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모세가 소명을 받다(탈출3,7-12)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하신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모세에게 당신의 계획을 말씀해 주십니다. 하느님의 계획은 고통 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는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나에게 다다랐다. 나는 이집트인들이 그들을 억누르는 모습도 보았다.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탈출 3,9-10)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모세는 깜짝 놀랐습니다. 보잘 것 없는 양치기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이집트의 왕자였지만 지금은 그저 도망자요, 양치기에 불과한 사람이 어떻게 파라오 앞에 나설 수 있겠습니까? 모세는 자신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더 잘 알고 계셨고, 지금까지 모세를 이끌고 계셨습니다. 출애굽은 모세가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끌어 내시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구원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냈다면 사람들은 하느님을 믿지 않고 모세를 믿을 것입니다. 모세는 그저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면 “예”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눔 6: 하느님께서는 구원자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당신 백성을 종살이에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종살이에서 자유로, 죽음에서 생명에로 이끌어 주시는 분이 바로 구원자이시고,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당신 구원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셨습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모세는 이렇게 아룁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낼 수 있겠습니까?”(탈출 3.11)
모세는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며, 자신은 그럴 만한 능력이 없는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하느님께 말씀을 드립니다. 동족에게 버림받고, 파라오에게 쫓긴 모세는 긴 시간 동안 낯선 땅에서 양을 치며 이방인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미디안 땅에서의 삶은 모세를 많이 변화시켰습니다. 모세는 결코 옛날을 회상하며 과거에 머물고 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는 사람이며,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목자는 양떼를 안전한 길로 이끌어야 하기에 늘 깊이 생각하고 즉흥적이거나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목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모세의 모습도 그렇게 변화되었기에 모세는 겸손하게 자신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뒤로 물러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잊고 있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집트 왕실에서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은 사람,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로 살아가며 광야를 이해하고 광야에서의 삶을 살아왔던 사람, 하느님께 선택받은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모세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 사명을 부여하시는 분이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이 일을 맡기시기 위해 한 처음부터 모세를 이끌고 계셨습니다. 모세는 지금 이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은 모세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모세는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확실하게 힘을 주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탈출3,12)
아무리 두려운 곳이라 할지라도 아이는 아버지와 함께라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불가능해 보여도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과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모세와 함께 해 주시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모세는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2.8. 하느님께서 당신 이름을 계시하시다(탈출3,13-15)
하느님께서 당신의 구원계획을 말씀하시자 모세는 “제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분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탈출3,13)라고 하느님께 아뢰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이름을 알려주기를 거부하십니다. 그러나 모세가 백성의 인정을 받기가 쉽지 않음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계시하십니다.
“나는 있는 나다.”(탈출3,14)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라는 당신의 이름, 곧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이름을 계시하시고 나서 모세에게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탈출 3,14)라고 말씀하시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당신을 드러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신 야훼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히 불릴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대대로 기릴 나의 칭호이다.”(탈출3,15)
모세는 하느님께로부터 선택되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파견되었습니다. 모세는 이제부터 도망자나 양치기의 삶을 접고,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 시작은 이집트로 돌아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당신 이름을 계시하신 하느님께서는 모세가 이집트로 돌아가서 이스라엘 원로들을 모아놓고 해야 할 말씀들을 알려 주십니다.(탈출3,16-22)
첫째, 모든 것을 알고 계신 하느님께서 이제 이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데려 가시려 하신다는 것.
둘째, 광야로 나가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겠다고 파라오에게 말하고, 여러 가지 이적을 일으켜서 파라오가 내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
셋째, 떠날 때는 이집트인들로부터 재물을 받아서 떠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것.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모세가 해야 할 사명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수록 모세는 걱정이 앞섰을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하면서 “기쁜 소식”을 전했을 때, 과연 “이스라엘 백성이 받아들이겠는가?”하는 문제입니다. 또한 모세는 도망자 신세였기에 파라오 앞에 나설 자신이 없었습니다. 모세가 그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 할지라도 파라오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나눔 7: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해 내실 계획을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모세를 부르셨을까요? 내가 만일 모세였다면 하느님께 어떻게 말씀드렸을까요?
2.9.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능력을 주시다(탈출4,1-17)
모세는 자신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파라오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절대 권력을 가진 파라오와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살아온 히브리 동족들, 더 나아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파라오와 동족임에도 불구하고 도와준 것을 생각하지 않고 간섭하는 것을 거부하며 그것을 이집트인들에게 알린 동족들이 과연 모세의 말을 들어줄 것인지에 대해 모세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모세는 하느님께 매달리며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그들이 저를 믿지 않고 제 말을 듣지도 않으면서, ‘주님께서 당신에게 나타나셨을 리가 없소.’ 하면 어찌합니까?”(탈출 4,1)
하느님께서는 모세가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고 다시 뱀이 지팡이로 변하는 표징과 손이 나병에 걸려 하얗게 되었다가 다시 제 살로 되돌아오는 표징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나일강 물을 피로 물들일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① 지팡이 표징
하느님께서는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탈출4,2) 라고 물으십니다. 하느님께서 모세의 지팡이를 몰라서 물어보시는 것이 아니라 지팡이를 통해서 모세가 확신을 갖도록 지팡이를 변화시켜 주시고자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있어서 지팡이는 그저 길을 가는데 쓰이는 도구이자 양 떼를 이끌기 위한 도구입니다. 이제까지의 모세의 지팡이는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 지팡이를 이제부터 하느님의 백성을 이끄는데 필요한 것으로 바꿔주시려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그 지팡이를 땅에 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땅에 던지니 그 지팡이는 놀랍게도 뱀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쥐고 있던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는 순간, 모세는 놀라서 뒤로 물러났습니다. 늘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가 갑자기 뱀으로 변한 것입니다. 이어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아라.”(탈출4,4) 하시자 모세는 손을 내밀어 꼬리를 붙잡았습니다. 그 순간 뱀은 도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뱀으로 변한 지팡이를 잡기를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뱀은 그 자체로 두렵기도 하지만 파라오의 왕관에도 뱀이 달려있었기에 그 뱀을 보고 파라오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이스라엘 백성과 파라오가 아니라 바로 한 분이신 하느님, 지금 모세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는 하느님이시어야 합니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지팡이를 뱀으로, 뱀을 지팡이로 만드시는 분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이는 그들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인 주님이 너에게 나타났다는 것을 그들이 믿게 하려는 것이다.”(탈출4,5)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지팡이 기적을 통해서 힘과 용기와 확신을 주셨습니다. 지팡이는 힘과 권력과 권위를 상징합니다. 지금은 힘있는 지팡이를 들고 있는 이는 파라오입니다. 파라오는 자신이 생명과 죽음을 관장하는 신으로 자처하며, 그 지팡이로 히브리인들을 통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 큰 힘을 지닌 지팡이를 들고 있는 이는 모세입니다. 모세가 뱀의 꼬리를 잡았을 때 지팡이로 변했다는 것은 더 이상 파라오가 히브리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없다는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힘을 받은 모세는 이제 파라오 앞에서도,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도 당당해져야 합니다. 파라오는 모세에게 무릎을 꿇게 될 것이고, 모세는 양을 치던 그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며 종살이하던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② 손이 나병에 걸렸다 깨끗해지는 표징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지팡이에 이어서 두 번째 표징을 보여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네 손을 품에 넣어 보아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그의 손을 품에 넣었다가 꺼내보니, 그 손은 나병에 걸려 하얀 눈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어 보아라.”하고 말씀하시자, 모세가 손을 다시 품에 넣었습니다. 그런 다음 품에서 손을 꺼내 보니, 제 살로 되돌아와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너를 믿지 않고 첫 번째 표징이 말하는 것을 듣지 않는다 하더라도, 두 번째 표징이 말하는 것은 믿을 것이다.”(탈출4,8)
모세는 두렵고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술은 상대방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상대방의 눈을 속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순식간에 멀쩡하던 자신의 손이 나병에 걸리게 된 것은 눈속임이 아니라 실재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모세를 거역하는 사람들이 장차 그렇게 순식간에 나병에 걸리게 될 것입니다. 모세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꺼내 보니, 제 살로 되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느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을 모세에게 보여 주셨으니 모세가 먼저 믿고 받아들이며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모세가 확신을 가져야 파라오도 하느님의 전능 앞에 무릎을 꿇게 되고, 이스라엘 백성도 확신을 가지고 약속의 땅으로 향할 수 있게 됩니다. 모세는 더 이상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하느님 백성을 이끌어야 합니다.
③ 세 번째 표징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위의 두 증거를 보고도 믿지 않을 경우에는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이 두 표징도 믿지 않고 너의 말을 듣지 않거든, 나일강에서 물을 퍼다가 마른 땅에 부어라. 그러면 나일강에서 퍼 온 물이 마른 땅에서 피가 될 것이다.”(탈출4,9)
나일강물은 이집트인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생명수입니다. 생명의 강물인 나일강물이 피로 변한다는 것은 이집트인들에는 더할 수 없는 큰 재앙이 될 것입니다. 그런 재앙 앞에서 파라오는 하느님의 뜻에 순종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④ 아론이 모세의 대변인이 되다(탈출4,10-17)
모세는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고, 손이 나병에 걸렸다가 깨끗해지는 것과 나일강물이 피로 변하게 될 것임까지 하느님께로부터 약속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다시 한번 변명을 합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말솜씨가 없는 사람입니다. 어제도 그제도 그러하였고, 주님께서 이 종에게 말씀하시는 지금도 그러합니다. 저는 입도 무디고 혀도 무딥니다.”(탈출4,10)
모세가 다시 한번 변명을 하자 주님께서는 “누가 사람에게 입을 주었느냐? 누가 사람을 말 못하게 하고 귀먹게 하며, 보게도 하고 눈멀게도 하느냐? 나 주님이 아니냐? 그러니 이제 가거라. 네가 말할 때 내가 너를 도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가르쳐 주겠다.”(탈출4,11-12)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또 거절하려고 합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제발 주님께서 보내실 만한 이를 보내십시오.”(탈출4,13)
계속되는 모세의 변명을 들으면서 “과연 모세가 그렇게도 말주변이 없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집트에서 왕자로서 다양한 교육을 받은 모세가 말주변이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저는 말을 못합니다.”
“가서 말하라” 말씀하시지만 말을 잊어버려서 말을 못합니다.
가서 말해도 받아들여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저는 말을 못하겠습니다.
자신을 신으로 생각하는 파라오가
도망자요 양치기인 저의 말을 들어줄 리 없고,
도와주어도 감사하지 않았던 동족들이
긴 시간 후에 만난 저를 인정해 줄 리 없기 때문입니다.
“가서 말하라” 말씀하시지만 저는 입이 무뎌서 말을 할 줄 모릅니다.
그저 장인의 양떼나 돌보고 있는 목자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긴 시간 동안 양치기 노릇을 했더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긴 시간 동안 많은 말을 하지 않다보니 말을 할 필요성도 잊어버렸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했고,
더위에 지쳐서 말할 힘도 없었습니다.
해가 지면 불어오는 모래바람은 눈과 입을 닫게 했습니다.
눈을 뜨면 모래가 눈으로 들어갔고,
입을 열면 모래가 입으로 들어갔습니다.
제 삶은 말하는 삶이 아니라 그저 양들과 함께 걷고,
돌보고, 찾고, 쫓는 삶이었습니다.
그렇게 제 혀는 무뎌지고, 제 입은 말을 잃었습니다.
이런 저는 부족하오니, 부디 저보다 더 나은 사람, 말 잘 하는 사람을 보내십시오.
저보다 나은 사람을 보내십시오……,
모세는 끝까지 핑계를 대며 하느님의 부르심을 거절하고 싶어 했습니다. 모세가 마지막으로 댄 핑계는 말을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미디안 땅에서 목자로서 살아가는 모세는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당대 최고의 지식을 이집트 왕실에서 배운 모세와 미디안 땅에 살고 있는 이들과의 대화 수준도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화의 수준이 맞지 않을 때는 들어주고 웃어주며 말을 자제하게 됩니다. 말을 해도 못 알아듣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세는 마지막까지 핑계를 대며 부르심을 거절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화를 내시며 이렇게 빠져나가지 못하게 말씀하십니다.
“레위인인 너의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 나는 그가 말을 잘하는 줄 안다. 그가 지금 너를 만나러 오고 있다. 그는 너를 보면 마음으로 기뻐할 것이다. 너는 그에게 일러, 그가 해야 할 말을 그 입에 담아 주어라. 네가 말할 때나 그가 말할 때, 내가 너희를 도와주겠다. 너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내가 가르쳐 주겠다.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그는 너의 입이 되고, 너는 그의 하느님이 되어 줄 것이다.(탈출4,14-16)
하느님께서는 모세가 이렇게 변명할 줄을 다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결정하셨으면 인간은 따라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힘과 권위를 주시면서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지팡이를 손에 잡아라. 너는 그것으로 표징들을 일으킬 것이다.”(탈출4,17)
이제 더 이상 변명을 할 수 없게 된 모세는 하느님의 말씀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을 예언자라고 합니다. 예언자는 자신의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담아주신 말씀을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론은 모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전하게 될 것이고, 아론에게 있어서 모세의 말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말씀이고, 하느님께서 담아주신 말씀입니다. 아론이 하는 말은 결국 모세가 하고자 하는 말이니 아론은 모세의 입이 되는 것이고, 아론에게 모세는 하느님이 되는 것입니다. 아론은 모세를 통해서 하느님을 뵙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너의 입이 되고, 너는 그의 하느님이 되어 줄 것이다.”(탈출4,16)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당신 구원의 도구로 삼으셨습니다. 모세가 하느님께 의탁한 것처럼 나 또한 주님께 의탁하며 모든 것은 주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말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저 하느님의 도구라는 것을 명심하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루카21,13-15)
하느님의 자녀들은 굳게 믿어야 합니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끔은 봉사의 기회가 부여될 때 거절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모세가 주님께 “주님, 죄송합니다. 제발 주님께서 보내실 만한 이를 보내십시오.”(탈출4,13) 라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못합니다.”하고 겸손하게 거절합니다. 그러나 겸손은 지나치면 자기 비하가 되고, 봉사의 기회를 계속해서 거부하면 그것 또한 하느님께 불경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봉사를 권유하는 사람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니, 계속 거부하는 것은 결국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됩니다.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니까 부탁을 하는 것이니 “예! 부족하지만 해 보겠습니다.”라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주님께서 다 채워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