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연중 제23주일(9/7)


    말씀의 초대
    예언자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다. 충실하게 전해야 올바른 예언자가 된다. 주님의 말씀은 경고와 격려가 반복된다. 어떤 말씀을 하시든 최선을 다해 전해야 한다. 그것이 예언자의 소명이다(제1독서). 율법의 완성은 사랑에 있다. 아무리 철저하게 율법을 지켜도 사랑이 빠지면 완벽하지 못하다.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한마디로 요약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형제의 잘못을 타일러 주라고 하신다. 당연히 그래야 할 일이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다. 잘 아는 사람일수록 훈계는 더 어렵다. 그러기에 반복하라고 하신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을 동원하라고도 하신다. 그들과 함께 기도하라고 하신다. 예수님께서도 함께하시겠다는 말씀이다(복음).
    복음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형제가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타일러 주라고 하십니다. 한두 번은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그렇게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용서는 마음먹는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순간의 결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시간을 두고 쌓는 덕(德)입니다. 그렇습니다. ‘용서는 덕’입니다. 덕에 도달하려면 누구나 수행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착각입니다. 용서를 감정 차원으로 해석한 착각입니다. 순간에 생긴 미움은 순간의 용서로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 온 미움은 순간의 용서로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미움이 쌓인 시간만큼 수련과 극기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무엇일는지요? ‘작은 용서’입니다. 혼자만이 알고 있는 작은 용서를 수없이 실천하는 것입니다. 작은 용서가 몸에 배어야 큰 용서가 가능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가 잘못하면 만나서 타일러 주라고 하셨습니다. 일차적으로 형제는 가족입니다. 그들을 먼저 받아 주라는 말씀입니다. 가까운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면 멀리 있는 사람도 이해할 수 없는 법입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주님 주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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