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 베푼 기적들을 띠로와 시돈에서 보였더라면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가장 많이 행하신 동네에서 회개하지 않으시므로 동네들을 꾸짖으십니다. 이 꾸짖으심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20 예수께서 기적을 가장 많이 행하신 동네에서 회개하지 않으므로 그 동네들을 꾸짖으셨다.
21 “코라진아, 너는 화를 입으리라. 베싸이다야, 너도 화를 입으리라. 너희에게 베푼 기적들을 띠로와 시돈에서 보였더라면 그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재를 머리에 들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특혜를 받고 있던 코라진, 베싸이다, 가파르나움 등의 도시들을, 옛날부터 저주받은 도시의 대표로 여겨지는 띠로와 시돈과 소돔에 대조시키십니다. “화를 입으리라”는 말씀은 “너희는 행복하다”는 말씀과 정 반대의 말씀입니다. 팔레스티나의 북쪽 지방에 있는 띠로와 시돈이라는 이방인 도시들은 교만과 사치스러운 부의 표본으로 예언서에 잘 나오는 도시들입니다. 음탕하고 악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는 지구상에서 지워져 버렸습니다. 만일 이방인 도시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더라면 틀림없이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소돔도 예수님의 위대한 능력을 목격했더라면 틀림없이 오늘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코라진은 델 훔으로부터 북쪽 4키로 지점에 있는 킬벳트 게라제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지금도 유다인회당의 유적이 있습니다.
베싸이다는 요르단강이 티베리아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지점에서 동쪽 2키로, 현재의 엘 아라디에 있었다고 합니다. 필립보 분국왕이 이와 똑같은 이름의 도시를 세워 아우구스토 황제의 공주 유리아의 이름을 기념하여 베싸이다 유리아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 유적은 엘 아라디의 북쪽 2키로, 에도 텔이라는 곳에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심판 날에 분명히 밝혀질 것입니다. 은총은 모든 사람들에게, 도시 전체에 주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민 전체가 하나의 공동운명체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고 계십니다. 물론 인격적인 만남에 있어서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것은 항상 개인이며, 그가 신앙에 이르는 것도 개인으로서 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서로를 위해 있는 것이며 서로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22 그러니 잘 들어라. 심판 날에 띠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오히려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다. 23 너 가파르나움아! 네가 하늘에 오를 성싶으냐?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베푼 기적들을 소돔에서 보였더라면 그 도시는 오늘까지 남아 있었을 것이다. 24 그러니 잘 들어라.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오히려 더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다.”
가파르나눔의 회당과 율법학자의 학교는 상당히 유명했습니다. 더욱 이 사회 출신들이, 유난히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학교에서 수업하지 않은 목수의 아들이 무엇을 알겠는가? 그들은 교만에 가득 차서 예수님의 업적을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더라면 소돔도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파르나움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실로 정식적 소경의 눈을 뜨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멸망에 대한 예언은 적중하여 현대의 고고학자가 이 도읍의 폐허는 물론, 일찍이 존재하고 있던 장소조차 알아내지 못할 만큼 멸망하였습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우리가 저지르기 쉬운 죄 중의 하나가 바로 불신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어느 순간 교만에 가득 차서 하느님께 반항을 하게 되고, 그분을 믿고 따르기 보다는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마음. 그래서 결국 하느님을 거부하게 되는, 아니 하느님을 거부하고 있다는 그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내 마음은 어떻습니까?
2. 하느님께서 나에게 해 주신 것들을 기억해 보면서 그때의 기쁨을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