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연중 제1주간 금요일(1/16)



    말씀의 초대
    어떤 사람들이 중풍 병자를 데려왔다. 그런데 청중이 너무 많아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들은 지붕 위로 올라가 구멍을 내고는 그곳으로 병자를 달아 내려 보냈다. 이스라엘의 가옥 구조는 지붕을 벗길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갚아 주신다(복음).
    복음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 보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환자의 가족들은 극성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앞을 막아 예수님께 갈 수 없게 되자 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러고는 지붕 한쪽을 벗겨 그 구멍으로 환자를 내려 보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옥 구조는 우리와 다릅니다. 그곳은 ‘비 오는 계절’과 ‘비 없는 계절’로 확연히 구별됩니다. 따라서 비가 없는 철에는 나뭇가지나 거적 같은 것으로 대충 덮어 두었습니다. 그랬기에 환자를 내려 보낼 수 있었던 겁니다. 아무튼 그들의 극성은 기적으로 보답받습니다. 그런데 몇몇은 법을 따집니다. 그날이 안식일이었기에 치료 행위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죄가 되는가, 안 되는가?’ ‘법을 어긴 것인가, 아닌 것인가?’ 그들은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딜 가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까지도 용서하십니다. 환자의 가족들은 믿음과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고려했다면 그렇게 행동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능과 선하심을 믿었기에 지붕을 뚫고 내려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법을 생각하고 주변을 의식합니다. 결과는 따지는 행위였습니다. 주님의 일을 ‘따지고 계산하면’ 은총은 결코 함께하지 않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일어나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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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1주간 금요일(1/16)



      말씀의 초대
      어떤 사람들이 중풍 병자를 데려왔다. 그런데 청중이 너무 많아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들은 지붕 위로 올라가 구멍을 내고는 그곳으로 병자를 달아 내려 보냈다. 이스라엘의 가옥 구조는 지붕을 벗길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갚아 주신다(복음).
      복음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 보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환자의 가족들은 극성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앞을 막아 예수님께 갈 수 없게 되자 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러고는 지붕 한쪽을 벗겨 그 구멍으로 환자를 내려 보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옥 구조는 우리와 다릅니다. 그곳은 ‘비 오는 계절’과 ‘비 없는 계절’로 확연히 구별됩니다. 따라서 비가 없는 철에는 나뭇가지나 거적 같은 것으로 대충 덮어 두었습니다. 그랬기에 환자를 내려 보낼 수 있었던 겁니다. 아무튼 그들의 극성은 기적으로 보답받습니다. 그런데 몇몇은 법을 따집니다. 그날이 안식일이었기에 치료 행위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죄가 되는가, 안 되는가?’ ‘법을 어긴 것인가, 아닌 것인가?’ 그들은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딜 가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까지도 용서하십니다. 환자의 가족들은 믿음과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고려했다면 그렇게 행동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능과 선하심을 믿었기에 지붕을 뚫고 내려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법을 생각하고 주변을 의식합니다. 결과는 따지는 행위였습니다. 주님의 일을 ‘따지고 계산하면’ 은총은 결코 함께하지 않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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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연중 제1주간 금요일(1/16)



      말씀의 초대
      하느님의 안식처는 세상 창조 때부터 마련되어 있었다. 모든 이가 그곳으로 오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탈락되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신앙인은 주님의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늘 애써야 한다(제1독서).
      제1독서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4,1-5.11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계속 유효한데도, 여러분 가운데 누가 이미 탈락하였다고 여겨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주의를 기울입시다. 사실 그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로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그 말씀은 그들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귀여겨들은 이들과 믿음으로 결합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진 우리는 안식처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안식처는 물론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은 세상 창조 때부터 이미 다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사실 일곱째 날에 관하여 어디에선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또 여기에서는,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였습니다. 그러니 그와 같은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게,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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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말씀에 가슴이 뜨끔 합니다
    저에게 하신말씀 같아서...
    당신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언제나 제 멋대로 신앙생활을 했던
    저에게 반성을 하라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언제나 당신을 믿는다고 당신을 사랑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을 했지요
    하지만 ...
    저의 행동은 설렁탕 한그릇 값 정도밖에 당신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어느 때는 설렁탕 한 그릇 값 만큼도 당신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주님!
    그 어느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그 어느 때는 헌금을 낼 때와 교무금을 책정할 때 그리고
     불우이웃 등 도음의 손길이 필요할 때 ...
    평소에는 즉흥적으로  제 마음대로 잘 하면서 
    언제나 물질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매사에 사려 깊은 사람처럼
    생각하고 또 하면서 신중을 기하였지요
    사실은 수지계산을 하느라 어느 것이 저에게 더 이익이 되는지
    잔머리 굴리고  또 굴리면서 손익계산서를 작성했습니다 머릿속으로...
    저의 모습이 율법학자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참 치사한 시람이지요 주님!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말씀을 깊이 깨달아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겠습니다
    아니!
    아직은 자신이 없지만 노력하겠습니다
    세속의 이익만을 생각하여 잔머리 굴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당신의 자녀답게 ...
    잔머리 굴리지 않으며...

    “주님의 기적들을 낱낱이 이야기하오리다.
    지극히 높으신 분, 저는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주님 이름에 찬미 노래 바치나이다.”

    아멘


    ♬ 일어나 걸어라

  4. guest 님의 말:

     

    요몇일 날씨가 참 많이 쌀쌀하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둠을 환희 밝히면서

    제 모습에 충실하는 달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밤이랍니다.

    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라는 다짐을 하면서

    때론 그 다짐이 흐려지진 않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아버지께서는 중풍병자를 고쳐주시지요.

    그를 아버지 앞으로 데려오는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참 많은 생각이 저를 감싸 안았습니다.

    제 믿음이 지금 누군가를 위해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요.

    예전에 제가 어렸을때 친정 엄마가 많이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일을 너무 무리하게 하셔서인지 두 손목이 퉁퉁 부었지요.

    그래도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보니

    손목에 부목을 대고 옷을 잘라서 묶었습니다.

    그 힘으로 일을 하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셨습니다.

    저녁이면 쓰러져 앓는 엄마를 보는게 전 정말 싫었습니다.

    한 겨울에도 새벽이면 일어나 물을 데워서 두 어르신 방으로 가져다 드렸죠.

    헹굼물까지도 방에서 받으셨거든요.

    저희가 하면 고래고래 소리를 치셨기 때문에 하지 못했습니다.

    며느리가 할 일이라고~~

    그러면서 손목이 더 심해져 갔고 고통은 더해갔지만 병원도 갈 수가 없었지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부목을 댄 손으로 아침이면 세수를 씻겨 주셨답니다.

    그래서 싫다고 하면 “내가 하고 싶은데~~” 하면서 꼭 세수를 씻겨 주셨지요.

    살아가는 기쁨이 그 상황에서도 엄마에겐 있었나 봅니다.

    아버지께서 온 산을 다 뒤지면서 좋다하는 약초는 다 캐어서

    절구에 넣고 빻아 즙을 내고 건지를 올려 맛사지 하고,붙이면서

    지극정성으로 나름대로 하셨습니다.

    “그게 될까?” 하면 “내가 할 수 있는게 이것뿐인데~~ 최선을 다해야지.”

    라고만 하셨던 아버지의 말이 떠오릅니다.

    제가 알기로도 병원은 못가시고 2년을 그렇게 집에서만 했답니다.

    주위에선 걱정을 했지요, 더 큰 병 만든다고…..

    심지어는 잘라야 하는거 아닌가 하고….

    그러면서도 상황을 아시는 동네분들은 뭐가 좋단다고 얘기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근데 기가 막히게 2년이 지나면서 손목이 낳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런지는 모른답니다.

    무지하게 많은 것을 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2년간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고 무지 기뻐하셨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지금은 가끔 그러십니다.

    “내가 니네 엄마 고쳤다.한겨울에 산속을 헤메다 보면 무섭기도 하고 얼마나 어려웠는데…” 하시면서 큰 소리를 치시기도 하지요.

    사랑하는 아내이기에 온 마음을 다 싫어 몸으로 움직인 것에 대한

    결실이라 합니다.

    오늘 지붕을 뚫고 환자를 내려보내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고쳐주시듯이,

    아마도 친정 아버지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나 봅니다.

    근데 맞지요? ㅎㅎ

    사랑의 움직임이니까요.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신 아버지께서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를 내려보내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라고~~

    가슴 메어지는 눈물이 앞을 가릴 것 같습니다.

    허긴 그 모습을 보면서 의아해 하는 율법학자도 있지요.

    그들은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기에 하느님을 모독한다 합니다.

    바로 눈앞에 계심에도 알아보지를 못하고

    다른 구실을 붙이면서 그들의 시기와 질투가 인정하지 못함을 더 돋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런 율법학자들의 모습이 제 모습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니다.

    “나무를 50년 키우는게 어려운가요? 잘라서 만드는게 더 어려운가요?”

    강론중에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랍니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는데 이젠 안답니다.

    더 어려운 일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하시는 아버지!

    보여줌이 아닌 사랑의 치료~~

    아버지시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그런데도 부족한 저는 못할 것이 없으신 아버지임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요.

    아버지의 넘치는 사랑!

    그 사랑을 머금고 살아가는 저가 아파하는 이들을 아버지께로 인도하게 하소서.

    제 믿음을 보시고 그들에게 기쁨이 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기도해야 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한 중풍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많은 사람이 몰려있자 지붕을 뚫고 들것에 그를 싫어 내려 보냅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얘야,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라고 하십니다.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신 아버지!

    저의 하찮은 마음이지만 오로지 아버지께로 향할 때

    그 사랑이 다른이의 기쁨이 될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부족한 저이지만 아파하는 사람을 아버지께로 데려갈 수 있는

    열정을 제게 주소서.

    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사랑속에

    많은 사람들을 데려올 수 있게 하시어

    그들이 아버지 사랑의 권능을 알게 하소서.

    다른이를 위한 간절함이 제 기도가 되게 하시어

    믿음으로 움직이게 하소서.

    아멘.

  5. guest 님의 말:

    오늘 복음말씀에서 중풍병자가 용서 받은 것은
    주위 사람들에 끈질긴 믿음의 극성이 아니었나 묵상해 봤다.
    그럼 나는 이웃에게 어떤 역할을 하고 살아가는가…

    이웃과 더불어 살다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힘든게 있다.
    냉담자의 회두나 종교에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전교하는 것이다.

    그들을 대할땐 정말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가끔은 알아들을 것 같은 사람에게 심한 상처도 받고…
    암튼 어느땐 속도 상하고 가슴도 아프고 답답할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데…
    하루빨리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 커서 그런지도 모른다.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고 글을 읽고 쓰고 스스로 독립하기 위해서는 거의 22년정도가 든다고 하는데
    나는 그들에게 하느님에 대해 속독법으로 받아들이기를 요구하고 있다.

    상대방한테 조금의 희망이라도 보이면
    “아! 이제는 빛이 보이는구나” 기뻐하면서 어떻게 성당에 한번 나올 의향이 없느냐고…
    그러나 “아직은…”이렇게 말을 하면 맥빠지고 실망을 한다.
    그래서 화가 나 포기한 적도 있다.
    “그래 네 영혼 내 알바 아니다.” 이러면서 말이다.

    이렇게 내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으면 금새 포기하고 만다.
    더불어 사는 법에 익숙치 못해서고 믿음 또한 약해서라는 생각을 해봤다.

    공수부대에서는 “안되면 되게 하라”는 표어가 있다고 한다.
    될때까지 최선을 다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더불어사는 세상에서 이렇게 꾸준한 모습으로 살아갈때
    비로써 이웃을 사랑하는 행위일진데…
    오늘 중풍병자의 이웃들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그들처럼 주위의 눈치와 질시, 방애,거부에 굴하지 않고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걱정해 주는 마음으로 이웃에게 다가가야 겠음을 다짐해 보면서…

    주님!
    당신깨서 함께 해주시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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