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모세가 미디안 땅으로 달아나다(탈출2,11-22)

2.3. 모세가 미디안 땅으로 달아나다(탈출2,11-22)

모세는 이집트의 왕자였지만 히브리인이었습니다. 성년이 된 모세는 늘 자신의 동족에 대한 연민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동포들이 강제 노동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가슴 아파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 품 안에서 자라면서 주님께 대한 신앙과 동포애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모세는 자기 동포들이 있는 데로 나갔다가, 이집트 사람 하나가 자기 동포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이리저리 살펴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 그 이집트인을 때려죽이고서 모래 속에 묻어 감추었습니다. 아마 모세가 그를 죽이지 않았다면 이 히브리인은 이집트인 공사 감독에 의해서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모세가 이집트인을 죽여서 묻은 이튿날 다시 나가서 보니, 히브리 사람 둘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잘못한 사람에게 당신은 왜 동족을 때리시오?”(탈출2,13)하고 말하며 중재를 했습니다. 같은 동족으로서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는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야 하고, 더욱 많은 배려를 해주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싸우는 동족의 모습을 바라본 모세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잘못한 사람에게 한마디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모세를 당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판관으로 세우기라도 했소? 당신은 이집트인을 죽였듯이 나도 죽일 작정이오?”(탈출2,14)

 

모세는 이집트인을 죽일 때, 아무도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모세로부터 도움을 받은 이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세의 일을 동족들에게 이야기했고, 그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생겨났던 것 같습니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역시! 모세가 히브리인이니 당연히 동족을 생각해 주겠지. 그래도 히브리인 중에 이집트의 왕자가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야!”라고 말하면서 모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히브리 사람은 나는 이렇게 노예로 살아가는데 누구는 왕자라니…,” 하면서 모세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모세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집트 고위 관료들이나 제관들은 그런 히브리인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모세를 감시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 일이 정말 탄로나고야 말았구나.”(탈출2,14)라고 말한 것입니다. 모세는 동족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오히려 배신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사랑은 배반으로…,”

! 주님,

제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은 동족에 대한 사랑이었고,

동족에 대한 사랑은 목숨을 건 행동으로 이어졌건만

제가 사랑한 동족은 저를 이해해 주지 않고,

오히려 저에게 칼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제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이 동족에 대한 사랑이었기에

제 마음은 늘 동족에 대한 연민이 가득했건만

이제 그 사랑의 마음자리에 차지하려는 것들은

원망과 분노와 안타까움 입니다.

사랑이 배반으로 돌아오니 죽음의 칼날은 저를 향하여 한발자국씩 다가오고,

원망과 분노, 후회의 넝쿨들이 저를 휘감기 시작하니

숨조차 쉬기 어려워졌습니다.

이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지만

저를 겨눈 칼날은 지칠 줄 모를 것이고

저를 휘감은 그 넝쿨들은 저를 놓아줄 것 같지 않습니다.

! 주님! 이 일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 주님! 이 일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모세를 싫어하는 이들은 좋은 기회를 잡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분명한 명분을 가지고 모세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파라오도 모세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이집트인을 죽인 것이 탄로가 났다는 것을 알고 미디안 땅으로 달아났습니다. 동족에 대한 사랑은 모세의 모든 안락함과 왕실에서의 위치와 그 밖의 모든 것을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이집트 왕자 모세는 이제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의 대화

종살이에 지치고 무뎌져서 그렇게 길들여진 사람들!

어리석은 노예들의 미천한 생각은 우리의 희망을 사라지게 하였네.

모세가 달아나자 이렇게들 말하네.

드디어 사라졌다! 드디어 사라졌어!

같은 히브리인 주제에 누구는 왕실에서 왕자로 살아가고

누구는 이렇게 강제 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니

차라리 그가 사라진 것이 우리 마음을 편하게 하니

오히려 잘된 일이라네.”

 

! 어리석은 사람들아! 어리석은 노예들아!

무거운 등짐과 온 몸에 감긴 보이지 않는 사슬은

그대들을 어리석고 옹졸하게 만들고, 한줄기 희망마저도 버리게 만들었구나.

그리 좋은가? 희망이 사라진 것이,

그리 좋은가? 등짐 진 그대들의 모습이!

우리 동족이 이집트의 왕자로 있었기에

어려울 때마다 살며시 우리를 도왔는데,

이제 누가 그처럼 우리를 도와준다는 말인가?

!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모세가 파라오가 되었다면 자연스레 우리도 해방의 기쁨을 맛보았을 텐데.

! 희망이 사라지니 등짐 진 어깨는 더욱더 무거워지기만 하는구나.

! 어리석은 사람들아! ! 어리석은 노예들아!

 

모세는 시나이반도의 동쪽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곳에는 친족 관계에 있는 같은 셈족인 미디안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미디안족은 이 아카바만을 중심으로 살았고, 현재 아카바만은 이집트의 시나이반도와 요르단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나눔 3: 동족에게 배신당한 모세의 마음을 헤아려 봅시다. 혹시 모세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은 없습니까? 또한 모세를 배신한 그 사람들처럼 열정을 가지고 봉사하는 이들이 봉사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적은 없습니까? 방해했다면 왜 그런 마음이 들었고, 왜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졌을까요?

 

모세는 동족에게서 배반을 당하고 도방자의 길에 들어섭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사십 년 동안 모세는 끊임없이 동족들에게 시달림을 당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동족들에게 배반을 당하시고, 함께 하던 제자에게 배반을 당하시는 것처럼, 모세도 그런 삶을 살게 됩니다. 하느님의 일은 누가 알아줘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보답해줘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감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시기와 모욕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바라보는 이들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결코 멈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달리시어 죽기까지 아버지 하느님께 순종하시며 당신의 일을 하셨습니다. 모세도 끊임없는 불평과 불만 속에서도 하느님의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쁨도 있지만 내 열정에 찬물을 끼얹는 이들 때문에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그들로부터 받은 상처들 때문에 신앙생활을 접고 싶은 마음까지 생길 때도 있습니다. 봉사자들을 끝까지 존경해 주고, 지지해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 하여 그 상처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주저앉게 된다면 나는 주님을 위한 봉사를 할 수 없게 됩니다. 모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동족과 함께 한 것을 기억하면서, 공동체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할지라도 주님을 바라보며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기쁘게 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위한 봉사를 계속 할 수 있게 됩니다. 모세와 함께라면 나 또한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하느님께 기도하고 의탁하며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생활입니다. 이렇게 탈출기는 일상에서 겪게 되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강력한 위로의 말씀을 오늘도 나에게 쏟아부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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