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모세의 탄생과 하느님의 이끄심(탈출2,1-10)

2.2. 모세의 탄생과 하느님의 이끄심(탈출2,1-10)

레위 집안의 어떤 남자가 레위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이가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의 아버지는 아므람이고, 어머니는 요케벳입니다.

 

모세의 탄생

이집트가 히브리인의 남아 살해 정책을 펼치자 히브리인 부모들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파라오의 명령을 거부하며 아기를 석 달 동안 숨겨 키웠습니다. 그러나 더 숨겨 둘 수가 없게 되자, 왕골 상자를 가져다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그 안에 아기를 뉘어 강가 갈대 사이에 놓아두었습니다. 아이의 누이 미르얌은 아이를 파라오의 딸에게로 흘러가게 했습니다. 미르얌은 멀찍이 서서 동생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마침 파라오의 딸이 목욕하러 강으로 내려왔다가 갈대 사이에 있는 상자를 보고, 여종 하나를 보내어 그것을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왕골 상자를 열어 보니 아기가 울고 있었습니다. 공주는 그 아기를 불쌍히 여기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아기는 히브리인들의 아이 가운데 하나로구나.”(탈출2,6)

 

이때 아이의 누이가 나서서 제가 가서, 공주님 대신 아기에게 젖을 먹일 히브리인 유모를 하나 불러다 드릴까요?”(탈출2,7)하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이렇게 될 것입니다. “이 아기는 제 동생인데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당신께로 흘러오게 했답니다. 지금 제 동생이 젖을 먹어야 하니 어머니를 모셔 와도 될까요?” 파라오의 딸은 그렇게 하라고 하였고, 아이의 누이는 어머니를 불러왔습니다. 파라오의 딸은 아이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아기를 데려다 나 대신 젖을 먹여 주게. 내가 직접 그대에게 삯을 주겠네.”(탈출2,9)

 

하느님께서는 부모의 간절함을 굽어보셨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세의 어머니는 아들을 살릴 수 있었고, 자신의 품에서 기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가 그렇게 어머니의 품에서 자라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모세는 어머니의 품 안에서 사랑을 받고, 어머니의 신앙을 물려받으며, 올바른 품성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아이가 자라자 어머니는 아이를 파라오의 딸에게 데려갔습니다. 공주는 그 아이를 아들로 삼고,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냈다하면서 그 이름을 모세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이끄심

모세가 파라오의 딸의 양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서 이끄셨기 때문입니다. 파라오의 딸은 모세가 히브리인들의 사내아이라는 것을 알았고, 히브리 사내아이를 살리는 일은 아버지인 파라오의 뜻을 거역하는 것임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그녀가 주님의 은총 안에 머물고 있었기에, 강물에 떠내려 오는 아기를 발견하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고,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히브리 사내아이를 양자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이제 공주의 양자가 된 모세는 이집트 왕실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하느님 구원의 도구가 되기 위하여 다양한 역량을 키우게 될 것입니다.

 

공주의 선택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파라오의 딸은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떠내려 오는 아이가 히브리 사내아이라는 것을.

아버지의 정책 때문에 죽을 운명에 처해졌다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파라오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어린 생명은 물 위를 떠다니다가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

어머니의 품속에서 사랑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그녀는 물위에 떠 있는 애처로운 어린 생명을 바라보았습니다.

측은한 마음이 들은 그녀는

히브리 아이를 물에서 건저 냈고,

아이의 누이가 원하는 대로 아이의 어머니를 유모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자비를 베풀며 아이를 양자로 맞아들였습니다.

 

그녀의 자비는

아버지의 만행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보속일 수도 있지만

하느님의 이끄심에 마음을 열었기에 생겨난 것입니다.

다른 이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며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이기에

이런 마음을 가진 이들은 하느님의 손길에 마음을 연 이들입니다.

모세는 그렇게 그녀의 양자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나병환자였던 그녀가

그 왕골상자에 손을 댄 순간 나병이 나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녀는 복을 끌어당긴 것입니다.

어린 생명을 살리려는 그 가족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비를 베풀었기에

분명 그녀는 하느님의 자비를 입었을 것입니다.

 

아이가 자라자 어머니는 아이를 공주에게 데려갔습니다.

공주는 그 아이를 아들로 삼고,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냈다.” 하면서 그 이름을 모세라 하였습니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파라오의 딸이 그리 했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내 옆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며…,

 

나눔 2: 모세의 누이 미르얌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동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이가 누이며 형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정 안에서 형제자매들이 시기와 질투와 경쟁을 버리고 사랑과 존중과 배려를 할 수 있는 관계는 어떻게 해야 이루어질까요?

 

이집트 왕자 모세

모세는 히브리인이지만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서 이집트 왕실에서 공주의 양자요, 왕자로서 살아가게 됩니다. 공주의 양자라는 것은 고된 노역에 시달리는 히브리 남자 중의 하나가 아니라 이집트 왕실의 최고 권력자 중의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희박하지만 이집트의 파라오가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지니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집트는 문명의 중심지였고, 조직이 잘 정비된 대제국이었으며, 정치, 경제, 군사, , 문화, 건축분야 등에서 큰 능력을 드러내고 있던 나라였습니다. 이집트의 왕자가 된 모세는 이 모든 지혜와 지식들을 당연히 배웠을 것입니다. 그 지식과 지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 수 있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또한 노예를 해방시키려는 지도자는 당연히 완전한 자유를 체험해야 했습니다. 노예 신분의 부모에게서 태어나 평생 노예로 사는 히브리인들은 자유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노예의 운명에서 벗어나 이집트 왕궁에서 그 시대 최고의 문화적 혜택을 누리면서 자유인으로 살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모세를 이끌고 계셨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모세의 자존감을 최대한 높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출애굽의 리더는 통치자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서로 평등한 관계이며, 백성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리더입니다. 섬김의 리더쉽은 자존감이 높아야만 제대로 발휘가 됩니다. 자존감은 어릴 적 환경과 부모의 사랑으로 높아지기에 하느님께서는 친부모의 진실한 사랑과 이집트 왕실에서의 풍요로운 혜택을 받도록 모세를 이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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