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연중 제32주일(11/11)


    오늘의 전례
    죽음은 모든 것을 가져갑니다. 그러기에 믿음이 없는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죽음을 준비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 곁에 있던 십자가가 죽음을 준비하게 했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세상이 영원히 살 곳이 아님을 깨닫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저세상과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그분께, 세상 것에 얽매이지 않을 지혜를 청하며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사두가이 사람들은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현실만이 중요했다. 죽은 이의 부활도, 저세상의 삶도 그들에게는 허황된 소리로 들렸다. 그러기에 일곱 형제가 한 여자와 산다는 엉뚱한 논리를 전개한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죽은 이들의 맏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비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27-38 그때에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둘째가,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아버지, 교회가 드리는 이 제사를 굽어보시고, 저희가 성자의 영광스러운 수난 신비에 믿음으로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도다.
    영성체 후 묵상
    우리는 사도신경을 바치면서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죽은 이들은 하느님의 나라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죽은 이들은 저세상에서 천사의 삶을 산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산 이와 죽은 이를 모두 기억하시는 하느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세상 것에 얽매이지 않을 지혜를 청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성체로 힘을 얻고 감사하며 자비를 바라오니, 성령의 힘으로 저희 삶을 변화시켜 주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사두가이들은 예수님 시대의 지식인 그룹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들 중 몇 사람이 예수님께 시비를 걸어옵니다. 일곱 형제와 혼인한 여인이 죽은 뒤 부활한다면 누구의 아내가 되겠는지를 질문한 것입니다. 형이 자식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혼인하여 대를 잇게 하는 법이 이스라엘에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죽은 뒤에 칠 형제가 모두 한 여자와 함께 산다는 것은 상식적인 논리가 아닙니다. 억지 논리로 신앙생활의 맹점을 따지는 이가 많습니다. 이상한 논리로 교리를 반박하는 이들도 더러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겠는지요? 예수님의 간결한 답변을 기억해야 합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은 혼인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황당한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특유의 단순함으로 응답하신 겁니다. 사두가이들은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저세상을 상식 밖의 일로 취급하였습니다. 무지몽매한 사람들이나 저승을 믿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머리로만 부활과 저세상을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러한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위험인물로 여겨졌을 겁니다. 예수님 앞에서 사두가이들의 지식은 억지에 불과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지식인을 대표하던 그들이었건만 편협한 모습을 벗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지식이란 하느님 앞에서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L'esperance Gaudemus[희망의 찬미가] - Gregorian Ch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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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32주일(11/11)


      오늘의 전례
      죽음은 모든 것을 가져갑니다. 그러기에 믿음이 없는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죽음을 준비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 곁에 있던 십자가가 죽음을 준비하게 했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세상이 영원히 살 곳이 아님을 깨닫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저세상과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그분께, 세상 것에 얽매이지 않을 지혜를 청하며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사두가이 사람들은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현실만이 중요했다. 죽은 이의 부활도, 저세상의 삶도 그들에게는 허황된 소리로 들렸다. 그러기에 일곱 형제가 한 여자와 산다는 엉뚱한 논리를 전개한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죽은 이들의 맏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비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27-38 그때에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둘째가,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아버지, 교회가 드리는 이 제사를 굽어보시고, 저희가 성자의 영광스러운 수난 신비에 믿음으로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도다.
      영성체 후 묵상
      우리는 사도신경을 바치면서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죽은 이들은 하느님의 나라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죽은 이들은 저세상에서 천사의 삶을 산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산 이와 죽은 이를 모두 기억하시는 하느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세상 것에 얽매이지 않을 지혜를 청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성체로 힘을 얻고 감사하며 자비를 바라오니, 성령의 힘으로 저희 삶을 변화시켜 주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사두가이들은 예수님 시대의 지식인 그룹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들 중 몇 사람이 예수님께 시비를 걸어옵니다. 일곱 형제와 혼인한 여인이 죽은 뒤 부활한다면 누구의 아내가 되겠는지를 질문한 것입니다. 형이 자식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혼인하여 대를 잇게 하는 법이 이스라엘에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죽은 뒤에 칠 형제가 모두 한 여자와 함께 산다는 것은 상식적인 논리가 아닙니다. 억지 논리로 신앙생활의 맹점을 따지는 이가 많습니다. 이상한 논리로 교리를 반박하는 이들도 더러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겠는지요? 예수님의 간결한 답변을 기억해야 합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은 혼인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황당한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특유의 단순함으로 응답하신 겁니다. 사두가이들은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저세상을 상식 밖의 일로 취급하였습니다. 무지몽매한 사람들이나 저승을 믿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머리로만 부활과 저세상을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러한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위험인물로 여겨졌을 겁니다. 예수님 앞에서 사두가이들의 지식은 억지에 불과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지식인을 대표하던 그들이었건만 편협한 모습을 벗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지식이란 하느님 앞에서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L'esperance Gaudemus[희망의 찬미가] - Gregorian Chants
    
    
    
    
    
    
    
    
    

  2. user#0 님의 말: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말씀에 위로를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유는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신 당신의
    자녀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당신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당신께서 저를 내치시는 않으실 것이라는 기대를 합니다
    저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주실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도 해봅니다
    하지만 저의 간절한 바램이 당신께는 메아리로만 들릴 까 두려운 마음도 듭니다
    참 이기적인 저의 생각이 신앙인으로써 합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사랑이신 당신께서는 저에게 영생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의인이나 악인이나 모두 살아나게 하시는 자비로우신 당신께서
    저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주시며 저에게 영생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영원히 죽지 않고 살수 있는 당신의 나라에 가기 전까지…..
    당신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며 실천을 해야한다고 다짐해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신 당신의 자녀라는
    생각으로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야한다고 믿음으로…..

    죽은 이들의 맏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비나이다
    아멘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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