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시려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주일이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동시에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장엄하게 예고하는 날이다.
교회는 오늘 성지(聖枝) 축복과 행렬의 전례를 거행하면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영광스럽게 기념하고,
‘수난 복음’을 통하여 그분의 수난과 죽음을 장엄하게 선포한다.
오늘의 전례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미사 중에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 복음을 읽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환영하는 예수님은 그렇게 십자가의 주님이심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받았던 성지 역시 고통의 예수님을 받아들인다는 상징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묵상하며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마르코 복음에 등장하는 수난 복음이다.
무죄하신 분이 죄인으로 판결받고 죽음의 길을 가신다.
억울한 일이다. 하지만 항변하지 않으신다.
아버지의 뜻으로 받아들이신 것이다. 억울함도 십자가의 한 모습이다(복음).
복음 <예루살렘 입성 기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10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 곧 올리브 산 근처 벳파게와
베타니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 제자 둘을 보내며 말씀하셨다.
“너희 맞은쪽 동네로 가거라.
그곳에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어린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는 것을 곧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을 풀어 끌고 오너라.
누가 너희에게 ‘왜 그러는 거요?’ 하거든,
‘주님께서 필요하셔서 그러는데 곧 이리로 돌려보내신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그들이 가서 보니, 과연 어린 나귀 한 마리가 바깥 길 쪽으로 난 문 곁에 매여 있었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것을 푸는데, 거기에 서 있던 이들 가운데 몇 사람이,
“왜 그 어린 나귀를 푸는 거요?” 하고 물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대로 말하였더니 그들이 막지 않았다.
제자들은 그 어린 나귀를 예수님께 끌고 와서 그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얹어 놓았다.
예수님께서 그 위에 올라앉으시자, 많은 이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깔았다.
또 어떤 이들은 들에서 잎이 많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깔았다.
그리고 앞서 가는 이들과 뒤따라가는 이들이 외쳤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는 복되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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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수난 성지주일(4/5)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시려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주일이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동시에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장엄하게 예고하는 날이다. 교회는 오늘 성지(聖枝) 축복과 행렬의 전례를 거행하면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영광스럽게 기념하고, ‘수난 복음’을 통하여 그분의 수난과 죽음을 장엄하게 선포한다. 오늘의 전례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미사 중에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 복음을 읽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환영하는 예수님은 그렇게 십자가의 주님이심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받았던 성지 역시 고통의 예수님을 받아들인다는 상징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묵상하며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마르코 복음에 등장하는 수난 복음이다. 무죄하신 분이 죄인으로 판결받고 죽음의 길을 가신다. 억울한 일이다. 하지만 항변하지 않으신다. 아버지의 뜻으로 받아들이신 것이다. 억울함도 십자가의 한 모습이다(복음).
복음 <예루살렘 입성 기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10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 곧 올리브 산 근처 벳파게와 베타니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 제자 둘을 보내며 말씀하셨다. “너희 맞은쪽 동네로 가거라. 그곳에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어린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는 것을 곧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을 풀어 끌고 오너라. 누가 너희에게 ‘왜 그러는 거요?’ 하거든, ‘주님께서 필요하셔서 그러는데 곧 이리로 돌려보내신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그들이 가서 보니, 과연 어린 나귀 한 마리가 바깥 길 쪽으로 난 문 곁에 매여 있었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것을 푸는데, 거기에 서 있던 이들 가운데 몇 사람이, “왜 그 어린 나귀를 푸는 거요?” 하고 물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대로 말하였더니 그들이 막지 않았다. 제자들은 그 어린 나귀를 예수님께 끌고 와서 그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얹어 놓았다. 예수님께서 그 위에 올라앉으시자, 많은 이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깔았다. 또 어떤 이들은 들에서 잎이 많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깔았다. 그리고 앞서 가는 이들과 뒤따라가는 이들이 외쳤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는 복되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인간은 누구나 갈등을 안고 살아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크다’고 생각합니다. 웬만해서는 작은 갈등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외칩니다. 부모를 원망하고, 세상을 비관하고, 하느님께 항의하기도 합니다. 물론 힘겨운 갈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만’이 그런 갈등 속에 빠져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갈등 역시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크고 깊은’ 갈등이라면 그만큼 ‘크고 무거운’ 십자가입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누구나 갈등을 지닌 채 살아갑니다. 누구나 십자가를 지고 걸어갑니다. 수난 복음 역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알리려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에서 ‘휘청’거리셨습니다. 힘이 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힘들지 않는 십자가는 없습니다. 고통스럽지 않는 갈등은 없습니다. 크고 무겁더라도 작고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은총으로 가는 길입니다. 자신의 마음이면서도 자신이 ‘모르는 마음’이 있습니다. 억울하게만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달리 생각할 수 있건만 억울한 쪽으로만 초점을 맞춥니다. 그리고 그런 결정에 연관된 사람을 떠올리며 벽을 쌓습니다. 언젠가 보복할 것이라는 생각마저 합니다. 무서운 마음입니다. 그 마음에 은총이 오게 해야 합니다. 선한 생각이 햇볕처럼 스며들게 해야 합니다. 성주간 동안 해야 할 일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주님 수난 성지주일(4/5)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사람을 깨우치시는 분이시다. 지친 이는 말로 격려하시고, 연약한 이는 사랑으로 받아 주신다. 그러니 주님의 뜻을 거역해서는 안 된다. 박해자들 앞에서도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주님의 이끄심을 믿는 행동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다. 그런데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당신 자신을 낮추셨다.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 주님께서는 그분을 높이실 것이다. 필리피서에 나오는 바오로 사도의 찬미가이다(제2독서).
제1독서
<나는 모욕을 받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0,4-7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셨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셨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 2,6-11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는 복되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
주님!
엊그제 재를 얹는 예식을 한 것 같은데 벌써 성지주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제가 한 일이란 것은...
그저 하루하루 그날의 복음말씀을 대충 묵상하는 것으로
사순시기를 보낸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성찰을 하고 고해성사를 보면서
묵은 마음의 때를 씻어 내야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면서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작심삼일로
나날을 보냈지요
어제와 같은 오늘을 맞으며 내일로 미루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마음 속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어제보다는 좀 더 나은
신앙생활을 해야한다고 다짐을 했건만 실천을 하지 못하고
또 다시 성지주일을 맞습니다
아마도 오늘 미사 때는 성지가지를 들고 호산나를 외치며
당신을 찬미하겠지요 입으로만....
내일이면 아니!
미사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또 다시 제 멋대로 제 의지대로
살면서 당신의 가슴에 비수를 꼿기도 하겠지요
그리고 또 다시 고해성사를 반복해서 보고 또 보고
하지만 다시는 당신의 가슴에 비수를 꼿는 일만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던 일은 까맣게 잊은 채 또 다시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면서도 고쳐지지 않는 저의 나쁜습관...
그런 저의모습이 저 자신도 싫으면서도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만은 바랄 뿐이지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주간만큼이라도 잘 보내야겠다는 반성을 해봅니다
더도 덜도 말고 복음을 묵상하는 이 순간의 마음만이라도
변하지 않기를 기도해봅니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는 복되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
아멘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는 복되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
주님!
엊그제 재를 얹는 예식을 한 것 같은데 벌써 성지주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제가 한 일이란 것은...
그저 하루하루 그날의 복음말씀을 대충 묵상하는 것으로
사순시기를 보낸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성찰을 하고 고해성사를 보면서
묵은 마음의 때를 씻어 내야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면서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작심삼일로
나날을 보냈지요
어제와 같은 오늘을 맞으며 내일로 미루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마음 속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어제보다는 좀 더 나은
신앙생활을 해야한다고 다짐을 했건만 실천을 하지 못하고
또 다시 성지주일을 맞습니다
아마도 오늘 미사 때는 성지가지를 들고 호산나를 외치며
당신을 찬미하겠지요 입으로만....
내일이면 아니!
미사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또 다시 제 멋대로 제 의지대로
살면서 당신의 가슴에 비수를 꼿기도 하겠지요
그리고 또 다시 고해성사를 반복해서 보고 또 보고
하지만 다시는 당신의 가슴에 비수를 꼿는 일만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던 일은 까맣게 잊은 채 또 다시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면서도 고쳐지지 않는 저의 나쁜습관...
그런 저의모습이 저 자신도 싫으면서도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만은 바랄 뿐이지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주간만큼이라도 잘 보내야겠다는 반성을 해봅니다
더도 덜도 말고 복음을 묵상하는 이 순간의 마음만이라도
변하지 않기를 기도해봅니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는 복되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
아멘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날!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재의 수요일이 얼마전이었던 것 같은데 벌써 성지 주일이네요.
성주간이 시작되는 시기~~
사순시기로 접어들면서 제게 주어진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갈 것을 다짐했고
아버지의 사랑을 더 깊이 새기면서 실천하려 마음먹었었는데~~
맘뿐이었던 것은 아닌지요.
전 오늘 수난 복음을 묵상하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베타니아에 있는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
어떤 여자가 값비싼 순 나르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자 사람들은 허투루 쓴다고 투덜거리지요.
그때 예수님께서는 예고하십니다.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참 아리게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리하셨음에도 알지를 못했을텐데~~~
사랑은 기도하는 사람 입에서 나와 손을 통하여
가슴으로 전달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에 유다를 담아보았고 베드로를 담아 보았습니다.
이미 알고 계셨던 예수님!
저라면 과연???
예수님꼐서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시어 함께 음식을 먹을때
말씀하시지요.
“너희 가운데 한사람,
나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는 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라고 하시자
그들은 차례로 얘기합니다.
“저는 아니겠지요?” 라고~~~
제 모습은 아닐까요?일상 생활을 하면서 늘 저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말로만 듣고,
저만 아니라는 교만으로 늘 늪에 빠져 헤어나질 못하는 것은 아닌지요.
누군가 바른 말을 하고, 아버지께서 호흡으로 전해주셔도
저는 아니라고 반문하면서 스스로 “그래 너야” 라고 한 것은 아닌지요.
많은 생각을 해 봅니다.
어젠 성모님과 함께 손을 잡고 고통의 신비를 바치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렸습니다.
십자가의 길에서 힘들어 하시며 휘정하신 아버지의 모습이 갑자기 떠올라서~~
아버지께서도 그리 힘드셨는데
전 아무것도 아닌 것에 힘들어 하면서 주저 앉아 버린적은 없었는지요.
저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기꺼이 마다않고 지신 십자가!
아버지의 그 마음을 제 가슴에 담으며 저또한 새로운 각오를 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께선 제가 충분히 질 만큼의 짐을 주심을~~
그리고 늘 지켜보심을~~
그러시다가 정히나 힘들어 하면 제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실 것을 압니다.
그러기에 투정이나 불평보단 애써 웃으며 노력하는 모습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아버지의 맘을 헤아리면서 힘차게 나아갈 것을 다짐해 보는 성지 주일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기전 베드로는 그토록 나약한 이였지만
성령을 받은 후엔 정말 멋진 교회의 반석으로 새로 서는 것처럼
저 또한 아버지의 사랑을 가슴에 안고
저도 그렇게는 아니겠지만
늘 그리하려 노력하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딸이니까~~~
울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