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어 둔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1. 말씀읽기 : 마르코 4,21-25 등불의 비유 (루카 8,16-18)
2. 말씀연구
등불이 필요한 곳은 어디입니까? 어두운 곳입니까? 아니면 밝은 곳입니까? 책상에 앉아 있으니 오후의 태양이 방안에 가득해서 너무 눈이 부셨습니다. 그래서 커튼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커튼을 내리니 책의 글씨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스탠드를 키려고 하다가 갑자기 웃음이 나왔습니다. 밝은 빛을 가리고 어두운 빛으로 책을 보려 하고 있구나. 커튼을 올리면 다시 환한 햇살이 방에 가득할 텐데…, 단편적인 예지만 그렇게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버려두고 별것 아닌 것에 마음을 쓰는 것. 그것이 내 모습일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21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갈릴래아의 작은 집안에서 사용되던 등잔은 질그릇으로 된 편편한 접시인데, 방을 어느 정도 밝히기 위해서는 촛대위에 올려놓아야 했습니다. 됫박 혹은 침대 밑에 두는 것은 쓰지 않는 낮 시간에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등불과 같이 높은 곳에 놓여 있는 사도들과 제자들은 때가 온다면 자기들만이 본 기적과 자기들에게만 주신 가르침을 모두에게 전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하나의 보배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온 인류를 위하여 그들에게 맡겨 놓은 보배입니다. 그리고 만일 한때 그것을 바로 평가할 수 없는 대중에게 감추어져 있었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모든 것은 대낮처럼 밝게 나타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22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등불과 같이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산 위에 있는 도시를 어떻게 감출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하나의 보배입니다. 온 인류를 위하여 우리 모두에게 맡겨 놓은 보배입니다. 그 보배를 잘 못 이해하고, 잘못 받아들이고 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대낮처럼 밝게 알려질 때가 올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비밀은 알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알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조건은 내가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인도 드러납니다. “멋진 신앙의 모습”은 감출 수가 없습니다. 말이 아니라 할지라도 행동으로 드러나고, 그 형제자매의 그림자와 발자국으로도 드러납니다. 반드시 드러난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23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하느님 나라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나가갈 방향이 보입니다. 해야 할 일이 보이고,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들립니다. 하지만 하느님께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즉,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는 말씀입니다.
주변에는 많은 소리가 들려옵니다. 하지만 내가 들으려고 하지 않고, 고요 속에 머물지 않으면 들리지 않습니다. 또 들을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합니다. 내 옆에 있는 형제자매들이 들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삶. 그 삶이 바로 신앙인의 삶입니다.
2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새겨들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새겨듣는다는 것은 마음에 깊이 각인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을 들을 때 “새겨듣게” 됩니다. 그리고 새겨들은 것은 양심성찰을 통해서 늘 볼 수 있게 됩니다. 만일 양심성찰을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새겨들어도 기억하지 못하게 됨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자비를 베풀어야 만이 나 또한 자비를 받을 수 있고, 내가 용서를 베풀어야 만이 나 또한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용서한 것 그 이상으로, 내가 자비를 베푼 것 그 이상으로 받게 됩니다. 이 말씀을 늘 명심하면서 신앙생활을 해 나아 갑시다.
또한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혼자만 간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는 나를 통해 열매 맺어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제자들의 사명은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담아주신 하느님 나라에 대한 신비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전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전하고 또 전하고 또 전해도 부족합니다. 그렇게 세상 곳곳에 복음을 전할 때,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전할 때, 예수님께서는 흡족해 하실 것입니다.
영세는 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비자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알고, 큰 믿음을 가지고,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력하지 않는 신앙인에게 구원은 문은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내가 받은 작은 씨가 싹이 터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25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여기서 가진 자는 어떤 사람이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가진 사람은 은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가진 사람이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은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가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 은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은 기도를 통해서 만들어 집니다. 기도하는 이들은 은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게 되고, 주어진 은총을 감사하며, 그 은총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은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가지지 못한 자는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고, 나눠줄 것이 없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또한, 가진 자는 “들을 귀를 가진 자”입니다. 그래서 은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해야 할 것들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구분할 수 있으며,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들을 귀가 없는 자는 아무리 귀한 것을 말해주어도 소용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되고, 가지지 못한 자는 있는 것마저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것도 효과가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고 있는 것은 은혜입니다. 신자가 되었다는 것, 봉사자가 되고, 사제, 수도자가 되었다는 것은 은혜의 결과입니다. 내가 노력하여 이 은혜를 열매 맺게 한다면 하느님께로부터 더 큰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은혜에 관심도 없고, 열매 맺는 일에는 더 관심 없는 사람은 결국 그것마저 빼앗길 것이라는 것입니다. 커다란 바다는 아무리 가뭄이 심하게 들어도 마르지 않습니다. 작은 연못은 며칠만 더워도 말라 버린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내 주변에서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드러나는 곳은 어디입니까?
② “들을 귀를 가진 자”, “은총을 담을 그릇을 가진 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