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니,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연중 제2주간 화요일(1/20)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저희의 희망찬 소명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 알렐루야.
    복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3-28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때 함께 가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자르기 시작하자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께 "보십시오, 왜 저 사람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반문하셨다. "너희는 다윗의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렸을 때에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에비아달 대사제 때에 다윗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단에 차려 놓은 빵을 먹고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도 주었다. 그 빵은 사제들밖에는 아무도 먹을 수 없는 빵이 아니었더냐?" 예수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열린 마음으로 사랑을


 

*거룩한 독서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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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니,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주님!
    잠 안오는 밤입니다.
    분노 때문에 그렇습니다.
    타인이 저와 같은 입장을 갖고 제게 상의할때는
    용서와 사랑이 무엇인지 잘도 말하면서
    오늘 자신에게 있어선 인색하게도 그렇게 하질 못했습니다.
    다수인속에 확실치 않은 누군가를 대상에 올려 놓고
    그가 그랬을 것이다 생각하며 미워하고 있었나이다.
    제 마음은 지옥이었고 고통 때문에 머리속마저 마귀들로 가득했습니다.
    입으로는 기도를 하면서 당신을 찾아 감실앞에 서 있지만 제안엔 당신이 없었습니다.
    제가 당신속에 들어가야 하는데…
    당신이 제속으로 당연히 들어와야 한다며 투덜대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제 곁에 머물러 계시는데도 말입니다.
    알면서…
    정말 알면서…
    당신의 따스한 손길을 거부했습니다.

    전,사랑의 결여로
    용서의 결여로
    자비의 결여로
    마음에 문을 닫고 당신을 맞아들이지 않았나이다.

    오늘…
    제가 만든 규범과 법에 따라
    기도와 미사,그리고 활동 또한 열심히 했나이다.
    그러나 마음속엔 마귀를 품은체 안 그런척하며 오늘을 보냈습니다.
    저는 율법주의자 였습니다.

    주님!!
    저의 주님…
    복음 말씀을 접한 지금
    이렇게 누우치는 마음 돌아보사 이 죄인에게 자비를 내리소서.
    사랑이신 주님
    제발…
    못된 저를 꼭 잡고 놓지 말아주소서
    잡아주소서.

    .
    .

    211.211.235.33 이 헬레나: 언제나 깊은묵상으로 교만한 저를 회개 할수 있는 마음을 갖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할수 있음이 기쁨이며 저에게는 축복입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01/20-04:19]

  2. user#0 님의 말:

    주님!
    잠 안오는 밤입니다.
    분노 때문에 그렇습니다.
    타인이 저와 같은 입장을 갖고 제게 상의할때는
    용서와 사랑이 무엇인지 잘도 말하면서
    오늘 자신에게 있어선 인색하게도 그렇게 하질 못했습니다.
    다수인속에 확실치 않은 누군가를 대상에 올려 놓고
    그가 그랬을 것이다 생각하며 미워하고 있었나이다.
    제 마음은 지옥이었고 고통 때문에 머리속마저 마귀들로 가득했습니다.
    입으로는 기도를 하면서 당신을 찾아 감실앞에 서 있지만 제안엔 당신이 없었습니다.
    제가 당신속에 들어가야 하는데…
    당신이 제속으로 당연히 들어와야 한다며 투덜대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제 곁에 머물러 계시는데도 말입니다.
    알면서…
    정말 알면서…
    당신의 따스한 손길을 거부했습니다.

    전,사랑의 결여로
    용서의 결여로
    자비의 결여로
    마음에 문을 닫고 당신을 맞아들이지 않았나이다.

    오늘…
    제가 만든 규범과 법에 따라
    기도와 미사,그리고 활동 또한 열심히 했나이다.
    그러나 마음속엔 마귀를 품은체 안 그런척하며 오늘을 보냈습니다.
    저는 율법주의자 였습니다.

    주님!!
    저의 주님…
    복음 말씀을 접한 지금
    이렇게 누우치는 마음 돌아보사 이 죄인에게 자비를 내리소서.
    사랑이신 주님
    제발…
    못된 저를 꼭 잡고 놓지 말아주소서
    잡아주소서.

    .
    .

    211.211.235.33 이 헬레나: 언제나 깊은묵상으로 교만한 저를 회개 할수 있는 마음을 갖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할수 있음이 기쁨이며 저에게는 축복입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01/20-04:19]

  3. user#0 님의 말:

    주님! 당신을 찬미하도록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가끔 걸려오는 전화중에 00컨설팅인데요~~라며 전화를 받습니다.
    짜증도 나고, 관심도 없다고하고, 돈도 없다고 하고,시간도 없다하고…
    그런데 너무 야속한 느낌도 들고 그 사람들도 전화라도 하고 있어야 덜 눈치가
    보이겠다싶어 한 번은 예~하고 대답했더니 줄줄…
    그런데 그것이 인연이되어 어제는 직접 만났습니다.
    그 분도 같은 믿음을 가지고 계신 분인데 참 열심히 사는 것같아 보였습니다.
    점심때 같이 식사를 하던 친구들이 전화를 받는 저의 모습을 보면서~~야!
    너 참 웃긴다. 누군지도 모르는데… 시간이 아주 남아 도는구먼~~쯔쯧..
    저 엄청 핀잔 듣고 그것도 김치까지 들고 나갔죠.
    그런데 참 묘한 기분이였어요. 설레이기도하고 그 자매님도 저하고 같은 생각
    인지 먼저 물어보더군요. 이런 만남이 처음이라면서…오는중에 참 설레였다면
    서요. 하긴 전화통화만 몇 번 했는데 직접 만난다는것이 약간은 다른 경험을
    한것같았어요.
    그 분이 저에게 왜 만나자고까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인연이 되어
    냉담도 풀고 믿음이 굳건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저에게 그런 인연을 주시고 또 내가 아닌 남을 위해서 기도해주기를 원하신것
    같습니다.
    속으로는 무슨 마음을 가졌던 저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저로 인하여 멀리있던 주님께 다시 가까이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저보다 나이도 많이 어리지만 생활력이 강한 그 자매님을 보면서 저도 다시금
    저를 추스리는 시간이였습니다.
    보여지는 겉모양보다는 속마음을 알아가는것도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지는 시간
    입니다.

    설 연휴에 많이 추워지고 길도 미끄러운데 조심들 하시고 행복한 설날 되시기를…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0^

  4. user#0 님의 말:

    주님! 당신을 찬미하도록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가끔 걸려오는 전화중에 00컨설팅인데요~~라며 전화를 받습니다.
    짜증도 나고, 관심도 없다고하고, 돈도 없다고 하고,시간도 없다하고…
    그런데 너무 야속한 느낌도 들고 그 사람들도 전화라도 하고 있어야 덜 눈치가
    보이겠다싶어 한 번은 예~하고 대답했더니 줄줄…
    그런데 그것이 인연이되어 어제는 직접 만났습니다.
    그 분도 같은 믿음을 가지고 계신 분인데 참 열심히 사는 것같아 보였습니다.
    점심때 같이 식사를 하던 친구들이 전화를 받는 저의 모습을 보면서~~야!
    너 참 웃긴다. 누군지도 모르는데… 시간이 아주 남아 도는구먼~~쯔쯧..
    저 엄청 핀잔 듣고 그것도 김치까지 들고 나갔죠.
    그런데 참 묘한 기분이였어요. 설레이기도하고 그 자매님도 저하고 같은 생각
    인지 먼저 물어보더군요. 이런 만남이 처음이라면서…오는중에 참 설레였다면
    서요. 하긴 전화통화만 몇 번 했는데 직접 만난다는것이 약간은 다른 경험을
    한것같았어요.
    그 분이 저에게 왜 만나자고까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인연이 되어
    냉담도 풀고 믿음이 굳건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저에게 그런 인연을 주시고 또 내가 아닌 남을 위해서 기도해주기를 원하신것
    같습니다.
    속으로는 무슨 마음을 가졌던 저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저로 인하여 멀리있던 주님께 다시 가까이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저보다 나이도 많이 어리지만 생활력이 강한 그 자매님을 보면서 저도 다시금
    저를 추스리는 시간이였습니다.
    보여지는 겉모양보다는 속마음을 알아가는것도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지는 시간
    입니다.

    설 연휴에 많이 추워지고 길도 미끄러운데 조심들 하시고 행복한 설날 되시기를…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0^

  5. user#0 님의 말:

    오소서. 성령이여!

    안식일 날 예수님의 일행이 밀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을 보고
    “당신의 제자들이 왜 안식일에 해서는 안될 일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비난하자 ” 다윗은 적에게 쫒기고 있을 때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제단에 차려진 음식을 자신도 먹고 함께 있던 일행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하신 말씀으로 유다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흠모
    하는 다윗의 예를 들어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하십니다.

    그리고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 하시며 논쟁의 결론을 내리십니다.

    오늘의 이 구절을 묵상하며 저의 삶 안에서도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정작 마음속에 미움이 남아있는 사람을 위해 형식적인 기도를
    바치면서 그 기도하는 정성을 보아 용서해 주실 것이라는 헛된
    망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재단에 제물을 바치기 전에 용서받지 못한 형제가 있으면 먼저
    가서 용서를 청하고 화해하라고 하였거늘 어찌하여 저는 화해
    를 청하기 전에 하기 쉬운 마음에 없는 기도라는 형식을 빌어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주님!
    아무리 생각하고 노력해도 제 힘으론 안 되는 것을 어찌합니까?
    이 시간 제 마음속에 미움으로 남아있는 형제 자매를
    하루에도 몇 번씩 높고 높은 성을 쌓았다 무너뜨렸다 하며 저의
    마음속을 흑탕물로 만드는 형제자매를
    제가 아닌 주님의 이름으로 용서를 청해봅니다.
    저를 유혹하고 마음 안에 마귀로 남아있는 바리사이적 사고방식을
    빼어내고 주님의 사랑으로 채워가게 하소서. 사랑으로 채워주소서.
    아멘.


    내일부터 설 연휴가 시작되는데 사이버 성당에 오시는 모든 형제자매님들
    즐겁고 안전한 설 명절 되시기 바랍니다.

    넘지 못할 산이 있거든

  6. user#0 님의 말:

    오소서. 성령이여!

    안식일 날 예수님의 일행이 밀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을 보고
    “당신의 제자들이 왜 안식일에 해서는 안될 일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비난하자 ” 다윗은 적에게 쫒기고 있을 때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제단에 차려진 음식을 자신도 먹고 함께 있던 일행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하신 말씀으로 유다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흠모
    하는 다윗의 예를 들어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하십니다.

    그리고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 하시며 논쟁의 결론을 내리십니다.

    오늘의 이 구절을 묵상하며 저의 삶 안에서도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정작 마음속에 미움이 남아있는 사람을 위해 형식적인 기도를
    바치면서 그 기도하는 정성을 보아 용서해 주실 것이라는 헛된
    망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재단에 제물을 바치기 전에 용서받지 못한 형제가 있으면 먼저
    가서 용서를 청하고 화해하라고 하였거늘 어찌하여 저는 화해
    를 청하기 전에 하기 쉬운 마음에 없는 기도라는 형식을 빌어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주님!
    아무리 생각하고 노력해도 제 힘으론 안 되는 것을 어찌합니까?
    이 시간 제 마음속에 미움으로 남아있는 형제 자매를
    하루에도 몇 번씩 높고 높은 성을 쌓았다 무너뜨렸다 하며 저의
    마음속을 흑탕물로 만드는 형제자매를
    제가 아닌 주님의 이름으로 용서를 청해봅니다.
    저를 유혹하고 마음 안에 마귀로 남아있는 바리사이적 사고방식을
    빼어내고 주님의 사랑으로 채워가게 하소서. 사랑으로 채워주소서.
    아멘.


    내일부터 설 연휴가 시작되는데 사이버 성당에 오시는 모든 형제자매님들
    즐겁고 안전한 설 명절 되시기 바랍니다.

    넘지 못할 산이 있거든

  7. user#0 님의 말: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방법을 생각해 봅니다. 한주일 동안 열심히 일하고, 하루 쉬는 주일. 그 날을 어떻게 하면 쉬면서, 재충전 하면서, 거룩하게 지낼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주일은 나를 위한 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위해서 준비해 주신 날. 나는 예수님께서 준비해 주신 주일을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23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 때 함께 가던 제자들이 밀이삭을 자르기 시작하자 24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께 “보십시오, 왜 저 사람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안식일에 걸어도 괜찮은 거리는 1392미터)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밀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밀 이삭을 그 자리에서 잘라 먹는 것은 율법이 분명하게 허용하는 일이었으며 예부터 관습으로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이웃집 밭에 서 있는 곡식 이삭을 손으로 잘라 먹는 것은 괜찮지만 이웃집 밭에서 있는 곡식 이삭에 낫을 대면 안 된다”(신명기 23,25). 문제는 평상시 같으면 전혀 문제가 없지만 그 날이 바로 안식일이라는 것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막지 않고 내버려 두셨기 때문에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엄격한 그들의 해석에 따르면 안식일에는 극히 사소한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에는 일정한 거리밖에 걸을 수가 없었고 생활에 필요한 손일만 할 수 있었습니다. 곡식을 따서 비비는 것조차도 금지된 일로 간주되었습니다.

    율법학자들은 안식일에 해서 안 될 일로서 39 조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금지 조항은 파종, 경작, 수확, 밀단을 묶는 것, 밀을 타작하는 것, 한 마리의 짐승이라도 잡아 서는 안 될 것, 또 그것을 죽이는 것, 그 껍질을 벗기는 일, 소금에 저리는 일, 그 가죽을 보존하기 위해 약을 발라 두는 것 등등이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얼마 안 되는 밀 이삭을 자른 것을 수확과 같은 의미로 해석하면서 예수님을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25  예수께서는 이렇게 반문하셨다. “너희는 다윗의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렸을 때에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이야기와 성전에서 일하는 사제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제자들의 행위의 정당성을 이야기 해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최종적인 증명과 결정적인 반박 논증은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한에 대한 믿음이 이미 존재함을 전제하고 계십니다. 메시아의 혼인 잔치가 있을 때는 단식할 아무런 이유가 없듯이 안식일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안식일 율법에 대한 해석과 안식일을 지내는 방법은 모두 주님이신예수님께 예속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에 의존하여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대담하게 안식일을 지냈으며 결국은 주간의 첫째 날로 안식일을 대치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도들에게 물려주신 예수님의 권한에 근거한 것입니다.


    26  에비아달 대사제 때에 다윗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단에 차려 놓은 빵을 먹고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도 주었다. 그 빵은 사제들밖에는 아무도 먹을 수 없는 빵이 아니었더냐?”

    사울로부터 도망을 치고 있을 때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놉에 있는 성막 속에 보관되어 있는 거룩한 빵을 자기와 자기 동료들에게 주게 하였습니다(사무엘 상 21,1-7). 이 빵은 사제들만 먹어야 했습니다. 다윗은 전례적인 규정이 생명을 유지시켜야 하는 의무만큼 중요하다고는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규정을 무시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에게 있어서 안식일에 대한 규정은 제단에 안치되어 있는 빵에 대한 규정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특별한 경우에는 그러한 규정을 어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특별한 상황에 처해 계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니 더욱 당연한 것입니다.


    27  예수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 28  따라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규정이 폐지되었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지만, 안식일 규정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십니다. 안식일 규정보다 더 중요한 의무들이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의무들을 더 촉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으니 성전이나 성전 예배보다는 예수님께 더 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붙들고서 사랑을 고백하지 말고, 눈앞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비싼 카메라를 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카메라가 걱정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도, 외출을 해도, 잠을 자도, 밥을 먹을 때도…, 카메라가 그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카메라를 위해서 있었던 것입니다. 누가 카메라를 빌려 달라면 절대로 빌려 주지 않았습니다. 누구를 찍어 주지도 않고, 그저 가지고 있는 것 그 자체로만 즐겼습니다. 어느 날 그는 굳은 결심을 하고 그것을 남을 주어 버립니다….그날 이후로 그는 평온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가끔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정말 중요한 것처럼 생각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조금만 나 자신을 소홀히 하면 그렇게 바뀌게 됩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주일에 해야 될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2. 주일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8. user#0 님의 말: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방법을 생각해 봅니다. 한주일 동안 열심히 일하고, 하루 쉬는 주일. 그 날을 어떻게 하면 쉬면서, 재충전 하면서, 거룩하게 지낼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주일은 나를 위한 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위해서 준비해 주신 날. 나는 예수님께서 준비해 주신 주일을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23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 때 함께 가던 제자들이 밀이삭을 자르기 시작하자 24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께 “보십시오, 왜 저 사람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안식일에 걸어도 괜찮은 거리는 1392미터)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밀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밀 이삭을 그 자리에서 잘라 먹는 것은 율법이 분명하게 허용하는 일이었으며 예부터 관습으로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이웃집 밭에 서 있는 곡식 이삭을 손으로 잘라 먹는 것은 괜찮지만 이웃집 밭에서 있는 곡식 이삭에 낫을 대면 안 된다”(신명기 23,25). 문제는 평상시 같으면 전혀 문제가 없지만 그 날이 바로 안식일이라는 것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막지 않고 내버려 두셨기 때문에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엄격한 그들의 해석에 따르면 안식일에는 극히 사소한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에는 일정한 거리밖에 걸을 수가 없었고 생활에 필요한 손일만 할 수 있었습니다. 곡식을 따서 비비는 것조차도 금지된 일로 간주되었습니다.

    율법학자들은 안식일에 해서 안 될 일로서 39 조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금지 조항은 파종, 경작, 수확, 밀단을 묶는 것, 밀을 타작하는 것, 한 마리의 짐승이라도 잡아 서는 안 될 것, 또 그것을 죽이는 것, 그 껍질을 벗기는 일, 소금에 저리는 일, 그 가죽을 보존하기 위해 약을 발라 두는 것 등등이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얼마 안 되는 밀 이삭을 자른 것을 수확과 같은 의미로 해석하면서 예수님을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25  예수께서는 이렇게 반문하셨다. “너희는 다윗의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렸을 때에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이야기와 성전에서 일하는 사제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제자들의 행위의 정당성을 이야기 해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최종적인 증명과 결정적인 반박 논증은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한에 대한 믿음이 이미 존재함을 전제하고 계십니다. 메시아의 혼인 잔치가 있을 때는 단식할 아무런 이유가 없듯이 안식일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안식일 율법에 대한 해석과 안식일을 지내는 방법은 모두 주님이신예수님께 예속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에 의존하여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대담하게 안식일을 지냈으며 결국은 주간의 첫째 날로 안식일을 대치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도들에게 물려주신 예수님의 권한에 근거한 것입니다.


    26  에비아달 대사제 때에 다윗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단에 차려 놓은 빵을 먹고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도 주었다. 그 빵은 사제들밖에는 아무도 먹을 수 없는 빵이 아니었더냐?”

    사울로부터 도망을 치고 있을 때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놉에 있는 성막 속에 보관되어 있는 거룩한 빵을 자기와 자기 동료들에게 주게 하였습니다(사무엘 상 21,1-7). 이 빵은 사제들만 먹어야 했습니다. 다윗은 전례적인 규정이 생명을 유지시켜야 하는 의무만큼 중요하다고는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규정을 무시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에게 있어서 안식일에 대한 규정은 제단에 안치되어 있는 빵에 대한 규정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특별한 경우에는 그러한 규정을 어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특별한 상황에 처해 계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니 더욱 당연한 것입니다.


    27  예수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 28  따라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규정이 폐지되었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지만, 안식일 규정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십니다. 안식일 규정보다 더 중요한 의무들이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의무들을 더 촉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으니 성전이나 성전 예배보다는 예수님께 더 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붙들고서 사랑을 고백하지 말고, 눈앞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비싼 카메라를 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카메라가 걱정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도, 외출을 해도, 잠을 자도, 밥을 먹을 때도…, 카메라가 그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카메라를 위해서 있었던 것입니다. 누가 카메라를 빌려 달라면 절대로 빌려 주지 않았습니다. 누구를 찍어 주지도 않고, 그저 가지고 있는 것 그 자체로만 즐겼습니다. 어느 날 그는 굳은 결심을 하고 그것을 남을 주어 버립니다….그날 이후로 그는 평온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가끔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정말 중요한 것처럼 생각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조금만 나 자신을 소홀히 하면 그렇게 바뀌게 됩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주일에 해야 될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2. 주일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9. user#0 님의 말: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

    어제 복음에 이어 오늘 복음말씀에서도
    본질을 잊고 형식에 치우친 신앙생활을 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예수님의 대화가 등장합니다.

    바리사이파 사람이나 우리들이나 가지고 있는 신앙에서 지켜야 하는
    계율이나 법규를 충실히 지켜나갈때
    신앙인으로서 훨씬 성숙해 질 수 있는 길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 형식이나 규율들이 신앙의 주체가 되시는 하느님은 아닙니다.
    다만 하느님을 좀더 준비된 마음과 몸으로 섬기려는 한 방법일 뿐입니다.
    하느님을 섬김다면 하느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을 알고 그것을
    행하려고 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이며 제대로된 신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느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계명에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시는
    본뜻은?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분의 본성인 사랑을 실행으로 옮기라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무리가 없는 것이아닌가? 하는생각입니다.

    주일 미사를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일주일간 우리의 마음가는 대로 살았다면
    주일 하루만이라도 마음과 몸을 절제하고
    자신을 성찰하고 이웃에 관심을 가지는 날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결엔가 본의미는 퇴색하고
    단지 미사 참례를 궐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그저 의무적인 참례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성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사절차에도 많은 형식이 따름니다.
    진행되는 절차에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저 사제께서 행하시는 대로 무심코 따를뿐
    미사중의 일련의 과정에 대한 의미는 마음에 담아
    정중하고 엄숙하게 참례하지 않고 있습니다.
    좀더 미사형식에 대한 상식을 넓혀 의미를 이해하고 본뜻을 살펴서
    충실한 미사참례가 되도록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10. user#0 님의 말: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

    어제 복음에 이어 오늘 복음말씀에서도
    본질을 잊고 형식에 치우친 신앙생활을 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예수님의 대화가 등장합니다.

    바리사이파 사람이나 우리들이나 가지고 있는 신앙에서 지켜야 하는
    계율이나 법규를 충실히 지켜나갈때
    신앙인으로서 훨씬 성숙해 질 수 있는 길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 형식이나 규율들이 신앙의 주체가 되시는 하느님은 아닙니다.
    다만 하느님을 좀더 준비된 마음과 몸으로 섬기려는 한 방법일 뿐입니다.
    하느님을 섬김다면 하느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을 알고 그것을
    행하려고 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이며 제대로된 신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느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계명에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시는
    본뜻은?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분의 본성인 사랑을 실행으로 옮기라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무리가 없는 것이아닌가? 하는생각입니다.

    주일 미사를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일주일간 우리의 마음가는 대로 살았다면
    주일 하루만이라도 마음과 몸을 절제하고
    자신을 성찰하고 이웃에 관심을 가지는 날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결엔가 본의미는 퇴색하고
    단지 미사 참례를 궐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그저 의무적인 참례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성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사절차에도 많은 형식이 따름니다.
    진행되는 절차에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저 사제께서 행하시는 대로 무심코 따를뿐
    미사중의 일련의 과정에 대한 의미는 마음에 담아
    정중하고 엄숙하게 참례하지 않고 있습니다.
    좀더 미사형식에 대한 상식을 넓혀 의미를 이해하고 본뜻을 살펴서
    충실한 미사참례가 되도록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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