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와 개신교가 성경의 권수에서 차이가 생기는 이유

천주교와 개신교가 성경의 권수에서 차이가 생기는 이유

신약성경은 천주교나 개신교 모두 27권으로 동일하며, 또한 그 분류도 복음4, 행전1, 편지 21, 묵시록 1로 똑같지만, 구약은 유대교와 개신교 및 천주교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유다교의 구약성경의 범위는 기원 후 90년에 얌니아(Jamnia)에서 열린 유대교 종교회의에서 결정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히브리어로 되어있고 팔레스티나 공동체가 쓰고 있던 성경만을 정경으로 받아들였으며, 개신교도 이것을 받아들여 다른 것은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고 외경(外經)이라고 하였습니다.

얌니아에서 열린 유대교 종교회의는 그리스도교의 탄생으로 대두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함에서였습니다. 일곱 권을 왜 성경 목록에서 삭제 시켰는지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아볼 길이 없으나, 당시 유대교와 가톨릭 교회와의 관계를 비교해 볼 때 다음과 같이 추측할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이 이미 희랍어 성경 “70인역을 성경으로 받아들여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히브리어만이 하느님 백성의 언어라는 아집과 아울러 새로운 종교인 가톨릭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그 의도가 자신들에게 비교적 생소한 일곱 권의 저서를 성경 목록에서 제외시키는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으리라는 추측입니다.

 

팔레스티나 이외의 지역, 특히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던 공동체, 즉 다른 나라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 공동체를 디아스포라 공동체라고 합니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주변의 희랍문화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고 있었고, 희랍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들은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진취적이며 활달했던 공동체였고 70인역을 고유 성경으로 채택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예루살렘 멸망(70)을 전후로 많은 신자들이 고국을 떠나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나섰습니다. 자연히 이들 중 대부분은 동족인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접촉을 갖게 되었으며, 희랍어를 사용하게 될 뿐만 아니라(그래서 신약성경은 희랍어로 저술됨) 이 공동체가 사용하고 있던 희랍어 성경 “70인역을 구약성경으로 받아들여 사용하게 되었습니다(신약성경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구약성경 구절은 거의 70인역에서 인용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입증해 주고 있다). 따라서 초대 가톨릭 교회가 70인역을 아무런 이의 없이 구약성경으로 받아들인 시점은 대략 70년 직후로 보아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어로 쓰여졌고, 디아스포라에서 쓰이던 7개의 성경도 정경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1517년 종교개혁을 단행한 독일의 마르틴 루터는 신구약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게 됩니다. 이때 그는 가톨릭의 공인 성경이었던 라틴어 번역본 불가따(Vulgata)를 원본으로 번역하지 않고 구약성경의 경우 히브리어 성경에서 직접 번역하게 됩니다. 여기서 마르틴 루터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일곱 권의 성경을 삭제하고서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39권만을 프로테스탄트 성경으로 채택, 사용토록 했습니다. 이러한 종교개혁으로 야기된 각종 문제에 대해서 가톨릭교회는 1546년 트리엔트 공의희를 소집하고서 구약성경에 관한 한 46권 정경성을 재천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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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와 개신교가 성경의 권수에서 차이가 생기는 이유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천주교와 개신교가 성경의 권수에서 차이가 생기는 이유

    신약성경은 천주교나 개신교 모두 27권으로 동일하며, 또한 그 분류도 복음4, 행전1, 편지 21, 묵시록 1로 똑같지만, 구약은 유대교와 개신교 및 천주교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유다교의 구약성경의 범위는 기원 후 90년에 얌니아(Jamnia)에서 열린 유대교 종교회의에서 결정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히브리어로 되어있고 팔레스티나 공동체가 쓰고 있던 성경만을 정경으로 받아들였으며, 개신교도 이것을 받아들여 다른 것은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고 외경(外經)이라고 하였습니다.

    얌니아에서 열린 유대교 종교회의는 그리스도교의 탄생으로 대두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함에서였습니다. 일곱 권을 왜 성경 목록에서 삭제 시켰는지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아볼 길이 없으나, 당시 유대교와 가톨릭 교회와의 관계를 비교해 볼 때 다음과 같이 추측할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이 이미 희랍어 성경 “70인역을 성경으로 받아들여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히브리어만이 하느님 백성의 언어라는 아집과 아울러 새로운 종교인 가톨릭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그 의도가 자신들에게 비교적 생소한 일곱 권의 저서를 성경 목록에서 제외시키는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으리라는 추측입니다.

     

    팔레스티나 이외의 지역, 특히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던 공동체, 즉 다른 나라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 공동체를 디아스포라 공동체라고 합니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주변의 희랍문화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고 있었고, 희랍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들은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진취적이며 활달했던 공동체였고 70인역을 고유 성경으로 채택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예루살렘 멸망(70)을 전후로 많은 신자들이 고국을 떠나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나섰습니다. 자연히 이들 중 대부분은 동족인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접촉을 갖게 되었으며, 희랍어를 사용하게 될 뿐만 아니라(그래서 신약성경은 희랍어로 저술됨) 이 공동체가 사용하고 있던 희랍어 성경 “70인역을 구약성경으로 받아들여 사용하게 되었습니다(신약성경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구약성경 구절은 거의 70인역에서 인용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입증해 주고 있다). 따라서 초대 가톨릭 교회가 70인역을 아무런 이의 없이 구약성경으로 받아들인 시점은 대략 70년 직후로 보아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어로 쓰여졌고, 디아스포라에서 쓰이던 7개의 성경도 정경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1517년 종교개혁을 단행한 독일의 마르틴 루터는 신구약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게 됩니다. 이때 그는 가톨릭의 공인 성경이었던 라틴어 번역본 불가따(Vulgata)를 원본으로 번역하지 않고 구약성경의 경우 히브리어 성경에서 직접 번역하게 됩니다. 여기서 마르틴 루터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일곱 권의 성경을 삭제하고서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39권만을 프로테스탄트 성경으로 채택, 사용토록 했습니다. 이러한 종교개혁으로 야기된 각종 문제에 대해서 가톨릭교회는 1546년 트리엔트 공의희를 소집하고서 구약성경에 관한 한 46권 정경성을 재천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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