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순수한 자선-


1. 말씀읽기: 루카14,12-14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여라



2. 말씀연구


 함께 밥을 먹는 다는 것은 관계가 있다든지, 서로 호감이 있는 경우에만 합니다. 모르는 사람과는 밥을 먹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식당에서도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는 함께 앉기를 꺼려합니다. 직장의 구내 식당에서도 여기 저기서 혼자 먹는 사람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영어 회화에 보면 “여기 자리 있습니까? 앉아도 될까요?”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즉 모르는 사람과도 앉아서 얘기할 수 있고, 밥도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되겠지요. 그런데 한국말을 공부하는 외국인들도 이런 표현을 배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더 나아가 밥을 사줄 때,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밥 사주지 말고 관계가 아직 없는 사람들도 끼워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사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사주지 못할 형편에 있는 사람들도, 매일 얻어먹기만 하는 사람들도 외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이 없는 사람일 수도 없고,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일 수도 없고, 사랑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 그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미워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함께 하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 좋은 모습일 것입니다. 그가 안 하면 하느님께서 채워 주실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순수한 자선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12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이웃과의 관계를 맺을 때, 나는 모든 이기심을 초월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내가 이정도 해 주었으니 다음에 뭘 부탁해도 들어주겠지” “이 사람이랑 친해지면 도움이 되겠어.” 그런 생각으로 사람들을 만나지 말아야 합니다. 유혹이라는 것. 참으로 교묘하게 파고 들어옵니다. 있는 사람,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에게는 정말 좋은 음식, 좋은 술을 대접해야 된다는 생각을 당연히 하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이 말씀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한 사람이 부하 직원들에게 “난 이런 술이 참 좋더라구” 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에게 그가 좋아하는 술을 선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또 자랑삼아 말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니 사람들은 그  수준에 맞춰 주더라구!” 그런데 그게 선물일까요? 뇌물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친구나 부자를 초대하는 것은 세속에서 흔한 예절이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가 해 준 만큼 보상을 받게 되겠지만 하느님께 로부터는 아무 것도 받지 못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비록 그들로부터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고, 그들이 보답할 수도 없지만, 더 나아가 그들과 함께 식사한다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식사에 초대한 그 주인에게 구체적으로 말씀을 하십니다. 예의나, 보답 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을 조심하라고. 정작 초대해야 할 사람들은 내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소경, 절름발이, 불구자…)이라고…,




쿰란 공동체에는 팔 다리가 온전하지 못한 사람은 들어가지 못하였고, 불구자나 귀머거리, 벙어리도 제외되었습니다. 귀먹은 벙어리, 소경, 저능인들에게는 성전의 희생 제사에 제물로 바쳐 지는 동물의 머리에 손을 얹는 일이 금지되었습니다. 그들은 공적인 성전 예배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라는 말씀이 와 닿습니다.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고, 베푼다는 것. 분명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들은 사랑을 받았지만 물질적으로는 다시 되돌려줄 능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뻐하는 것뿐입니다. 그 사람에게 미안해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뿐입니다. 이것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흐뭇해하시며 대신 갚아 주실 것입니다. 




친한 사람들, 있는 사람들을 멀리하라는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의 사랑이 미움을 초월하고, 개인적인 이해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보답을 바라지 않고 실행하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서 한 몫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잔치에 관한 규칙은 이제 하느님 나라의 천상잔치에 관한 규칙이 됩니다. 초대 교회는 이 규칙이 또한 주님의 만찬례에서도 준수된다는 것을 깊이 확신하였습니다. 바오로사도는 코린토 교회의 신자들이 주님의 만찬에 모여와서는 저마다 각자가 가져온 음식을 먼저 먹어 치웠기 때문에 술에 취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굶주린 채 돌아간 사람도 있었다고 말하면서 그곳 교회를 이렇게 꾸짖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교회를 멸시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창피를 주려고 그러는 것입니까?”(1코린토11,20-22). 야고보 사도는 “가령 여러분의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과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다고 합시다. 그때 여러분이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에게 특별한 호의를 보이며 ‘여기 윗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거기 서 있든지 믿바닥에 앉든지 하시오’하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불순한 생각으로 사람들을 판단하여 차별대우를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야고보서2,2-4).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는 성찬례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이 성찬에서 인간은 거지와 다름없지만 “죄의 용서를 위한”(마태26,28) 음식을 먹고 마십니다. 의인이나 죄인이나 모든 이는 부활합니다. 하지만 부활했을 때 받을 상은 각각 다르게 될 것입니다. 상을 받을 사람도 있고, 벌을 받을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상을 받을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봉사한다면, 누가 볼 때만 봉사하고, 자기가 직책을 맡고 있을 때만 도와준다면 그것은 참된 봉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누가 수고 했다고 말한다 하더라도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겸손 하게 고백했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기억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갑시다.




3. 나눔 및 묵상


1. 내가 함께 식사하고 선물을 주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 입니까? 내가 미워하는 사람, 꼴도 보기 싫은 사람과도 식사하십니까?




2. “그저 해야 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고백하면서 봉사하고, 나누기 위해서는 내게 무엇이 필요합니까?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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