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디야

 

오바디야서(הידבע)




1. 서 론


2. 본 론


  2.1. 저자문제


  2.2. 정경상의 위치


  2.3. 단일성


  2.4. 저작연대


  2.5. 배경: 에돔의 역사


  2.6. 문학적 형태


  2.7. 구조와 내용


  2.8. 오바디야의 신학


    2.8.1. 하느님의 정의


    2.8.2. 야훼의 날


3. 결론을 대신하여








1. 서  론




오바디야서는 구약성서 중 가장 짧은 본문을 지니고 있으며 구조에 있어서도 다른 성서 본문과는 달리 간결하고 함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에돔이라는 한 민족에 대한 예언 신탁에 중점을 둔다. 어쩌면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오바디야서는 에돔의 패망과 이스라엘의 승리라는 편협한 민족주의를 표방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 이 책의 연구에 큰 가치를 두지 않은 듯하다. 아니면 그 내용과 분량에 있어 기타 예언서의 부록 정도에 지나지 않기에 그 중요성에 부각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이와 같은 오바디야서의 평가절하의 시각에서 벗어나 오바디야서에 나타난 그 구조와 신학을 개론적인 입장에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2.. 본  론




2.1 저자 문제


오바디야서는 그의 이름 외에는 오바디야 예언자에 대해 어떠한 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마소라 Text(이하 MT)에는 הꖷꕎꔨ꘢ 즉 ‘야훼의 종’이라는 뜻을 지닌다. 그러므로 이 이름은 Bewer가 지적하듯이 예언자 오바디야라는 고유명사로 볼 수도 있으며, 또는 ‘야훼의 종’이라는 의미 그대로 상징적 명칭일 수도 있다.1) 그러나 MT의 발음으로 볼 때 오바디야라는 이름은 구약 시대에 잘 알려진 이름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13명의 다른 오바디야들이 다윗 시대이래 유배 이후의 시기까지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윗의 조부를 포함해 다른 여섯 곳에 나오는Obed라는 이름도 Obadiah의 애칭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Obadiah라는 이름은 상징적이거나 유비적인 이름이 아닌 일반적인 고유명사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2)


바빌로니아 탈무드(Sanhedrin 39b)에는 오바디야의 저자가 아합 왕의 궁정 대신인 오바디야(1열왕 18,3-16)와 동일시된다. 이러한 동일시는 예로니무스 교부에 의해서도 언급되는데, 이는 오바디야의 연대를 9c로 보는 학자들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오바디야서의 내용이 유배 시기를 암시하는 만큼 궁정 대신인 오바디야와 동일인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


Koch는 오바디야가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 바빌론에 잡혀가지 않고 고국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위해 탄식 의식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한 제의 예언자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3) 그리고 Bewer는 오바디야서의 내용과 문체를 통해 나타나는 오바디야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우리는 그가 사물을 강력히 연결시키는 방법이라든가 그의 생생한 사실 묘사, 분명한 그림들에 대한 그의 기호, 그의 성급한 감탄, 분노와 슬픔으로 점철된 그의 강력한 경고 등이 놀랍도록 생생한 상상력에 의해 불타고 있는 점으로 보아 저자가 예언적 훈련과 경험을 쌓은 강력하고도 정력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음을 알게 된다.”4)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언자 오바디야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2.2 정경상의 위치


오바디야서는 히브리 Text에서 아모스에 나오는 열 두 두루마리들 중의 하나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순서로 편집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분명하지 않다. 편집자가 이런 순서로 배열한 이유가 에돔을 통박하기 위해서인지,5) 아니면 야훼의 날에 대한 교훈을 주기 위해서인지는6) 확실히 밝힐 수가 없지만, 아마도 아모 9,12에서 에돔이 언급되어 있는 사실이 오바디야서가 배열상으로 그 다음에 오게 된 이유라 여겨진다. LXX에서는 오바디야가 요엘 다음에 편집되어 있는데, 아마도 이것은 그 두 책들 가운데서 나타나는 여러 구절들이 서로 밀접히 관련되어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히브리 성서와 LXX에는 오바디야서 뒤에 요나서가 편집되어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암시 이상의 설명을 할 수는 없다. 이 두 책들 사이의 가장 밀접한 관련은 오바 1b의 “사자가 열국 중에 보내심을 받고”란 말씀과 요나가 열방들 중의 한 나라에 사자가 되어 말씀을 전하러 갔던 설명에 있다고 본다.




2.3 단일성


오바디야서가 매우 짧은 책이기 때문에, 이 책이 단일성을 이루고 있다는 논리적 가정에 도달하기 쉽다. 그러나 내용을 분석해 보거나 여러 학자들의 다양한 구분에 근거해 볼 때, 오히려 그 반대의 상황에 직면함을 깨닫게 된다. 먼저 여러 학자들의 해석을 살펴보고자 한다.


Eichhorn(1824)은 1-16절을 유배 시기의 것으로, 그리고 17-21절을 Alexander Jannaeus(BC 106-80년) 시대에 나온 부록으로 보아 이 책의 단일성에 최초로 이의의 제기하였다. 그 이후 오바디야서는 단일성을 주장하는 견해와 세 부분 이상으로 구분하는 견해, 그리고 통상적으로 양분하는 견해로 집약될 수 있다.


a. Lucien Gautier는 비록 후대에 가서 사소한 재편집 작업이 있기는 했지만, 대체로 보아 오바디야서는 근본적으로 하나의 단일성을 갖고 있으며, BC 6세기에 기록된 것으로 보고 있다. H.H.Rowley(1950)는 이 책을 팔레스틴에 살고 있던 유배 시기 시대의 예언자가 기록한 하나의 통일된 기록으로 보려 했다. 그리고 Adolphe Lods(1950)는 오바디야서가 유배 시기 이후의 예언으로 대략 BC 4세기에 쓰여졌으며 저자는 예레 49장에 나오는 에돔에 관한 유배 시기 이전의 신탁 말씀을 이용하여 채택한 것으로 주장한다. John A.Thompson(1956)도 저자가 1-9절에 나온 초기의 예언을 이용했다고 인정하면서 이 책의 단일성을 지지하고 있다. 이 밖에 이 책의 단일성을 옹호하는 학자들에는 G.W.Anderson, Theis, Allen, Harrison 등이 있다.7)


b. Ewald(1868)는 1-10절을 예루살렘의 이사야와 同 시대로, 15-18절을 보다 초기의 예언으로, 그리고 11-14.19-21절을 유배 시기의 예언자가 보다 초기의 두 구절에 자신의 글을 결합시킨 첨가물로 보았다.8) Barton(1905)은 1-6절을 유배 이전의 오바디야의 예언으로, 7-15절을 유배 시기 초기의 또 다른 오바디야의 예언으로, 그리고 16-21절을 마카베오 시대로부터 나온 첨가물이라고 설명하였다. J.Bewer(1912)는 1-4절이 에돔을 공격하는 유배 이전의 예언이고, 5-14.15b는 나바테아인들의 에돔 침략을 초기 예언의 결과로 해석하기 위해 BC 5세기 초에 오바디야가 기록해 놓은 글이며, 15a.16-21절은 약 한 세기 경이 지난 뒤에 에돔에 대한 심판을 “야훼의 날”과 연결시킨 데서 나온 첨가물로 해석하였다.9) 이러한 단일성에 대한 연구에 있어 Curt Kuhl(1960)은 좀 더 세분하여 오바 1-9절(예레 49,7-22)에 나오는 에돔에 대한 외국 신탁 말씀의 내용을 에돔 사람들이 유다로부터 자유를 쟁취했던 유다의 여호람 왕 시대(BC 849-842년)의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는 10-14.15b을 BC 587년 직후의 것으로 본다. 그리고 15a.16-18절이 기록된 부분은 유배 시기 이후의 것으로 요엘과 관련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19-21절은 보다 후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10)


c. 가장 보편적인 구분은 두 부분으로 나누는 것이다. 이런 구분은 Wellhausen(1892)이 1-14.15b을 말라기의 뒤를 이어 등장한 유배 시기 이후의 예언자 오바디야의 예언이라고 설명하고, 15a.16-21절은 후대의 첨가물이라고 간주한데서 시작된 듯하다.11) Lanchester(1918)는 1-7.10-14절이 BC 587년 직후에 기록되었으며(그러나 1-6절은 초기의 예언에서 나온 것으로 봄), 8.9.15-21절은 대체로 유배 시기에, 그러나 앞의 구절보다는 늦게 기록되었다고 주장하였다.12) A.Weiser (1949)는 1-14.15b이 BC 587년 이후 시기로부터 나온 동질적인 내용의 말씀이며, 15a.16-21절은 전자와 같은 상황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고 결론지었으나, 그는 또 다른 저자를 가정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였다.13) 이러한 견해들은 Eisssfeldt, Henshaw, J.M.Meyers, Wolff 와 같은 학자들에 의해 유사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14)  


d. 예레미야서와의 연관성: 문헌상 오바 1-9절과 예레 49,7-16 간에 어떤 연관이 있다는 명백한 증거들이 있다. 그 연관성을 설명하기 위해 세가지 이론이 제시된다. 첫째, 예레미야가 오바디야로부터 표절한 것이라는 주장으로 이는 9세기의 기록임을 근거로 한다. 이 주장은 예레 49,7-16이 예레미야서 내에서 표현상의 이질적 변화를 보여준다는 사실에 의해 지지받는다. 둘째, 오바디야가 예레미야로부터 빌어온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연역적인 이유로 주장되어 오는 듯하다. 즉 오바디야의 사건들이 BC 587년의 일을 언급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으며, 그러므로 오바디야가 예레미야보다 후대의 예언자라는 것이다. Bewer는 1-4절이 예레미야서를 인용한 것이며 거기에 약간의 해석과 의역이 덧붙여진 것이라고 믿는다.15) 세째, 두개의 본문이 모두 더 오랜 예언 전승을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Wolff, Allen, Stuart 등은 오바디야서가 초기 반에돔에 대한 구전 예언적 전승에 의존하고 있다고 이 주장을 옹호한다.16) 


e. 이와 같은 단일성에 관한 천차만별의 주장들을 통해서 우리는 분명한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인지하며 다음의 종합적인 입장을 상정해 보고자 한다. 먼저 1-14절은 논리적으로 하나의 단일성을 이루고 있다고 본다. Wolff의 주장대로 저자는 초기 구전 예언적 전승에 의존하여 에돔 저주의 신탁을 자신의 예언적 메시지 안에 통합시켰을 것이다. 여기서 이 1-14절의 통합시기를 예루살렘 멸망 직후, 즉 유배 시기 이전으로 보는 것이 적당하다.17) 15-21절에서는 “에돔이 저주받을지어다”라는 말로부터 “모든 열방들, 그리고 특히 에돔이 저주받을 것이며, 반면에 유다가 복받을지어다”라는 말로 강조점이 바뀌고 있다. 여기서는 유다와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 대한 재앙 및 야훼의 날이 그 주제를 이루고 있는데, 유다와 이스라엘은 다시 회복되어 확장될 것이며,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이 부분은 하나의 단일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19-21절은 후대의 삽입으로 생각된다.




2.4 저작 연대


오바디야의 연대는 단지 11-14절이 이스라엘 역사의 구체적인 한 상황에 연관될 때에 결정할 수 있다. 만약 그 사건이 바빌론 유배 시기 이전이었다면 이 책의 연대는 그 사건 바로 직후가 되고, 이와 달리 그 사건들이 BC 587년의 사건들이라면 바빌론 유배 시기나 그 이후가 된다. 그러나 이 연관성을 언급하기 앞서, 보수적 경향의 학자들은 11-14절의 사건들을 여호람 통치 시대하의 블레셋인과 아랍인의 예루살렘 침략(BC 844년경: 2역대 21,16 이하; 2열왕 8,20)과 동일시한다.18) 이 연대를 지지하는 몇가지 논점은 다음과 같다. 즉 1) 이 책의 기술이 BC 587년 대재앙의 비극이었던 성전의 파괴에 대하여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2) 아람어 표현들이 없는 것으로 보아 6세기라기보다 9세기의 기록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3) 도시의 탈환에 대한 암시가 있다. 4) 8세기의 예언자 아모스가 질책한 것과 같은 죄들을 질책하고 있다. 한편 이보다 후기의 연대(BC 587년 이후)를 주장하는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1) 11-14절의 사건들이 예루살렘의 파괴에 가장 자연스럽게 들어 맞는다. 2) 에돔에 대한 심한 적개심이 이 시대에 만연해 있었다(애가 4,21; 에제 25,12-14; 35,1-15; 시편 137,7). 3) 여호람 시대에 블레셋의 침략은 덜 중요한 문제에 속했다. 4) 에브라임과 사마리아의 점유에 관한 언급은 이스라엘이 존속해 있던 때인 전기 연대보다 후기연대에 더 알맞다. 5) 오바디야와 예레미야가 함께 더 오래된 자료를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있다.19)



2.5 배경: 에돔의 역사


야곱이 이스라엘과 동일시되었듯이 에사오도 에돔과 동일시된다(창세 36,1). 이 두 형제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 자체의 줄거리를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그 이야기의 많은 부분들은 두 국가의 운명들을 토대로 삼고 있다. 에돔이라고 하는 이름은 에사오의 몸이 붉다는 사실(창세 25,25) 또는 에사오가 자신의 장자권과 농담삼아 바꾸어버린 팥죽이 붉은 색이었다는 사실(창세 25,30)에서 유래된 것으로 성서 상에서 설명된다. 이스라엘의 남쪽 경계선은 할락산에 의하여 구분되어졌는데 이 산은 세일이 기준이 된 에돔 족속의 경계선과 맞닿아 있었다(여호 11,17; 12,7). 따라서 야곱은 ‘매끈매끈한’(קꗚꖎ)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에사오는 ‘털이 많은’(רꘟꙴ)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창세 27,11). 이사악이 에사오에게 내린 축복(창세 27,39-40)은 에돔이 잠시 유다에 복종하였다가 후에 다시 독립하게 되는 역사적 사실을 예고하고 있다.


열왕기 시대에 에돔과 유다가 서로 항상 적대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유다의 거의 모든 예언자들이 에돔 족속에 대하여 적대적이라는 사실이 놀라운 것은 못된다. 아모스는 에돔 족속이 포로를 노예화시키고 전쟁에서 만행을 저지른다고 비난하였다. 특히 오바디야서는 전체 내용을 에돔의 운명에 대한 예언에 할애하고 있는데 이와 유사한 구절들은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시편 137,7; 이사 11,14; 34,5-17; 예레 49,7-22; 에제 35장; 말라 1,2-4). 반면 스바니야와 즈가리야는 그들이 예언한 국가들 속에 에돔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신명기의 율법은 에돔 족속을 공동체에 받아들이는 데 있어 상당히 관대하다(신명 23,8). 그리고 욥기의 저자는 민족적 감정을 초월하여, 유대인들이 아니라 에돔 사람들을 영웅 및 기타 다른 주인공들로 등장시키고 있다.20)


이와 같이 성서 전체로 볼 때 에돔에 대한 이스라엘의 미움은 그 뿌리가 깊다. 통일 왕국시대로부터 에돔을 지배하는 것은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불변하는 정책이었다. 아카바만에 있는 항구인 에시온-게벨로부터 온 상인들이 에돔 지역을 통과했으며 따라서 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였다(2사무 8,13-14; 1열왕 11,14-17; 2열왕 14,22; 16,5-6; 2역대 20장 21,8-10). BC 587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되었을 때, 에돔은 유다의 곤경을 이용하였고 유다의 운명을 기뻐하였으며(애가 4,21) 유다에 대하여 보복하였으며(에제 25,12) 바빌론과 연합하여 유다를 파괴시켰으며 네겝을 점유하였다(에제 35,10). 오바 1,11-14에 나오는 에돔의 행위 묘사는 모든 반에돔적인 신탁들 중에서도 가장 명확하여 일반적으로 BC 587년 이후의 상황을 반영한다고 여겨진다.21)




2.6 문학적 형태


오바디야는 1-18절에 있어서는 시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19-21절은 산문의 성격을 띤다. 특히 1-18절의 시적 구조에 있어 3행 聯句(triplets)가 빈번히 사용된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그리고 오바디야서의 문학 유형은 ‘민족에 대한 신탁’(the national oracle)이다.22) 구약의 이방 민족에 대한 예언 신탁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1) 적대 국가에 대한 선언(오바 1,1; 참조: 이사19,1; 예레 49,1; 에제 28,21), 2) 파멸이 오리라는 적대 국가에 대한 경고(오바 1,2-18), 3) 야훼의 결정적인 개입에 대한 언급과 적대 국가에 대한 형벌(이사 19장; 예레 49장; 에제 28,23-26), 4) 적대 국가와 대비된 이스라엘 상승에 대한 예언(오바 1,17-21; 참조: 이사 19,17.24-25; 예레 49,3; 에제 28,24-26). 오바디야서에 있어 ‘보복 반응’은 민족에 대한 예언 신탁을 특징짓는다. 오바 1,7-8.11과 특히 15절은 요엘 4,4-8; 예레51,49과 더불어 이 ‘보복 반응’을 드러낸다.




2.7 구조와 내용


Muilenburg는 내용적인 면에서 오바디야의 구조를 다음과 같이 상세히 구분한다.23)




1. 표제: 에돔에 관한 오바디야의 환상(1a)


2. 무아지경의 소식(1b)


3. 에돔의 임박한 멸망과 그 멸망의 정당성(2-14)


  1) 에돔에 대한 신적인 심판(2-10)


   ① 낮아진 에돔의 교만(2-4)


   ② 멸망, 약탈, 포기(5-7)


   ③ 에돔의 수치의 날(8-10)


  2) 에돔의 반역의 날(11-14.15b)


   ① 예루살렘 멸망 때의 에돔의 무관심(11)


   ② 유다의 고통에 대한 에돔의 악한 기쁨(12)


   ③ 에돔의 예루살렘 침입(13)


   ④ 에돔의 바빌론 원조(14)


   ⑤ 심판(15b)


4. 야훼의 날(15a.16-21)


  1) 운명의 역전(15a.16-18)


  2) 다시 소유한 땅들(19-21)




사실 오바디야서는 총 21절의 짧은 구절로 이루어졌으며, 또한 그 내용도 단일성에 근거하여 일관된 주제를 지니고 있으므로 이 본문의 구조를 상세히 분석한다는 것이 별의미 없는 것일 지도 모른다. Wolff의 견해대로 오바디야서를 크게 두 부분, 즉 에돔의 범죄(1,1-14.15b)와 시온산에서의 구원(15a.16-21)으로 구분하는 것이 무난하다.




2.8 오바디야의 신학


2.8.1 하느님의 정의


우리는 오바디야서에서 이웃 에돔에 대한 유다의 강한 복수심과 저주가 그 근저에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5b에서 “네가 한 대로 너도 받고 그 보복이 네 머리 위헤 떨어지리라”는 정의의 응보 사상이 강하게 나타나 있음을 발견한다. 한편 Newsome은 15b를 가리켜 ‘복수에 대한 갈증’이라고 표현하며 에돔이 예루살렘에 행한 못된 짓 때문에 야훼가 에돔을 멸망시킬 것을 오바디야가 선포하고 있다고 말한다.24)


그러나 신학적인 측면에서 오바디야 예언서가 정경의 하나로 인정됨을 볼 때 이 예언을 단지 ‘에돔에 대한 복수와 유다 민족주의의 재건’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기에는 편협된 견해라 생각된다. 이 예언에는 하느님의 정의, 교만한 자의 굴욕, 시온에 대한 정열적인 사랑이 내재되어 있다.25) Fohrer도 오바디야의 신학은 종교적 민족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윤리적 진실성과 하느님의 보응 원칙에 대한 희망에 있다고 본다.26)


이러한 보응 원칙의 출발점은 하느님의 말씀에 있다. 에돔에 대한 예언적 신탁은 먼저 하느님의 말씀으로 시작한다(2-4절). 어떠한 중재없이 하느님의 말씀이 일인칭 문체로 표현되며, 하느님이 주어로 전면에 부각된다. 모든 위협은 하느님이 주어라는 사실에서부터 이해되어야 하며 그분이 주도권을 쥐고 계심을 인지해야 한다. 여기서 하느님의 위협의 근거는 에돔의 자만심에 있다. 자만심은 자기 이외의 모든 것을 배타하며, 하느님과의 관계도 단절시킨다. 에돔은 높은 산과 깊은 바위 틈에서 스스로 안전하다고 믿는다(3절). 이들은 어떤 힘도 자신을 쓰러뜨릴 수 없다는 자만에 하느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배타적 자만심에서 기인하는 죄악의 문제는 인류 공동체에 있어서 풀어야할 과제요 또한 짐이었다. 더욱이 유배 시기를 경험한 약소민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강자의 논리는 그들에게 뼈아픈 과거를 가져다 주었다. 이러한 국가의 비극적 상황에서 오바디야에게 내린 예언의 계시는 정당한 복수와 평화의 날을 희구하는 고통을 당한 모든 이들에게 큰 힘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오바디야 예언자는 전반부 마지막 구절에서 보응 원칙을 제시하며 앞의 에돔에 대한 고발과 심판 예언을 통해 하느님의 정의가 구현됨을 결론짓는다. 그러나 이 결론은 후반부로 이어지는데 15a의 야훼의 날에서 다시 부각된다.


   


2.8.2 야훼의 날


후반부의 신탁은 이제 유다를 향해 선포되며 유다 백성에 대해 이미 가해졌던 심판을 전제한다. 이 심판은 유다가 마셔야 했던 ‘야훼 분노의 잔’27)이란 표상으로 언급된다. 16절의 말씀은 야훼의 날이라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모든 민족의 멸망을 강조한다. 그들도 모든 하느님의 심판을 받아 이스라엘이 걸었던 길을 가야 할 것이며 마침내 “본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다. Coggins는 16절이 야훼 분노의 잔(시편 75,8)을 이방인들이 마시고 완전히 패망하는 것을 뜻하며, 이것은 야훼의 정당한 심판이라고 설명한다. 오바디야는 여기서 이방 민족에게 임할 재앙을 선포하고 그 다음 시온의 미래에 대해 언급한다(1,17). 17절의 시온산에서 살아 남은 자들이란 바빌론의 침공을 피해 살아 남은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Coggins는 이 구절이 유다에 임한 재앙의 엄청난 피해를 암시하며 동시에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가 있만 가까스로 살아 남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즉 여기서 ‘남은 자들의 신학’이 나올 수 있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28)


산문으로 쓰여진 19-21절의 단편은 17절에서 포괄적으로 언급되었던 내용을 보다 상세히 전해고 있다. 땅의 분배와 야훼의 통치라는 내용에서 이 부분이 후대에 확대된 예언자의 예언임을 알 수 있다. 아모스의 마지막 부분이 이스라엘의 희망을 예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바디야의 마지막 절도 유다의 구원을 선포하고 있다. 이 구원의 선포는 시편 22,28과 유사한 점으로 보아 야훼의 왕권을 선포하는 예루살렘 제의와의 강한 연대성을 시사한다.29) 에돔의 형벌은 유다의 회복을 뜻하게 되며 에돔의 멸망을 가져온 ‘야훼의 날’은 바로 유다 구원의 날이다. 시온산은 성전 예배가 회복됨으로써 거룩한 산이 될 것이며, 그 도성 주민들은 에돔과 다른 민족에게 빼앗긴 땅을 다시 찾게 될 것이다. 오바디야는 유다 동족들에게 새로운 시대의 희망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3. 결론을 대신하여




지금까지 오바디야서에 대해 개론적으로 살펴보았다. 사실 오바디야 예언을 접하면서 거룩한 백성인 이스라엘과 대비된 불결한 민족, 저주받은 민족으로서의 에돔에 대한 예언으로 단순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 내용과 신학을 보다 더 살펴보면서 이 예언서에 나타난 신학적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오바디야의 신학적 메시지를 오늘날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는 우리의 과제로 남겨 놓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볼 때, 오바디야서는 에돔의 죄악과 자만에 대한 하느님 정의의 승리를 선포하고 있으며, 모든 불의를 거부하시는 구원과 해방의 하느님이심을 고백하고 있다. 이와같이 오바디야서는 편협한 민족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는 온 인류가 참다운 정의와 평화의 삶을 구축하고 영위하기를 원하시며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구원의 하느님이심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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