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주님 봉헌 축일(2/2)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산모는 아이를 낳은 지 40일이 지난 뒤 성전에 나아가 정결례를 치러야 했다(레위 12,4-8 참조). 마리아께서도 이 율법을 지키셨다. ‘주님 봉헌 축일’은 성탄 뒤 40일째 되는 날 성모님께서 정결례를 치르시고 아기 예수님을 봉헌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날 교회는 1년 동안 전례에 사용할 초를 축복한다. 이는 중세 때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다.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미사 전례 전에 ‘초 축복’과 ‘봉헌 행렬’을 한다. 한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주님 봉헌 축일’을 ‘봉헌 생활의 날’로 정하고, 해마다 전 세계 교회가 이를 기념하도록 하였다. 모든 신자, 특히 젊은이들이 하느님의 크나큰 은총인 봉헌 생활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 성소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 기도하고자 한 것이다.
    말씀의 초대
    레위기의 명령에 따라 마리아께서는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시고 정결례를 치르신다. 예물은 비둘기 한 쌍이었다. 예언자 시메온과 한나는 아기 예수님을 뵙고 기뻐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앞날을 예언한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을 일어나게 할 것입니다”(복음).
    복음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2-3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마산교구의 차기병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은 나이 서른에 하늘 나라로 갔습니다. 사제가 된 지 일 년 만이었습니다. 1988년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에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입니다. 어느새 2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성직자 묘지에 가면 그의 무덤에는 늘 꽃이 놓여 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도 꽃을 놓고 가는 분이 있습니다. ‘잊혀지지 않는 슬픔’을 안고 사는 분일 겁니다. 주님께서 부르시면 누구든 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건 이론이고, 가족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서른 살의 죽음은 사제가 아니더라도 가슴이 무너지는 일입니다. 그의 무덤 앞에 서면 ‘우리 대신 죽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날은 ‘주님 봉헌 축일’이었습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될 것입니다.” 성전에서 만난 시메온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니의 가슴에 칼을 꽂는 예언입니다. 그렇지만 마리아께서는 조용히 받아들이십니다. 이미 모든 것을 주님께 봉헌하셨기 때문입니다. 봉헌은 바치는 행위입니다. ‘바친다는 것’은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여기는 것’을 뜻합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것’은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프고 쓰라린 것’을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여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늘만큼은 내가 바칠 ‘나의 봉헌’을 돌아봐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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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주님 봉헌 축일(2/2)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산모는 아이를 낳은 지 40일이 지난 뒤 성전에 나아가 정결례를 치러야 했다(레위 12,4-8 참조). 마리아께서도 이 율법을 지키셨다. ‘주님 봉헌 축일’은 성탄 뒤 40일째 되는 날 성모님께서 정결례를 치르시고 아기 예수님을 봉헌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날 교회는 1년 동안 전례에 사용할 초를 축복한다. 이는 중세 때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다.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미사 전례 전에 ‘초 축복’과 ‘봉헌 행렬’을 한다. 한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주님 봉헌 축일’을 ‘봉헌 생활의 날’로 정하고, 해마다 전 세계 교회가 이를 기념하도록 하였다. 모든 신자, 특히 젊은이들이 하느님의 크나큰 은총인 봉헌 생활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 성소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 기도하고자 한 것이다.
      말씀의 초대
      레위기의 명령에 따라 마리아께서는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시고 정결례를 치르신다. 예물은 비둘기 한 쌍이었다. 예언자 시메온과 한나는 아기 예수님을 뵙고 기뻐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앞날을 예언한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을 일어나게 할 것입니다”(복음).
      복음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2-3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마산교구의 차기병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은 나이 서른에 하늘 나라로 갔습니다. 사제가 된 지 일 년 만이었습니다. 1988년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에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입니다. 어느새 2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성직자 묘지에 가면 그의 무덤에는 늘 꽃이 놓여 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도 꽃을 놓고 가는 분이 있습니다. ‘잊혀지지 않는 슬픔’을 안고 사는 분일 겁니다. 주님께서 부르시면 누구든 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건 이론이고, 가족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서른 살의 죽음은 사제가 아니더라도 가슴이 무너지는 일입니다. 그의 무덤 앞에 서면 ‘우리 대신 죽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날은 ‘주님 봉헌 축일’이었습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될 것입니다.” 성전에서 만난 시메온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니의 가슴에 칼을 꽂는 예언입니다. 그렇지만 마리아께서는 조용히 받아들이십니다. 이미 모든 것을 주님께 봉헌하셨기 때문입니다. 봉헌은 바치는 행위입니다. ‘바친다는 것’은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여기는 것’을 뜻합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것’은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프고 쓰라린 것’을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여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늘만큼은 내가 바칠 ‘나의 봉헌’을 돌아봐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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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주님 봉헌 축일(2/2)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필요한 때에 당신의 사자를 보내 주신다. 그가 오면 주님의 앞길은 언제나 깨끗하다.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다.’ 하느님께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는 이는 모두가 주님의 사자다(제1독서).
      제1독서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4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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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오소서, 성령이여~!

    오늘 복음에서는 율법에 따라 예수님을 주님께 봉헌하는
    예수님의 부모님을 보게 됩니다.
    마침 주님봉헌 축일을 맞이하여 여러가지 생각을 해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예언자들의 예언처럼 종국에는 자신의 생명까지
    봉헌하여 인류의 구원을 이루셨는데, 저라는 사람은 그저 자신의 안위에만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가 어렸을 적에는 장차 무엇이 되고 싶으냐? 하고 물으면
    곧잘 신부님이 되겠노라 하더니, 지금은 ‘엄마, 나 신부님만
    제외하고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하고 은근슬쩍 묻습니다.
    그 이유인 즉슨, 자기는 앞으로 이쁜 아내도 얻어야 하고, 자기를 꼭 닮은
    아들도 낳아야 한다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저로 하여금 더이상의
    바램을 하지 못하도록 말문을 막아버리기까지 한답니다.

    큰아이를 키워본 결과만 보더라도, 자식은 부모 마음대로 커주질
    않는다는 사실을 체험한 지금에 와서는 작은아이의 의견에
    웃음으로 그저 고개만 끄덕여줄 뿐이지요.
    두 아이들 모두 어렸을 적에 아픈치레를 너무 많이 하고 자랐기에
    순간순간 ‘ 이 아이를 건강하게 살려만 주신다면 당신의 도구로
    바치겠습니다.’ 라고 기도를 많이도 바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땐 웃습게도 제 마음대로 자식을 주님께 봉헌할 수 있다고 착각을 했었지요.

    이젠 자식을 봉헌하고자 하는 바램도 더이상 바랄 수 없게 되었으니
    제 자신이 할 수 있는 봉헌의 삶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자신을 봉헌하며 사는 삶은 어떤 삶일지, 그건 아마도 자신의 안위만을
    위한 삶이 아닌 나 보다 못한 사람들의 삶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고통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삶이 아닐까 합니다.

    한 자루의 초가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세상을 밝히듯이
    제 몸과 마음이 힘들어도 내 가족과 이웃이 행복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고 도울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 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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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guest 님의 말:

     

    과연 제 눈으로 당신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1. 말씀읽기:루카2,22-40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봉헌하다

    시메온과 한나의 예언

    예수님의 유년시절


    2. 말씀연구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산모는 출산한 지 40일 만에 성전에 나아가 몸을 정결하게 하는 정결례를 치러야 했습니다. 따라서 이 축일은 성탄 후 40일째 되는 날에 성모 마리아께서 정결례를 치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성전에 봉헌하신 것(루카 2,22-39 참조)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날 교회는 전통적으로 1년 동안 전례에 사용할 초를 축복하였기에 미사 전례 전에 초 축복과 봉헌 행렬이 이루어집니다. 한편 돌아가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오늘 ‘주님 봉헌 축일’을 ‘봉헌 생활의 날’로 제정하고 전 세계 교회가 이를 기념하도록 하였습니다. 교황은 모든 신자, 특히 젊은이들이 하느님의 크나큰 은총인 봉헌 생활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 성소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 기도하기를 당부하였습니다.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그들은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레위기(12,1-8)에 따르면 여자가 사내아기를 낳으면 7일간을 부정하다고 여겼습니다.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고서도 그 후 33일간 축성된 것을 만질 수 없었고, 성전에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40일째에 예루살렘으로 가서 정결예식을 받아야 했는데 여자 아이인 경우는 부정 기간이 80일이었습니다.


     출산으로 말미암아 남편이 부정하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정결례를 치를 필요가 없었는데도 그도 함께 예루살렘에 가서 그 예를 행했습니다. 맏아들을 속량할 때 부모나 아기가 성전에 가야 한다는 법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기의 부모는 열심한 신앙인이었기에 그러한 규정들을 의무로서가 아니라 사랑으로써 받아들였고, 지켰던 것 같습니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첫 아들은 주님에 의해 축성되고, 속세를 떠나서 사제로서 오로지 하느님을 섬겨야 했는데(탈출13,2;민수18,15-16), 시간이 지나면서 하느님께서는 사제직을 레위인들에게 한정시켰습니다. 하느님께서 첫아들에 대하여 가지고 계신 권리를 기억하도록 하려고 첫 아들은 성전에 봉헌하게 하셨고, 5세겔의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속량하도록 명하셨습니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레위기에 의하면(레위기12,6-8) 여인은 정결례의 제물로 일년 된 양 한 마리를 바치거나, 가난한 경우 집비둘기 두 마리나 산비둘기 두 마리를 바칠 의무가 있었습니다. 가난한 여자는 두 마리의 산비둘기나 또는 집비둘기를 바치면 되었는데, 마리아와 요셉은 무척 가난한 가정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성모님은 정결례를 치룰 필요도 없었고,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니 새삼 하느님께 봉헌될 필요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가정은 율법대로 모든 것을 실천했습니다. 커다란 겸손과 순명을 나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경건하게 산다는 것은 하느님을 공경하고 또한 율법을 성실하게 지키는 사람을 말합니다. 시메온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라는 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말합니다. 이 말은 히브리인들에게는 메시아에 의한 행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이사40,1,61,2). 또한 랍비들도 메시아를 위로해 주시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루카복음 21장 27-28절에서는 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을 기다리며 모든 시련을 달게 받고, 모욕을 감수하며 굽혔던 허리가 주님에 의해서 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위로자 이심을 분명하게 할 수 있습니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많은 히브리인들은 그 당시 “위로”(구원)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시메온은 이에 대하여 성령의 특별한 계시를 받고서, 죽기 전에 메시아를 만나 뵈올 수 있는 위로를 받으리라고 약속을 받고 있었습니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성령의 인도를 받은 시메온. 그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메시아를 뵈올 수 있는 축복과 메시아를 만지고 품에 안을 수 있는 축복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약속을 눈으로 손으로 확인했습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얼마나 감격했을까요? 금을 캐는 사람이 금맥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기쁠까요? 다이아몬드를 찾아서 헤맨 사람이 다이아몬드를 발견했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자신이 그렇게 원하던 것이 내 앞에 나타났을 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이제 시메온의 찬양을 들어봅시다. 성무일도 끝기도에 나오는 노래입니다. 수도자들이 하루를 마치면서 바치는 이 기도. 나의 매일 밤 기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시메온이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뵙게 되리라는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이제 시메온은 바랄 것이 없습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시메온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다 이루어 주셨으니 이제 평안히 죽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합니다. 그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이요, 축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것을 기쁨이요 축복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갈까요? 혹시 그 엄청난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축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처럼,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처럼 그렇게 간절하게 기다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메온은 다른 것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하느님께서 약속해 주셨던 것을 이제 두 눈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이제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시메온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메온은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을 낮추시어 인간이 되셨고, 구원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시메온은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두 눈으로 본 것입니다.

     나도 하느님의 구원을 볼 수 있습니다. 따뜻하게 봉사하는 형제자매의 손길 안에서, 엄숙함과 경건함이 우러나오는 형제자매들의 성실한 삶 안에서, 아무것도 모르시는 것 같은 할머니의 손에 쥐어진 묵주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볼 눈이 있어야 만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보기 위해서 시메온이 한 생을 기다려왔던 것처럼, 나 또한 그렇게 노력을 해야 합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오신 메시아는 시메온 만을 위한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시메온은 명백히 메시아의 구원이 민족, 계급의 구별 없이, 모든 백성을 위한 은혜라고 선언합니다. 시메온은 메시아의 구원이 히브리인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던 유다인들의 편협하고 그릇된 구세주관을 바로 잡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시메온의 찬양을 통해서 나만 생각하는 신앙,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신앙, 내가 아는 사람을 생각하고,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만을 위해주는 편협한 마음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메시아는 온 인류에게 주신 구원이시며 지금껏 이방인을 둘러싸고 있던 어둠을 비추어 주는 빛입니다. 또 메시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특별한 영광이 될 것입니다. 그 까닭은 구원이 유다인에게서 시작되어야 하였기 때문입니다(요한4,22). 약속된 대로 유다인에게 먼저 구원의 은총이 내려왔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이스라엘 태생이십니다. 이스라엘과 함께 이 세상 생활을 보내시고, 이스라엘에서 기적을 행하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놀랄 만도 합니다. 시메온을 이상하게 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알았을까?”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사실 마리아와 요셉은 천사로부터 예수님에 관하여 들어서 알고 있었고,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기를 낳았기에 하느님의 신비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자신들만 알고 있는 비밀을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는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마리아와 요셉은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과 가까웠고,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에 대해서 다 알 수는 없었습니다. 계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알려준 것만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예수님 안에서 행하신 모든 것, 곧 헤아릴 수 없이 풍요한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계시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이 신비의 풍요로움을 아무리 많이 깨닫는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더 많은 것이 언제나 남아 있게 마련입니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말이 예수님을 통해서 실현될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두 집안에게 성소가 되시지만 걸리는 돌과 부딪치는 바위도 되시고,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덫과 올가미도 되신다. 많은 사람이 걸려 넘어져 터지고 올가미에 걸려 잡히리라”(이사8,14). 그러나 이사야의 또 다른 말도 예수님께 적용됩니다. “내가 시온에 주춧돌을 놓는다. 값진 돌을 모퉁이에 놓아 기초를 튼튼히 잡으리니 이 돌을 의지하는 자는 마음 든든하리라”(이사28,16). 온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지지하거나 아니면 예수님을 반대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과 일치하는 사람은 들어 높여질 것이고 구원받을 것입니다. 심판 때에 구원받게 될 사람은 그가 이스라엘에 속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정하신 표징을 기꺼이 선택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하느님의 참다운 백성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에게 선택권을 제공하시므로 하나의 표징이십니다. 스테파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교도의 마음과 귀를 가진 이 완고한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당신네 조상들처럼 언제나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사도7,51).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 이것이 벌써 죄인으로 판결 받았다는 것을 말해준다”(요한3,19)

    선택은 내 마음을 드러내게 만듭니다.

    죽은 사람의 시신을 보던 검시관이 물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왜 웃고 있는 것이지요? ”

    “저기 한 사람은 로또 복권을 맞히다가 마지막 숫자까지 맞아서 너무 좋아서 죽어서 웃고 있는 것이구유, 저 사람은 벼락 떨어지는 것이 사진 찍는 줄 알았다나요…”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성모님의 마음 또한 많이 아프게 될 것입니다. 성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봅시다.


    시메온과 한나. 이들은 모두 해방을 기다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대표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들어 주셨습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한나는 은혜 받은 이, 아름다운 이란 뜻입니다. 한나 예언자는 15살에 시집가 7년간 결혼생활을 하다가 남편을 잃어 22살에 과부가 되었으나 재혼하지 않고 수절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여든 네 살이 되도록. 대단합니다. 그녀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날마다 기도하면서 보냈습니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한나는 성전에서 일어난 엄청난 은총의 순간을 목격한 증인입니다. 성령의 빛을 받은 한나는 마리아가 성전으로 데려온 그 아기에게서 메시아를 보았습니다. 그녀가 하느님께 드린 찬양은 이미 시메온이 말한 것에 대한 참된 “응송”(찬양하면서 응답하는 환호의 노래)이었습니다. 그녀는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이 아기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선포한 메시지는 그 메시지를 맞아들이는 사람들의 준비 여하에 따라 그 효력이 제한되었습니다. 계시된 말씀은 마치 손님처럼 반드시 환영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구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드심은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배려로 모든 원수들로부터 예루살렘이 해방되는 그 시작을 표시합니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나자렛은 마리아와 요셉의 마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유년기를 보내실 마을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머니를 따르셨고, 어머니 마리아는 남편 요셉을 따랐으며, 요셉은 성가정의 가장으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완전한 인격은 육체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을 모두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은 지혜와 하느님의 은총을 필요로 합니다.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자라셨을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튼튼하게 자라셨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시메온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함께 이야기 해 보고, 시메온의 노래를 외워 보고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 바쳐 봅시다.


    시메온의 노래

    낮 동안 우리를 활기 있게 하신 주여!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리니, 자는 동안도 지켜 주시어 편히 쉬게 하소서.

    주여! 말씀하신대로 이제는 주의 종을 평안히 떠나가게 하소서.

    만민 앞에 마련하신 주의 구원을 이미 내 눈으로 보았나이다.

    이교 백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시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되시는 구원을 보았나이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낮 동안 우리를 활기 있게 하신 주여!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리니, 자는 동안도 지켜 주시어 편히 쉬게 하소서.


    ② 성모님과 요셉 성인의 마음이 되어 오늘 이 말씀들을 생각해 봅시다. 어떻게 다가오고 있습니까?



    ③ 한 생을 하느님만을 바라고 살아온 시메온과 한나 예언자의 삶을 생각해 보면서 느낀 점을 나눠 봅시다.


    ④의롭고 독실한 삶은 어떤 삶입니까? 성령께서 이끄시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⑤ 내가 하고 있는 것들 중에, 지키고 있는 것들 중에, 만들어 가고 있는 것들 중에 하느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습니까?


  5. guest 님의 말: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

    주님봉헌축일인 오늘...

    오랫만에 정말 오랫만에 남편이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도 보고 미사를 하여 기뻤습니다
    사실 아프다는 핑계로(성당에 가면 신자들이 남편의 안부를 
    물어보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일년동안 주일을 궐하였습니다)
    그 일년동안이 저에게는 수 십년이 되는 것같았고  가슴이 
    짓눌리는 아품 속에서 지냈습니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과 불길한 생각등으로(혼자 남게 될까 두려워)
    그러면서도 저 역시 남편이 병마와 싸우는 동안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였습니다 주일도 겨우 지키는 정도로 쓸데없는 공상과 
    망상으로 세월을 허비하였습니다 
    당신께 기도하지 않으며 한숨만 쉬면서
    다행이랄까 그래도 “복음묵상”은 그나마 대충이라도 하여
    당신께 지은 죄를 조금은 보상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 저의 마음은 지옥 같았고
    가정생활 역시 짜증도 많이 나고 불안한 마음으로 일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요 주님!

    왜 그런지 초조한 마음은 가득한데 기도가 되지 않았습니다
    불길한 생각과 방정맞은 생각으로 마음이 지옥 같았는데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는 탓인지 요즈음 며칠동안도
    예전과 같지 않은 남편의 마음 씀씀이가 섭섭해 짜증을 내고
    상처 주는 말을 하여 다투었습니다
    하지만 아픈 사람한테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저의 못된 심성에
     신앙인의 자세가 아닌 저의 속 좁은 마음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러면서도 남편이 원망스럽고 미웠습니다 

     어제....

    힘들어 하는 누나가 안쓰러웠는지 남동생이 머리도 식힐 겸
    친정부모님 산소에 가자고 하여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며
    저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말씀드리고 나니 답답했던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았습니다
    저녁에는 남편과 정말 오랜만에 서로의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털어 놓으니  저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미안하다며 
    용서해달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의 사과를 받고나니 그동안의 섭섭했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겠다는 남편의 다짐을 듣고 저도
    남편한테  사랑을 주지 않았던 지난 날의 잘못을  반성했습니다

    사실 남편보다 저의 잘못이 더 많았던 저희 부부의 결혼생활
    남편한테 쌀쌀맞게 굴며 사랑을 주지 않았던 저의 못된 심성을
    반성하며 병마와 싸우는 남편한테 지혜로운 아내 사랑이 많은 아내
    남편의 아품을 함께 나누며 용기를 주는 아내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알량한 자존심만 내세우며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던
    저의 못된 심성을 반성하며 신앙인으로 부끄럽지 않는
    아내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당신께서도 원하시리라는 믿음으로

    사랑이신 주님!

    병마와 싸우는 남편이 당신의 사랑을 깨달아 불안한 마음을
    없애주시고 당신께서 도와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해주십시오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시며,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시로다.

    아멘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묵상하며

     

  6. guest 님의 말:

    (no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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