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에탐에서 갈대 바다로(탈출14,1-14)
주님께서 이집트를 떠나온 백성들을 이끌고 있는 모세에게 바닷가에 진을 치라고 이르셨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되돌아가서 믹돌과 바알 츠폰 앞 바다 사이에 있는 피 하히롯 앞에 진을 치라고 일러라. 너희는 바알 츠폰을 마주하고 바닷가에 진을 쳐야 한다.”(탈출14,2)
바닷가에 진을 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모세는 당황했을 것입니다. 바다를 등지고 진을 친 상태에서 파라오가 군대를 이끌고 쫓아온다면 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파라오의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을 쫓아오면 파라오와 그의 모든 군대를 쳐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계획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집트인들은 하느님께서 주님이심을 다시 한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계획을 모르고 있는 모세는 당황스럽기만 할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인간이 당신께 순명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순명을 통해서 구원과 복을 차지하기를 원하십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종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면 “예”하고 따라야 합니다.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알아서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과 순명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모세에게서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계획을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모세가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했던 것처럼 나 또한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명할 때, 하느님께서는 나를 통하여 당신 구원역사를 펼치실 것입니다.
① 마음이 변한 파라오
이스라엘 백성은 단순히 제사를 지내러 나간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을 향해 이집트를 완전히 떠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도망쳤다는 소식이 이집트 임금에게 전해지자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섬기던 이스라엘을 내보내다니, 우리가 무슨 짓을 하였는가?”(탈출14,5) 하고 말하며 어제까지의 고통을 잊어버렸습니다. 파라오는 병거 육백 대에 이르는 정예 부대와 군관이 이끄는 이집트의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쫓아가 바닷가에 진을 친 그들을 따라잡았습니다. 파라오는 바다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며 기쁨에 넘쳤을 것입니다. 이제 달려가 다시 잡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착각은 교만을 불러오고, 교만은 어제의 기억을 잊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파라오는 그저 이스라엘 백성이 달아났다는 사실에만 집중하다 보니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계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잊어버렸습니다. 자신 앞에서 그리도 당당하게 말하며 재앙을 일으켰던 이가 모세였음을 파라오는 잊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파라오를 제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파라오의 신하들은 이집트가 겪은 열 가지의 재앙을 파라오가 기억하게 하며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했지만 오히려 파라오가 잘못 판단하도록 부추겼습니다. 그들은 노예가 필요했고, 자신들이 부리던 노예들을 되찾아 오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이집트와 파라오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파라오를 이용하여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파라오 곁에 있던 사람들은 정작 중요한 순간에 파라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파라오의 모습을 바라보며 내 옆에는 누가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고, 나를 위해 진심이 담긴 충고를 해 주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나를 망치는 것은 나 자신이지만 내 옆에는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나를 부추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늘 선택의 순간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 선택의 순간에 탐욕이 눈을 가리게 되면 과거의 경험은 아무런 소용이 없어지고, 잘못된 선택을 통하여 내일의 평화는 사라지게 됩니다. 만일 내 옆에 좋은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는 내가 올바른 선택을 통하여 내일의 평화를 찾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그 친구의 충고를 받아들인다면 나는 충동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며 오늘만의 기쁨보다는 내일의 평화를 더 가치 있게 생각하며 선택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기억하며 살아가야 하고, 현명한 이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과거의 기억을 통해서 현재를 비추어 주고, 현명한 판단을 통하여 내일의 평화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합니다.
특별히 통치자 곁에는 역사를 알고 있는 이가 있어야 합니다. 통치자가 눈앞의 것만을 바라보려고 할 때, 역사가는 통치자가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바라보게 하고 미래의 모습을 그릴 수 있도록 조언해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역사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합니다. 통치자들은 역사가들이 자신의 명예나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오로지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들의 일을 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지지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한 역사가를 옆에 두고 있는 통치자는 실수를 덜 하게 되고, 백성을 더 나은 길로 이끌 수 있게 됩니다. 만일 통치자가 역사가를 가까이하지 않고 그들의 입을 막는다면, 그 순간부터 통치자는 파라오처럼 멸망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②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이스라엘 자손들이 눈을 들어 보니, 이집트인들이 그들 뒤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몹시 두려워하며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모세에게 불평하였습니다.
“이집트에는 묏자리가 없어 광야에서 죽으라고 우리를 데려왔소?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이렇게 만드는 것이오?”(탈출14,11)
앞에는 바다가 가로막고 있고, 뒤에서는 이집트 군대가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해 주시는 하느님을 보지 않고 두려움만 바라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진퇴양란에 빠졌다고 생각하며 자신들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이끌어 낸 모세를 원망하며 모세의 가슴에 큰 못을 박아 버렸습니다.
“‘우리한테는 이집트인들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나으니, 이집트인들을 섬기게 우리를 그냥 놔두시오.’ 하면서 우리가 이미 이집트에서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소?”(탈출14,12)
이렇게 말한 이들은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동족을 괴롭히며 알량한 권력을 누리고 있던 조장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하느님을 잊은 지 오래됐고, 그저 조금이라도 편안한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동족을 괴롭히며 살아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집트에 있었어도 이들에게는 아쉬움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움을 붙잡도록 선동하며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이런 백성을 이끌고 있는 모세를 바라보면 가슴이 아파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이러한 행동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계속해서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고, 백성들을 선동할 것입니다. 하지만 섬김과 사랑은 조건을 달면 안 됩니다. 주님의 종은 “무엇 때문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모세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섬김의 리더쉽은 고통과 고독의 길입니다. 그래서 탈출기에는 모세의 눈물이 가득 담겨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눔 15: 파라오의 군대를 보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께서 누구신지를 잊어버리고 백성들을 선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유보다는 종살이가 좋다고 말하며 모세에게 원망을 쏟아부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내 안에서도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③ 지도자 모세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 모세는 두려움에 떨며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자! 돌아갈 사람은 돌아가시오. 나오기 싫은 사람들, 억지로 해방시켜 줘서 미안합니다. 오늘로서 우리 관계를 끝냅시다.”하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느님의 종입니다. 이 백성을 사랑하라고 부르심을 받은 하느님의 종이고, 이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라고 사명을 부여받은 하느님의 종입니다. 모세는 하느님을 계획을 알고 있기에 이렇게 선포합니다.
“두려워하지들 마라. 똑바로 서서 오늘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루실 구원을 보아라. 오늘 너희가 보는 이집트인들을 다시는 영원히 보지 않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워 주실 터이니, 너희는 잠자코 있기만 하여라.”(탈출14,13-14)
모세는 확신에 차 있습니다. 주님께서 알아서 다 해 주실 것이니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됩니다. 모세는 이 마음을 끝까지 지켜 나가야 합니다. 그 누가 흔들더라도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들의 계속되는 불평은 모세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것입니다.
