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 단호하게 말씀을 하십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나귀가 돌리는 연자매를 매단 채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그를 위해 더 낫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죄를 지으면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죄를 지으면서 다른 사람까지 그 죄에 빠뜨리는 사람은 더욱 나쁜 사람일 수 밖에 없습니다. 친구가 무척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의 친구를 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을 죄에 빠드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그를 직접적으로 유혹하여 나쁜짓을 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조금만 밀어 넣으면 쉽게 빠져 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는 좀더 가혹한 말씀을 하십니다. “당신의 손이 당신을 걸려 넘어지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버리시오. 두 손을 가지고 지옥으로, 그 꺼지지 않는 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불구자로서 생명으로 들어가는 편이 당신을 위해 낫습니다.”
그런데 손이 죄를 짓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손이 몇 천 개라도 감당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생활한다면 좀더 죄 짓는 기회는 줄어들리라 생각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발이 당신을 걸려 넘어지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버리시오.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는 절름발이로서 생명으로 들어가는 편이 당신을 위해 낫습니다.”
자매님께서 구두를 닦아 주시면서 이런 기도를 하신다고 했습니다. “주님! 제가 닦은 이 신발을 신고 당신의 말씀을 전하는 사도가 되게 하시고, 나쁜 곳은 피하고 좋은 곳만을 향하게 하소서”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아야 할 것이 있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당신의 눈이 당신을 걸려 넘어지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내던지시오.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는 애꾸눈으로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편이 당신을 위해 낫습니다.”
요즘은 인터넷이 문제입니다.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곳. 그곳이 바로 인터넷입니다.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이 더 재미있습니다. 보아야 할 것들은 별로 재미없습니다. 아니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은 재미있게 만들어서 보게 만들고, 보아야 할 것들은 재미없게 만들어서 보지 않게 만듭니다. 재미있게 만들어서 보기도 쉽고, 마음에도 와 닿는 그런 인터넷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아니 보여주면 안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보면서, 만지면서, 향하면서 죄짓는 것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약한 의지는 계속 죄를 짓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보고 소금이 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소금이 짠 맛을 잃는다면 무엇으로 그것을 제맛 나게 하겠냐고 말씀을 하십니다.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우기면서 죄를 짓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을 따라가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남들이 다 하니까 우리도 그렇게 합니다..
아이들이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쪽팔려”라는 게임을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고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다 하는데 우리 애만 못하게 한다는 것이 어려워요.”
…
“뭐 방법 없지요. 연자 맷돌 달고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