 바라고 있는 셈이라는 것 입니다.
27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구마행위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힘센 자는 바로 예수님을 가리키십니다. 그리고 덜 힘센 이는 사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힘센 분이(예수님) 힘센 자를(사탄) 묶어놓지 않는다면 결코 마귀를 쫓아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당시 유다인들도 구마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 구마활동이 하느님의 능력으로 한 것이라면, 왜 예수님의 경우에만 마귀의 능력을 빌어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만일 그들이 성실하다면, 예수님의 능력도 하느님에게서 왔다고 해야 할 것이고, 그것을 부정한다면 그들의 구마활동도 마귀의 힘을 빌어 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닫힌 마음에 경고를 하십니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짓는 죄들에 대해서 용서를 청한다면 하느님께서는 모두 용서해 주십니다. 그런데 어떤 죄가 용서받지 못할까요? 그것은 바로 성령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29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즉 하느님의 일을 마귀의 일로 본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비하하거나 왜곡한다면 그 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용서해 주시는 분을 받아들이지 않는데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 죄는 결코 용서받지 못하게 됩니다.
30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그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율법학자들이 자신들의 죄를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의 열매를 보시고 마음을 돌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의 시기와 질투와 교만은 결국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시기 질투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처럼, 시기와 질투는 나를 멸망으로 몰아갑니다. 옆에 있는 형제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으면 나 또한 그렇게 멸망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1. 함께 봉사하는 사람의 멋진 행동을 보았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칭찬을 합니까? 아니면 질투를 합니까?
2.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와 자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경우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