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모세와 아론이 주님의 말씀을 파라오에게 전하다(탈출5,1-5)
모세는 이제 파라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아론과 함께 파라오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이 파라오는 세티의 아들 람세스 2세일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로서, 하느님의 사자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내 백성을 내보내어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위하여 축제를 지내게 하여라.”(탈출5,1)
그러나 태양신인 “아몬 라”를 섬기고 있는 파라오는 거만하게도 “그 주님이 누구이기에 그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내보내라는 것이냐? 나는 그 주님을 알지도 못할뿐더러, 이스라엘을 내보내지도 않겠다.”(탈출5,2)라고 말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거절하였습니다. 이집트의 모든 파라오들은 자신들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신이라고 자처했고, 자신의 이름에도 신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람세스도 태양의 아들, 또는 빛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신의 이름으로 불리며 신과 동등한 권한을 행사하고, 신으로부터 부름을 받았거나, 신에게서 태어났다거나, 신으로부터 사랑받았다는 이름을 넣음으로서 자신들의 권위를 드러내었습니다. 신상이나 벽화 등에도 신과 연관된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음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신적인 위치에까지 올려놓고, 자신이 살아 있는 신(神)임을 드러내었습니다. 파라오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히브리인들의 신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보기에 보잘 것 없는 신에게 자신의 노예들이 제사를 드리러 나가게 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파라오가 거절하자 모세와 아론은 다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히브리인들의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니 저희가 광야로 사흘 길을 걸어가, 주 저희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지 않으시면 그분께서 흑사병이나 칼로 저희를 덮치실 것입니다.”(탈출5,2-3)
이집트 사회에서 “히브리인”이라는 말은 사회에서 소외된 떠돌이와 소란꾼으로 간주되는 집단에게 붙여진 욕이었습니다. 따라서 “히브리인들의 하느님”이란 “사회에서 소외된 떠돌이와 소란꾼들의 하느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양신의 아들이요 살아있는 신인 파라오가 히브리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의 하느님이 자신을 협박한다는 것은 파라오에게는 불쾌한 일이었습니다.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을 쫓아내며 단호하게 말하였습니다.
“모세와 아론, 너희는 어찌하여 백성이 일을 하지 않도록 부추기느냐? 너희 일터로 돌아가라.”(탈출5,4)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이 말하고 있는 본질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파라오가 보기에 모세와 아론은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러 나가겠다고 말하면서 히브리인들을 빼내려는 것입니다.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의 풍부한 노동력을 빼앗기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이 더 이상 말을 못하도록 단호하게 잘라버렸습니다.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을 내치면서 백성을 부추기지 말고, 일터로 가서 일이나 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세와 아론은 이미 일터에서 자신들의 일을 성실히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모세와 아론의 일터는 바로 파라오 앞이기 때문입니다. 모세와 아론의 일은 이스라엘 백성을 단순히 며칠이 아니라 영원히 이집트에서 빼내는 것입니다.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을 노예로 부려야 만이 그 많은 토목공사와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시킬 수가 있기에 절대로 내보낼 수 없었습니다. 파라오는 그날로 이스라엘 백성을 부리는 작업 감독들과 조장들에게 명령하여 더욱 혹독한 일을 시켰습니다. 히브리인들이 모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모세에게 불평하게 만들기 위한 전략을 실행한 것입니다.
“첫째, 벽돌을 만드는 짚을 직접 구하게 하여 벽돌을 만들게 할 것.
둘째, 생산량은 줄이지 말 것.”
이렇게 하면 히브리인들이 벽돌을 만들며 쉴 수 있는 시간은 전혀 없어지고, 더 나아가 생산량을 못 맞출 것이니 하느님께 제사를 드린다거나 자유를 청하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조장들을 닦달하면 모세와 백성들을 분리시킬 수 있는 효과를 거둘 것입니다.
“그자들의 일을 더 힘들게 하여라. 그러면 그들이 일만 하느라 허튼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될 것이다.”(탈출5,9)
파라오와 지배자들이 보기에 모세와 아론은 백성을 선동하는 사람이요, 질서를 파괴하고, 이집트의 기반을 위협하는 인물들이었습니다. 유다인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위협을 느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작당을 하고 또 그것을 실행으로 옮겼듯이, 이집트의 지배자들도 더욱 히브리인들을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에게 더욱 심하게 노동을 시킴으로써 그들이 모세에게 걸었던 기대가 모두 헛된 것임을 느끼게 하여 모세와 히브리인들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하였습니다.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의 삶은 야훼 하느님께 달린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권력에 복종시키려고 하였습니다. 파라오는 가중되는 히브리인들의 모든 고통의 책임을 모세에게 돌렸습니다. 더 나아가 해방은 불가능하며, 이것은 전적으로 선동일 뿐임을 피부로 느끼게 하여 노예 생활이 그들의 운명이요 행복임을 받아들이도록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온 이집트 땅에 흩어져, 벽돌 짚으로 쓸 지푸라기를 모아 왔고, 작업 감독들은 “너희는 짚이 있을 때와 다름없이 그날 일은 그날로 마쳐라.” 하며 다그쳤습니다. 파라오의 작업 감독들은 자기들이 세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조장들을 때리면서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어째서 정해진 벽돌 양을 어제도 오늘도 예전처럼 채우지 못하느냐?”(탈출5,14)
사실 이런 파라오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용인과 고용주의 관계에서 고용주는 더 많은 일을 시키려고 고용인들의 어려움을 외면합니다. 지금은 나아졌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약자들과 외국인 근로자들이 얼마나 불이익과 차별을 받아 왔습니까? 고용인들에게 고용주들이 파라오처럼 군림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언젠가 고용인들의 원성이 차고 넘칠 때, 고용주들에게 당신 정의의 칼을 휘두르실 지도 모릅니다. 또한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은 “내가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는 삶”을 살아갑니다. 내가 힘이 있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무력을 행사하고 강요하는 것도 하느님을 거부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