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새로나는 방법.

 하느님 없이는, 상처받은 인간성은 허약함과 죽음의 세력하에 있게 된다. 육의 이해력은 니고데모의 경우에서처럼 자신 안에 갇힌 범주들 및 이해들의 세계 안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육은 자신 안에 갇히고 비신비화된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알아듣지 못한다. 그는 오직 자신만을 이해하고 들을 수 있을 따름이다.
 육으로서의 인간존재는 하느님의 권능에 의하여 변화된다. 하느님의 권능에 의해 변화된 인간 존재는 영이라는 새로운 실재의 차원에 살게 된다. 영은 육으로서의 인간성의 존재를 없애지 않는다. 오히려 영은 인간성의 생명의 원천을, 운명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시켜 하느님께 소속된다는 운명에로 일으켜 세움으로써 변형시킨다.
 우리가 만일 ‘프네우마’의 뜻인 “숨기운”, “바람”, “영”을 염두에 둔다면 성령을 통하여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가 보다 분명해질 수 있다. 인간이 첫 번째로 태어난 것 역시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인간들은 생명의 숨 기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살아 있다.
고대인들에게 있어 바람(프네우마)은 그 소리와 그 효과로 드러나지만 그 기원과 종점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같은 힘이었다. 이처럼 성령(프네우마)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곳으로 바람처럼 불고,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계시면서 원하시는대로 오고 가시면서, 그분의 목소리는 우리를 다시 태어남에로 부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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