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나지만, 그 사람은 모른다.


연중 제3주간 금요일(1/27)


    말씀의 초대
    다윗은 전쟁터에 나가 있던 우리야의 아내 밧 세바를 우연히 알게 된다. 다윗은 밧 세바와 부정한 관계를 맺었고 그 여인은 임신을 하게 된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숨기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결국 다윗은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음으로 몰고 간다(제1독서). 하느님의 나라는 아주 작은 겨자씨에 비길 수 있다. 겨자씨는 씨앗들 중에서 가장 작고 하찮은 씨다. 우리는 일상의 작고 하찮은 곳에서도 하느님 나라를 발견할 수 있다(복음).
    제1독서
    <너는 나를 무시하고, 우리야의 아내를 데려다가 네 아내로 삼았다.>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11,1-4ㄱㄷ.5-10ㄱ.13-17 해가 바뀌어, 임금들이 출전하는 때가 되자, 다윗은 요압과 자기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을 내보냈다. 그들은 암몬 자손들을 무찌르고 라빠를 포위하였다. 그때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 저녁때에 다윗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왕궁의 옥상을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옥상에서 내려다보게 되었다. 그 여인은 매우 아름다웠다.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는데, 어떤 이가 “그 여자는 엘리암의 딸 밧 세바로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가 아닙니까?” 하였다.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을 데려왔다. 그 뒤 여인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 여인이 임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어, “제가 임신하였습니다.” 하고 알렸다. 다윗은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어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를 나에게 보내시오.” 하였다. 그래서 요압은 우리야를 다윗에게 보냈다. 우리야가 다윗에게 오자, 그는 요압의 안부를 묻고 이어 군사들의 안부와 전선의 상황도 물었다. 그러고 나서 다윗은 우리야에게, “집으로 내려가 그대의 발을 씻어라.” 하고 분부하였다. 우리야가 왕궁에서 나오는데 임금의 선물이 그를 뒤따랐다. 그러나 우리야는 제 주군의 모든 부하들과 어울려 왕궁 문간에서 자고,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우리야가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하고 보고하자, 다윗이 그를 다시 불렀다. 우리야는 다윗 앞에서 먹고 마셨는데, 다윗이 그를 취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저녁이 되자 우리야는 밖으로 나가 제 주군의 부하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고, 자기 집으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야의 손에 들려 보냈다. 다윗은 편지에 이렇게 썼다.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심한 곳 정면에 배치했다가, 그만 남겨 두고 후퇴하여 그가 칼에 맞아 죽게 하여라.” 그리하여 요압은 성읍을 포위하고 있다가, 자기가 보기에 강력한 적군이 있는 곳으로 우리야를 보냈다. 그러자 그 성읍 사람들이 나와 요압과 싸웠다. 군사들 가운데 다윗의 부하 몇 명이 쓰러지고,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도 죽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나지만, 그 사람은 모른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26-34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역사상 이스라엘은 다윗 임금과 솔로몬 임금 통치에서 가장 영화를 누렸습니다. 그 시절 이래로 여러 세기에 걸쳐 이스라엘의 국운은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나라가 다른 민족에게 정복당하고 찢겨 나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이스라엘은 로마 제국에게 지독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민족의 자존심은 무참히 무너졌고 나라의 위신은 끝없이 떨어졌습니다. 이러한 수모를 겪어 오면서 이스라엘은 하느님 나라가 오면 영화로운 시대가 열리고, 선택받은 백성인 자신들은 뭇 민족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이스라엘의 믿음의 상징이 레바논의 삼나무입니다. 레바논의 삼나무들은 다 자라면 그 크기가 무려 60에서 90미터 이상이 됩니다. 그래서 온갖 새들이 삼나무에 둥지를 틀고 쉴 수 있습니다. 거대한 레바논의 삼나무가 모든 나무 가운데 가장 크듯이, 하느님 나라가 오면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가장 큰 민족이 되리라는 것이 이스라엘의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믿음과는 달리, 하느님 나라를 겨자씨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은 씨로 모든 씨앗 가운데 가장 작고 하찮은 씨앗입니다. 이처럼 하느님 나라를 보는 관점이 이스라엘 사람들과 예수님께서 달랐던 것입니다. 겨자씨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하느님을 받아들이면 날마다 하느님 나라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곧 하느님 나라는 웃고 우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멀리 떨어져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숨 쉬고 먹고 마시는 가운데, 그리고 우리가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우리 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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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나지만, 그 사람은 모른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저에게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신앙생활을 지금보다는 기쁘게 할텐데…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불안하고 초조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을텐데…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저에게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주님!

    하지만 실망은 하지 않겠습니다
    포기도 하지 않겠습니다
    사랑이신 당신께서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시기에 …
    오뚜기처럼 넘어질지라도 일어나고 또 일어나며 희망을 갖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아니!
    꼭 그리되리라 굳게 믿습니다
    당신이 계시기에…
    이 세상에서의 삶이 힘들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굳게 믿습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제가 힘들고 지칠때도 당신께서 저의 손을 잡아 주시어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게 하소서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

    묵상하며


    ♬ 믿음 더욱 굳세라

  2. guest 님의 말:


    연중 제3주간 금요일(1/27)


      말씀의 초대
      다윗은 전쟁터에 나가 있던 우리야의 아내 밧 세바를 우연히 알게 된다. 다윗은 밧 세바와 부정한 관계를 맺었고 그 여인은 임신을 하게 된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숨기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결국 다윗은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음으로 몰고 간다(제1독서). 하느님의 나라는 아주 작은 겨자씨에 비길 수 있다. 겨자씨는 씨앗들 중에서 가장 작고 하찮은 씨다. 우리는 일상의 작고 하찮은 곳에서도 하느님 나라를 발견할 수 있다(복음).
      제1독서
      <너는 나를 무시하고, 우리야의 아내를 데려다가 네 아내로 삼았다.>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11,1-4ㄱㄷ.5-10ㄱ.13-17 해가 바뀌어, 임금들이 출전하는 때가 되자, 다윗은 요압과 자기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을 내보냈다. 그들은 암몬 자손들을 무찌르고 라빠를 포위하였다. 그때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 저녁때에 다윗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왕궁의 옥상을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옥상에서 내려다보게 되었다. 그 여인은 매우 아름다웠다.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는데, 어떤 이가 “그 여자는 엘리암의 딸 밧 세바로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가 아닙니까?” 하였다.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을 데려왔다. 그 뒤 여인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 여인이 임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어, “제가 임신하였습니다.” 하고 알렸다. 다윗은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어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를 나에게 보내시오.” 하였다. 그래서 요압은 우리야를 다윗에게 보냈다. 우리야가 다윗에게 오자, 그는 요압의 안부를 묻고 이어 군사들의 안부와 전선의 상황도 물었다. 그러고 나서 다윗은 우리야에게, “집으로 내려가 그대의 발을 씻어라.” 하고 분부하였다. 우리야가 왕궁에서 나오는데 임금의 선물이 그를 뒤따랐다. 그러나 우리야는 제 주군의 모든 부하들과 어울려 왕궁 문간에서 자고,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우리야가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하고 보고하자, 다윗이 그를 다시 불렀다. 우리야는 다윗 앞에서 먹고 마셨는데, 다윗이 그를 취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저녁이 되자 우리야는 밖으로 나가 제 주군의 부하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고, 자기 집으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야의 손에 들려 보냈다. 다윗은 편지에 이렇게 썼다.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심한 곳 정면에 배치했다가, 그만 남겨 두고 후퇴하여 그가 칼에 맞아 죽게 하여라.” 그리하여 요압은 성읍을 포위하고 있다가, 자기가 보기에 강력한 적군이 있는 곳으로 우리야를 보냈다. 그러자 그 성읍 사람들이 나와 요압과 싸웠다. 군사들 가운데 다윗의 부하 몇 명이 쓰러지고,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도 죽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나지만, 그 사람은 모른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26-34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역사상 이스라엘은 다윗 임금과 솔로몬 임금 통치에서 가장 영화를 누렸습니다. 그 시절 이래로 여러 세기에 걸쳐 이스라엘의 국운은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나라가 다른 민족에게 정복당하고 찢겨 나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이스라엘은 로마 제국에게 지독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민족의 자존심은 무참히 무너졌고 나라의 위신은 끝없이 떨어졌습니다. 이러한 수모를 겪어 오면서 이스라엘은 하느님 나라가 오면 영화로운 시대가 열리고, 선택받은 백성인 자신들은 뭇 민족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이스라엘의 믿음의 상징이 레바논의 삼나무입니다. 레바논의 삼나무들은 다 자라면 그 크기가 무려 60에서 90미터 이상이 됩니다. 그래서 온갖 새들이 삼나무에 둥지를 틀고 쉴 수 있습니다. 거대한 레바논의 삼나무가 모든 나무 가운데 가장 크듯이, 하느님 나라가 오면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가장 큰 민족이 되리라는 것이 이스라엘의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믿음과는 달리, 하느님 나라를 겨자씨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은 씨로 모든 씨앗 가운데 가장 작고 하찮은 씨앗입니다. 이처럼 하느님 나라를 보는 관점이 이스라엘 사람들과 예수님께서 달랐던 것입니다. 겨자씨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하느님을 받아들이면 날마다 하느님 나라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곧 하느님 나라는 웃고 우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멀리 떨어져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숨 쉬고 먹고 마시는 가운데, 그리고 우리가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우리 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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