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대희년인 2000년 부활 제2주일에
폴란드 출신의 ‘파우스티나’ 수녀의 시성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기릴 것을 당부하였다.
이후 교회는 2001년부터 해마다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느님의 자비에 감사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 오늘은 부활 제2주일이며, 하느님의 자비 주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토마스 사도에게 발현하십니다.
그러고는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십니다.
그러자 토마스는 승복하며 믿음을 고백합니다.
스승님의 애정에 감동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곁에도 의심 많은 토마스의 모습을 지닌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오늘의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토마스 사도를 위해 한 번 더 발현하신다.
스승님의 사랑이시다. 토마스는 감동한다.
의심 많고 따지기 좋아하는 자신을 위해
한 번 더 발현하셨기 때문이다.
부활은 지식이 아니다. 부활은 깨달음이며 은총이다(복음).
복음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오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9-31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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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4/11)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대희년인 2000년 부활 제2주일에 폴란드 출신의 ‘파우스티나’ 수녀의 시성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기릴 것을 당부하였다. 이후 교회는 2001년부터 해마다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느님의 자비에 감사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 오늘은 부활 제2주일이며, 하느님의 자비 주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토마스 사도에게 발현하십니다. 그러고는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십니다. 그러자 토마스는 승복하며 믿음을 고백합니다. 스승님의 애정에 감동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곁에도 의심 많은 토마스의 모습을 지닌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오늘의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토마스 사도를 위해 한 번 더 발현하신다. 스승님의 사랑이시다. 토마스는 감동한다. 의심 많고 따지기 좋아하는 자신을 위해 한 번 더 발현하셨기 때문이다. 부활은 지식이 아니다. 부활은 깨달음이며 은총이다(복음).
복음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오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9-31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토마스 사도는 스승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새로운 정보를 얻으려고 밖에 나가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무서워 숨었지만, 토마스는 바깥소식이 궁금했던 것입니다. 토마스가 돌아오자, 제자들은 그를 힐책합니다. ‘스승님께서 오셨더랬다.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토마스는 반발합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가? 바깥에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진정 부활하셨다면, 그분의 손과 발의 상처를 본 뒤에야 믿겠다.’ 그는 너무 똑똑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습니다. 그를 돌릴 수 있는 분은 스승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한 번 더 나타나십니다. 토마스는 예수님의 두 번째 발현에서 마음이 바뀝니다. 그분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상처를 확인했기에 바뀐 것은 아닙니다. 그 정도에서 마음을 바꿀 토마스가 아닙니다. 그의 변신은 예수님의 애정에 있습니다. ‘의심 많은’ 자기를 위해 한 번 더 발현해 주신 ‘스승님의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감동을 주는 행위입니다. 그런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이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그러기에 토마스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응답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은 주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실제로 모든 것은 주님께서 주셨고, 우리는 다만 관리자일 뿐입니다. 그러니 진심으로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의 시작입니다. 감동을 주는 사랑의 출발입니다.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4/11)
말씀의 초대
사도들은 수많은 기적을 일으킨다. 예수님의 권능이 그들과 함께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지나가면 병자들과 더러운 영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데리고 몰려들었다. 특별히 베드로에게는 더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요구했다. 사도들은 그들 모두에게 기적을 베풀며 예수님의 말씀을 전했다(제1독서). 요한은 미구에 오실 예수님을 전하고 있다. 이를 위해 환상 중에 보았던 사실을 기록한다. 모든 것은 그분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다. 요한은 그분을 ‘처음이며 마지막’이시고,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신 분이시라고 표현한다(제2독서).
제1독서
<주님을 믿는 남녀 신자들의 무리가 더욱더 늘어났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5,12-16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백성 가운데에서 많은 표징과 이적이 일어났다. 그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솔로몬 주랑에 모이곤 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감히 그들 가운데에 끼어들지 못하였다. 백성은 그들을 존경하여, 주님을 믿는 남녀 신자들의 무리가 더욱더 늘어났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병자들을 한길까지 데려다가 침상이나 들것에 눕혀 놓고, 베드로가 지나갈 때에 그의 그림자만이라도 누구에겐가 드리워지기를 바랐다. 예루살렘 주변의 여러 고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병자들과 또 더러운 영에게 시달리는 이들을 데리고 몰려들었는데, 그들도 모두 병이 나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나는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9-11ㄴ.12-13.17-19 여러분의 형제로서,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과 더불어 환난을 겪고 그분의 나라에 같이 참여하며 함께 인내하는 나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에 대한 증언 때문에 파트모스라는 섬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에,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내 뒤에서 나팔 소리처럼 울리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일곱 교회에 보내라.” 나는 나에게 말하는 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 보려고 돌아섰습니다. 돌아서서 보니 황금 등잔대가 일곱 개 있고, 그 등잔대 한가운데에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발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 띠를 두르고 계셨습니다. 나는 그분을 뵙고, 죽은 사람처럼 그분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 나에게 오른손을 얹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살아 있는 자다. 나는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 나는 죽음과 저승의 열쇠를 쥐고 있다.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일어나는 일들과, 그다음에 일어날 일들을 기록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님!
오늘복음에서 당신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말씀하십니다
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기쁩니다
당신을 보지 않고 믿으며 신앙생활 하고 있으니 그렇지요
아! 생각만으로도 흥이 납니다^*^
근래 정말 신나는 일이 없어 우울했었는데
당신의 말씀만으로 용기가 생기고 마음이 편안함을 느끼게되니
당신을 믿고 세례를 받은 저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가끔 아주 가끔 신앙생활이 부담스럽기도 했지요
그럴 때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힘들고 상처를 받을 때도 있어
괴로웠지만 포기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눈물도 찔찔흘리고 당신께 투정도 부리고 원망도 하면서…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미비하나마 이렇게라도 당신을 잊지 않고
당신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했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아직도 제대 로 된 기도한번 못하는 신앙가지만
언젠가는 당신께서 도와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한다고 다짐해봅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오늘복음말씀에 용기를 얻으며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참고 견디며 당신께서 주신 사랑을 기억하며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합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묵상하며
♬ Alleluia-Gregorian Ch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