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조장들의 불평과 모세의 탄원(탈출5,20-6,1)
모세와 아론은 조장들이 파라오를 만나고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파라오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조장들에게 들어보려고 그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조장들의 입에서 불평과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을 내려다보시고 심판해 주셨으면 좋겠소.
당신들은 파라오와 그 신하들이 우리를 역겨워하게 만들어,
우리를 죽이도록 그들 손에 칼을 쥐어 주었소.”(탈출5,21)
동족의 해방과 자유보다는 지금 자신들의 자리를 더 걱정하는 이스라엘의 조장들은 원망과 분노를 모세에게 쏟아부었습니다. 자신들에게 심한 고통이 주어졌기에 모세가 하는 일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이 “주님께서 당신들을 내려다보시고 심판해 주셨으면 좋겠소.”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있는 이상, 자유와 평등은 꿈속에서조차 희망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됩니다. 변화를 시도하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들이 공동체를 이끌어 가게 되면 하느님 백성에게는 은총의 물결이 도달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벽을 헐어야만이 은총의 물결이 밀려오게 됩니다.
이제 이스라엘 조장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백성들을 선동할 것입니다. 이 모든 어려움은 모세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라고 선동할 것이며, 모세만 사라지면 다시금 전처럼 노동할 수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계속해서 노예 생활을 하자고 백성들을 선동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파라오가 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백성들과 모세를 떼어 놓으려 하는 파라오의 계획은 이미 성공한 것입니다.
나눔 9: 모세에게 불평을 하고, 저주를 퍼붓고 있는 이스라엘 조장들의 모습을 바라봅시다. 만일 내가 이스라엘 조장들 중의 하나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희망에 부풀었던 이스라엘 백성은 오히려 더 큰 곤경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파라오의 무자비한 압력은 체념으로 이어지고, 선동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노예살이를 하며 노동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희망에 부풀어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했지만, 어떤 어려움이 다가오면 갈등하며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려고 합니다.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하지 못하고, 지금 주어지는 어려움들만 바라보게 됩니다. 만일 옆에 힘을 북돋아 주는 이가 있다면 다시금 힘을 내어 하느님께로 나아가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자연스럽게 하느님을 향한 마음을 접게 됩니다. 가끔은 성당 다녀서 손해 보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당 다니기 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성당 다니고 난 다음부터는 이런저런 시련들이 많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도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이 삶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생각만 가지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면 굳이 배움과 훈련은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은 그저 생각일 뿐입니다. 그 생각은 바람에 흩날리는 겨와도 같습니다. 신앙의 훈련은 올바로 보게 하고, 인내를 배우게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좋은 것을 받았는데 나쁜 것이라고 하여 어찌 거절할 수 있단 말이오?”(욥2,10)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을 향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모세는 그런 수련 과정을 거쳐 왔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 또한 그렇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믿음의 끈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흔들림 속에서도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선동자들”
그들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아무 말도 안 하지만
비슷한 이들과 무리를 지으면 본색을 드러냅니다.
이익이 없으면 나서지 않고,
도움이 되지 않으면 만나지 않으며,
비슷한 사람이나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끌어 들입니다.
뒤에서 선동하며 그들을 앞에 내세웁니다.
선동하지만 자신은 안 그런 척하며 어울려 살고,
혼자 옳은 척,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척하며 말합니다.
그렇게 공동체를 분열시킵니다.
아닌 척하면서…,
모세는 사랑으로 감싸면 될 줄 알았습니다.
그것도 의견이니 받아들여 주고, 이해해 주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위험한 생각이었습니다.
쳐 냈어야 했습니다.
쳐 내지 않았기에 그들은 다시 광야에서 불평을 만들어 내고,
백성들을 선동하였고,
더 나아가 금송아지까지 만들게 하였습니다.
희망을 절망으로 만들어 모두를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고,
그렇게 사십 년을 광야에서 지내게 만들었습니다.
모세도 결국 그렇게 느보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기만 하고 눈을 감아야 했습니다.
섬김의 리더쉽은 성공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선동하는 이들도 섬김의 대상이겠지만
그래서 일곱 번씩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며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갈 길이 먼 하느님 백성에게는 고민거리요, 기도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판단하시는 분은 오로지 하느님 한 분이시니,
그 모든 것을 맡겨 드리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해 나가야 했습니다.
그들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비록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간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
이스라엘인 조장들은 이렇게 공동체를 선동하였고,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서 등을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구원을 걷어차게 만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사랑하는 동족을 위하여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고, 모세 또한 평생을 희망했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던진 부주의한 말 한마디는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공동체를 섬기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며, 하느님의 일을 방해하게 됩니다. 또한 기도하지 않으면 “이스라엘 조장들처럼 선동하는 이들의 말”과 “모세처럼 섬기는 이들의 말”을 구분할 수 없게 되고, 어느 순간 선동하는 이들 편에 서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느님의 일을 하는 이들은 탄식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모세의 탄식기도”
어찌한단 말인가?
자신들이 겪고 있는 모든 어려움이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 모든 불평을 나에게 쏟아붓고 있으니.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동족들의 해방을 위해 어려운 발걸음을 옮겼지만
오히려 동족들로부터 불평을 듣게 되고, 그 옛날처럼 배척당하게 되었으니.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분은 오로지 나를 부르신 하느님 한 분 뿐.
내가 원망할 수 있는 분은 오로지 나에게 사명을 부여하신 하느님 한 분 뿐.
나 이렇게 주님께 원망하였다네.
“주님, 어찌하여 이 백성을 괴롭히십니까? 어찌하여 저를 보내셨습니까? 제가 파라오에게 가서 당신 이름으로 말한 뒤로, 그가 이 백성을 괴롭혀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께서는 당신 백성을 도무지 구해 주시지 않습니다.”(탈출5,22-23)
“어찌하여 저를 보내셨습니까?”하며 하느님께 탄식하고,
어찌할 줄 모르며 하느님께 매달리니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응답해 주셨네.
“이제 너는 내가 파라오에게 어떻게 하는지 보게 될 것이다.
정녕 그는 강한 손에 밀려 그들을 내보낼 것이다.
강한 손에 밀려 그가 자기 땅에서 그들을 내쫓을 것이다.”(탈출6,1)
그러나
내가 모르고 있던 한 가지.
출애굽은 파라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파라오가 거부하고, 백성들이 원망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일 뿐.
눈앞의 것만을 보고, 주어진 어려움과 모욕만을 바라보기에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네.
나는 그저 내 생각을 버리지 못한 주님의 종이었다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좌절되었다 하여 탄식하고,
“이제는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하고 포기하려 하였으니
내 자존심만 세우려 했던 부족한 주님의 종이었다네.
하느님께서는 이 백성을 괴롭히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려는 것이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통해 하시는 것이니,
나 다시 주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하며 이 일을 해 나가리.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시는 것이니
나 그저 주님께 내 몸과 마음을 오롯하게 내어 드리리.
비록 끊임없이 불평하고, 비난과 비방이 쏟아져 밀려온다 할지라도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이 길,
주님께 매달리며, 주님만 바라보며 충실히 걸어가리…,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였지만 파라오는 관심이 없습니다. 백성들도 처음에는 환영하였지만 더욱 혹독한 노역에 시달리게 되니 모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사명이 실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모세가 실패한 것이 아님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계획이 있으십니다. 모세는 그저 믿고 따라오면 됩니다. 굳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모세는 하느님께 항복하는 파라오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계획하시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모세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능력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모세는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