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눈뜬 장님 아닙니까?

 

보물을 하늘에 쌓으세요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의 재물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보물을 땅에 쌓지 마시오. 거기서는 좀과 벌레가 갉아먹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보물을 하늘에 쌓으시오. 거기서는 좀도 벌레도 갉아먹지 않고 또 거기서는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않고 훔쳐 가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하늘에 재물을 쌓을 수 있을까요? 하늘나라 은행에는 어떻게 입금이 가능할까요? 그 방법은 바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유욕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우리들은 재산을 획득하고 늘리며 지키는데 마음을 쓰고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사실 재산이 필요합니다. 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남을 위해서도.




어떤 사람이 집에 사진기가 있었습니다. 너무도 값진 사진기였기에 외출할때는 그것 때문에 너무도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사진기가 나를 위해서 있는 것인가? 내가 사진기를 위해서 있는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사진기를 위해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진기를 다른 사람에게 주어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외출해도 마음이 그렇게 편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를 위해서 가지고 있는 재물이 나를 구속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도 옳습니다. “사실 당신의 보물이 있는 곳, 거기에 당신의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아무리 부정을 하려 해도…




어느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주일 헌금도 1,000원짜리 한 장 씩 냈고, 교무금도 조금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신부님께로부터 좋은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형제님은 왜 평일 미사 안나오세요?”


“좀 바빠서…”


“얼마큼 바쁜데요?”


“사실 미사 오려고 하면 꼭 무슨 일이 생기고, 일이 없으면 몸이 피곤하고..그렇습니다.”


“형제님! 제가 처방전 하나 드릴까요?”


“예! 주십시오”


“돌아오는 주일부터 헌금을 두배로 올려 보시고, 교무금도 두배로 올려 보세요. 1,000원을 냈으면 2,000원을 내보시고, 2,000원을 냈으면 4,000원을 내 보세요.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두 달 후에 봅시다.”



부자는 신부님의 말씀에 따라서 두 배로 올렸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첫 주에는 2,000원을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발걸음이 너무도 가벼웠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주에는 5,000원을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주에는 10,000원을 봉헌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만원을 봉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주에는 20,000원을 봉헌했습니다.  그랬더니 마음 한 구석에서 올라오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아하! 지금까지 내가 돈 몇 푼에 이렇게 하느님께 인색했구나. 술 한잔도 못 사먹는 돈을 그렇게 아까와 했으니… 하느님께서 얼마나 가슴아파 하셨을까…”




그날 이후로 그는 평일미사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저녁 기도도 빠지지 않고 했습니다.




두 달 후에 신부님께서 부르셨습니다.




“형제님! 요즘은 평일 미사를 나오시네요. 어떻게 실천하셨어요?”


“예! 신부님! 지금은 봉헌금은 20,000원씩 내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아깝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은 천원짜리 내는데…”


“아깝기는요. 제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리고 제가 죽어서 이 돈을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봉헌금을 올리니까 마치 제가 이 성당의 주인이 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서 평일미사에도 나오게 되고, 성당에 쓰레기가 있으면 치우려고도 합니다.”




“마음이 있다면 재물도 따라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비싼 반지를 사 주는 것을 아까워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물론 그가 돈이 없다면 모를까 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자를 위해서 쓰는 것을 아까워 한다면 그는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돈을 많이 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께 너무 인색한 것 같습니다. 천 원짜리 하느님이시니….






눈은 몸의 등불입니다.




앞 못 보는 장님과 말 못하는 벙어리 둘 중에 누가 더 힘들까요?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면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한 사람은 안보이니 환장하겠고, 또 한 사람은 말 못 하니 환장하겠고…


한 일주일 동안 귀가 아픈 적이 있었습니다. 잘 들리지가 않고 이명이 심했습니다. 문득 두려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러다가 못 듣게 되는 것은 아닐까? 다행이 좀 가라앉았지만 잘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그제야 알았습니다.


그리고 보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마 지금 제가 눈이 멀어서 앞을 못 본다면 신세 한탄만 하다가 세월을 다 보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의 등불은 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눈이 있어야 볼 수 있고, 또 하느님의 손길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못보는 것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이 맑으면 당신의 온 몸이 밝고 당신의 눈이 흐리면 당신의 온 몸이 어두울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라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습니까?” 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 면에서 바라본다면 재물을 하늘에 쌓으라는 것과 눈이 몸의 등불이라는 말씀은 하나의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즉 마음의 눈이 보여야만이 재물을 하늘에 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재물을 나만을 위해서 쓰고 있다면 나는 결코 하늘에 보물을 쌓을 수 없습니다. 나는 그분 보시기에 눈뜬 장님인 것입니다.




지금 눈을 뜨지 못하면 평생을 장님으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생을…








이 글은 카테고리: 지난 묵상 보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